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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금 아이들에겐 '웃어주지 않는' 어른이 필요하다

    [혐오는 '농담'의 얼굴로 온다 ⑤] 배재고 사태 두 달, 어른은 싸우고 아이들은 화해... 모두 함께 멈춰봅시다

    등록 2026.08.27 07:28수정 2026.08.27 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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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재고 스타벅스 응원' 사태로 드러난 10대의 혐오·조롱 문화를 현직 역사교사의 시선으로 진단하고 대안을 모색합니다. 혐오가 늘 '농담'의 얼굴로 시작되었다는 것, 아이들이 조롱한 5·18 민주화운동의 진실, 불안이 희생양을 만들어 온 구조, 말이 끝내 칼이 된 종착역, 그리고 그 흐름을 끊어 낸 회복의 길까지 다섯 편에 걸쳐 진단에서 해법으로 나아갑니다.[기자말]
    2학기 개학 이후 8월의 교무실은 늘 분주하다. 나 역시 수업 계획을 손보고 새 학기 진도표를 짜면서, 한편으로는 이 연재의 마지막 편을 어떻게 맺어야 할지 오래 고민했다.

    시리즈를 시작한 것이 7월 초였으니 두 달이 채 지나지 않았다. 그사이 세상은 제법 움직였다. 교육부 장관은 전국에서 모인 중고교 학생 대표들과 마주 앉아 혐오·차별 표현을 어떻게 줄일지 직접 들었다. 국가인권위원회와 서울시교육청은 국회에서 이 문제만 놓고 토론회를 열었다. 청와대는 이번 사태를 두고 나온 정부 인사 발언에 공개 경고를 내렸다. 그리고 국회에 올라가 있던 법안 두 건이 새삼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이 속도가 반가우면서도 마음 한구석이 불안하다. 교직 13년 동안 비슷한 장면을 여러 번 봤기 때문이다. 큰 사건이 터지면 대책이 쏟아지고, 공청회가 열리고, 공문이 내려온다. 그러다 계절이 한 번 바뀌면 조용해진다. 다음 사건이 터질 때까지 교실은 다시 혼자 남는다. 내가 겪은 학교의 시간은 대개 그런 모양이었다.

    어른들만 시끄러웠던 두 달... 누가 누구의 거울인가?

     이진숙 국민의힘 의원이 '스타벅스 가야지' 응원 논란을 빚은 배재고에 응원 화환을 보내 논란이 됐다.
    ▲ 이진숙 국민의힘 의원이 '스타벅스 가야지' 응원 논란을 빚은 배재고에 응원 화환을 보내 논란이 됐다. 이진숙 SNS

    지난 두 달간 가장 시끄러웠던 쪽은 정작 아이들이 아니라 어른들이었다.

    싸움은 양쪽에서 벌어졌다. 배재고를 감싸는 쪽에서는 광주제일고에 폭발물을 설치했다는 협박 글이 온라인에 올라왔다. 학생들이 대피하고 경찰과 소방이 두 시간 가까이 학교를 수색했다. 반대편에서는 배재고 학생들의 신상을 캐는 공격이 이어졌고, 학교 앞에는 양쪽 진영이 보낸 화환이 나란히 놓였다. 3편에서 살펴본 마녀사냥의 역사가 우리에게 가르쳐 준 것이 있다면, 정의를 자처한 군중이야말로 가장 쉽게 폭력이 된다는 사실이다.

    어른들이 그렇게 편을 갈라 다투는 동안, 정작 사과하고 화해한 쪽은 아이들이었다. 7월 6일 배재고 야구부 학생 선수 전원과 지도자, 학부모, 교직원 등 80여 명이 광주제일고를 찾아 고개를 숙였다. 야구부 주장이 사과문을 읽는 동안 학부모와 교직원들은 눈물을 쏟았다. 두 학교 선수단은 함께 국립 5·18민주묘지로 옮겨 참배했다.


    이튿날 광주일고 교장과 총동창회는 광주학생독립운동기념역사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잘못을 뉘우치고 용서를 구한 학생들의 가슴에 주홍 글씨를 새기는 일은 자신들이 바라는 길이 결코 아니라며 선처를 호소했다. 상처 입은 우리가 먼저 관용의 손을 내밀자고 재학생들에게 당부하기까지 했다. 1929년 학생독립운동이 시작된 바로 그 자리에서 나온 말이었다.

    아이는 어른의 거울이라는 말이 있다. 그런데 이번만큼은 순서가 뒤집혔다. 거울을 들여다봐야 할 쪽은 아이가 아니라 우리였다.


    법과 제도는 어디까지 왔나

     국회 본회의. 국회에는 이미 두 개의 법안이 올라가 있었다. 그러나 법이 교실을 대신할 수는 없다.
    ▲ 국회 본회의. 국회에는 이미 두 개의 법안이 올라가 있었다. 그러나 법이 교실을 대신할 수는 없다. 연합뉴스

    지금 국회에 올라가 있는 법안 두 개는 교사라면 한 번쯤 들여다볼 만하다.

    하나는 이른바 '일베 금지법'으로 불리는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이다. 지난 6월 4일 이훈기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 발의했다. 현행법은 명예훼손이나 허위조작정보를 중심으로 규율하다 보니, 희화화된 밈이나 조롱성 이미지는 그동안 규제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었다. 개정안은 '조롱·혐오정보'라는 개념을 새로 만들고, 특히 국가적·사회적 사건의 희생자와 유가족을 겨냥한 모욕·조롱·비하·희화 표현을 여기에 포함시켰다. 고의로 반복 유통하면 형사처벌할 수 있게 했고, 이를 알고도 방치한 사업자에게는 삭제와 접속차단부터 노출·수익화 제한, 나아가 폐쇄 명령까지 가능하도록 했다.

    눈여겨볼 대목이 있다. 이 법안은 배재고 사태보다 먼저 발의됐다. 발의를 알리는 기자회견장에는 4·16재단과 5·18기념재단, 노무현재단이 함께 섰다. 그러니까 이 문제는 6월 29일 야구장에서 갑자기 튀어나온 것이 아니다. 이미 여러 곳에서 경고음이 울리고 있었고, 다만 우리가 그 소리를 학교 밖의 일로 여겼을 뿐이다.

    다른 하나는 같은 당 고민정 의원이 대표 발의한 학교민주시민교육법안이다. 이쪽은 더 이르다. 4·19혁명 66주년에 맞춰 지난 4월 17일 발의됐다.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학교 민주시민교육을 행정적·재정적으로 뒷받침하고, 교육부 장관이 기본계획을, 교육감이 시행계획을 세우도록 하는 내용이다.

    나는 이 법안의 기본원칙 조항에 주목했다. 헌법적 가치의 존중과 학생의 자율적인 토의·토론 진흥을 원칙으로 세우고, 특정 견해의 강압적 주입을 금지한다는 대목이다. 익숙한 원칙이다. 1976년 서독의 교육자들이 도달한 보이텔스바흐 합의다. 학생을 압도하지 말 것, 사회에서 논쟁적인 사안은 교실에서도 논쟁적으로 다룰 것, 학생이 스스로 판단하고 참여할 힘을 기를 것. 반세기 전 다른 나라 교실에서 나온 결론이 지금 우리 국회에서 법조문의 형태로 논의되고 있는 셈이다.

    이 원칙이 현장에서 갖는 힘은 생각보다 크다. 무엇이 '논쟁'이고 무엇이 '사실'인지를 갈라 주기 때문이다. 5·18이 민주화운동이라는 것은 특별법과 대법원 판결로 확정된 사실이다. 1923년 관동대지진 때 조선인 학살이 있었다는 것 역시 역사학이 오래전에 규명한 사실이다. 이것을 바로잡는 일은 편향이 아니라 교육이다. 반면 학생 선수의 징계 수위를 어디까지 정할 것인가 같은 물음은 진짜로 열려 있는 쟁점이니, 여러 입장을 공정하게 펼쳐 놓고 학생이 스스로 판단하게 하면 된다. 교사가 중립이라는 말 뒤에 숨지 않고도 혐오와 왜곡 앞에 당당할 수 있는 근거가 바로 여기서 나온다.

    못 들은 척 지나갈 수밖에 없는 교사들

    문제는 그다음이다. 법이 통과된다고 해서 다음 날 아침 교실이 달라지지는 않는다. 8월 5일 국회에서 열린 '인권존중 학교를 위한 혐오차별 대응 토론회'에서 서울시교육청 학생인권옹호관이 내놓은 숫자는 뼈아팠다. 2021년 서울 학생 3831명을 조사한 결과 절반이 넘는 51.6%가 차별·혐오 표현을 겪었다고 답했다. 그 비율은 초등학생 28.9%에서 고등학생 64.2%로 학교급이 올라갈수록 가파르게 높아졌다. 학교가 이 문제를 다루지 못하는 사이, 아이들은 그만큼 더 오래 노출된다는 이야기다.

    교사 쪽 숫자는 더 아프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 7월에 공개한 조사에서 교사의 80.2%가 학교나 교실에서 극우화된 혐오 표현을 쓰는 학생을 '자주' 목격했다고 답했다. 그런 상황에 직접 대응하기 어려웠다는 응답은 75.2%였다. 이유로 가장 많이 꼽힌 것이 '실질적인 조치가 불가능해서'였다. 열에 여섯에 가까운 59.9%가 그렇게 답했다. 민원과 보복이 두렵다는 응답도 41.8%였다.

    이 숫자가 가장 마음이 아프고 답답했다. 교사들이 의지가 없어서 입을 다무는 게 아니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아이가 복도에서 던진 혐오 발언을 듣고 이야기했다가 그날 저녁 민원 전화가 오는 일, 정당한 생활지도가 '정치 편향'이나 '정서적 아동학대'라는 이름으로 되돌아오는 일. 우리는 그 가능성을 이미 여러 차례 목격했다. 그러니 많은 교사가 못 들은 척 지나간다.

    그래서 나는 지금 논의되는 제도에 최소한 이것만은 담기길 바란다. 먼저 교사 면책 조항과 현장용 대응 매뉴얼이다. 혐오 표현을 지도한 교사가 정치적 중립 위반 논란에 휘말리지 않도록 보호하는 장치, 그리고 어떤 표현에 어떤 단계로 대응할지를 담은 구체적인 지침이 함께 있어야 한다. 이 둘이 없으면 법이 통과돼도 교실은 그대로다. 8월 토론회에서 학생인권옹호관이 짚은 대목도 정확히 그것이었다. 교사 개인의 의지가 아니라 판단 기준과 지원 체계가 없는 것이 문제라고 했다.

    다음은 학교 밖의 규범이다. 이번 일이 다름 아닌 경기장에서 터졌다는 사실을 그냥 지나쳐서는 안 된다.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가 내린 6개월 출전정지가 대한체육회 재심에서 한 달로 줄어드는 동안 우리가 확인한 것은, 무엇이 잘못이고 어디까지 책임을 물을지에 대한 합의된 기준이 아직 없다는 사실뿐이었다. 기준이 없으면 처분은 매번 여론의 온도를 따라 오르내리고, 그사이 아이들은 어른들 진영 싸움의 소재가 된다. 학생 스포츠부터 프로 무대까지 아우르는 통일된 대응 기준이 필요한 이유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법으로는 되지 않는 영역이 있다는 정직한 인정이다. 이것이 다섯 편을 쓰면서 내가 가장 하고 싶었던 말이다.

    법은 유통을 늦출 수 있다. 플랫폼에 책임을 물을 수 있고 반복 유포자를 처벌할 수도 있다. 그러나 법은 교실 뒤편에서 아이 둘이 눈을 맞추고 낄낄거리는 그 3초를 멈추게 하지 못한다. 그 3초는 처벌의 영역이 아니라 관계와 감각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호통은 표현을 잠시 숨기게 할 뿐 생각까지 바꾸지는 못한다. 아이를 멈춰 세운 것은 벌이 아니라 앎이었다.

    그러니 우리는 두 가지를 동시에 해야 한다. 구조를 바꾸라고 계속 요구하는 일과, 그것이 바뀌기를 기다리는 동안 교실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 둘 중 하나를 고르는 문제가 아니다. 구조가 우리 손 밖의 일이라면, 교실은 분명히 우리 손 안의 일이다.

    교실만의 숙제가 아니다

    다만 여기서 한 가지는 분명히 하고 싶다. 교실이 우리 손 안의 일이라는 말이, 이 문제를 교사가 알아서 해결하겠다는 뜻은 아니다.

    13년 동안 아이들을 만나면서 확인한 것이 하나 있다. 아이들이 쓰는 말의 원본은 거의 언제나 학교 밖에 있다는 사실이다. 아이들은 없던 말을 발명하지 않는다. 어디선가 듣고, 그게 웃긴 말이라고 배우고, 교실로 가져온다. 그 어디선가는 대개 어른들의 세계다. 정치인의 현수막이고, 조회수를 노린 유튜브 채널이고, 퇴근길 지하철에서 어른들이 무심코 주고받는 농담이다. 아이들은 그 말이 어디까지 허용되는지를 어른의 반응을 보고 배운다. 누군가 웃어 주면 허용된 것이고, 아무도 지적하지 않으면 그것이 기준이 된다.

    그렇다면 아이들에게만 착해지라고 요구하는 것은 공정하지 않다. 클릭을 먹고 자라는 알고리즘, 혐오를 재미로 포장해 파는 콘텐츠, 남을 깎아내려야 내가 서는 구조. 이 톱니바퀴를 그대로 둔 채 아이의 말버릇만 고치라는 것은, 물이 새는 지붕은 놔두고 바닥만 계속 닦으라는 말과 다르지 않다.

    교사가 45분 수업으로 세워 놓은 것을, 어른 한 사람의 웃음이 하루 만에 무너뜨리기도 한다. 반대로 어른 한 사람이 웃지 않는 것만으로 아이는 그 말이 웃긴 말이 아니라는 걸 배운다.

    우리 학교에서 먼저 해 봤습니다

    존중 서약서를 작성하는 학생들 아이들은 '나는 원래 깨끗하다'고 서명하지 않았다. '나도 그런 말을 해 봤고, 이제부터는 멈춰 보겠다'고 서명했다.
    ▲존중 서약서를 작성하는 학생들 아이들은 '나는 원래 깨끗하다'고 서명하지 않았다. '나도 그런 말을 해 봤고, 이제부터는 멈춰 보겠다'고 서명했다. 이종관

    이제 제안을 드릴 차례다. 다만 책상에서 만든 기획서를 내미는 것은 아니라는 말씀부터 드리고 싶다. 지난 7월, 우리 학교에서 먼저 해 봤기 때문이다.

    영성중학교는 남자중학교다. 어떤 날은 쉬는 시간 복도에 서 있으면 욕설이 인사처럼 오간다. 그 말의 절반쯤은 사실 친밀함의 표현이다. 거칠게 부딪치며 정을 확인하는 것이 이 나이 사내아이들의 방식이라는 걸 나도 안다. 문제는 나머지 절반이다. 웃자고 던진 말이 누군가의 가슴에 박히고, '장난인데 왜 진지해'라는 한마디가 그 위에 한 번 더 얹힌다.

    교직 초년의 나는 '하지 마'라는 말을 참 많이 했다. 그 말이 아이를 바꾼 적이 거의 없다는 걸 깨닫는 데 몇 해가 걸렸다. 교사가 막아서면 아이들은 입을 다무는 게 아니라, 교사가 없는 곳으로 말을 옮길 뿐이다. 그래서 우리 학교 역사동아리 '피스메이커스' 아이들과 함께 학생들의 시선으로 캠페인을 진행했다.(관련기사: "'야 이 OO아' 이런 말이 그냥 튀어나와요" 열다섯 남학생들의 고백 https://omn.kr/2j2yb)

    캠페인에 참여한 아이들은 몰라서 조롱하는 게 아니었다. "다 아는 건데요, 사실. 근데 알면서도 그냥 나와요." 그날 서약 배너를 채운 이름들은 완벽한 선언이 아니라 정직한 고백에 가까웠다. 아이들은 '나는 원래 깨끗하다'고 서명하지 않았다. '나도 그런 말을 해 봤고, 이제부터는 멈춰 보겠다'고 서명했다. 그래서 다짐의 문장도 "안 하겠습니다"가 아니라 "노력하겠습니다"였다. 나는 그 미완의 다짐이 완성된 선언보다 훨씬 믿음직스러웠다. 교육은 완성을 증명하는 일이 아니라 방향을 트는 일이기 때문이다.

    캠페인 사흘 만에 제자리... 멈추지 않는 '멈춤'이 필요하다

    여기까지가 좋은 이야기다. 이제 솔직한 이야기를 해야 한다. 캠페인이 끝나고 사흘쯤 지나자 복도의 말은 대체로 원래대로 돌아왔다. 전부는 아니었다. 서약서에 이름을 적던 그 느린 손끝을 기억하는 아이들은 분명 조금 달라져 있었다. 하지만 학교의 공기 전체가 바뀌었느냐고 묻는다면, 정직하게 아니라고 답해야 한다.

    그래서, 멈추지 않는 '멈춤'을 제안한다. 말장난처럼 들리겠지만, 사흘 만에 원래대로 돌아온 복도를 겪고 나서 내가 내린 결론이 정확히 그것이다. 멈춰야 할 것은 혐오이고, 멈추지 말아야 할 것은 우리 쪽이다. 7월의 부스는 아이들을 한 번 멈춰 세웠다. 문제는 그 뒤로 아무도 다시 물어보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멈춤 프로젝트(STOP PROJECT 2026)'는 행사가 아니라 1년의 리듬으로 설계했다. 슬로건은 하나다. 혐오와 조롱은 놀이가 아니다. 봄에는 몸으로 달리고, 여름에는 이야기를 듣고, 가을에는 자기 언어로 만들어 보고, 겨울 세계인권선언 기념일(12월 10일) 주간에 그 모든 것을 한자리에 모은다. 배움·몸·창작·목소리, 네 개의 트랙에서 아이들의 혐오의 언어가 아닌 존중의 언어를 사용하는 체험을 진행한다.

    네 트랙을 다 하는 학교는 아마 없을 것이다. 나도 못 한다. 3월에 부스 하나만 열어도 되고, 5월에 아이들과 5.18km를 걷기만 해도 되고, 국어 시간에 '멈추고 싶은 말 한 문장'만 써 보게 해도 된다. 처음 참여하시는 학교라면 캠페인 하루, 걷기 한 시간, 노트 한 문장이면 충분하다. 예산이 전혀 없어도 실행할 수 있다. 우리도 7월에 쓴 것이라고는 사인펜과 스티커, 전지 몇 장이 전부였다. 예산 확보를 기다리다 해를 넘기지 마시기를 부탁드린다.

    짧아도 좋으니 한 번으로 끝내지만 말아주십시오

     지난 7월 6일 서울 배재고등학교 야구부 대표 선수가 사과문을 들고 전남광주특별시 광주제일고등학교를 찾았다.
    ▲ 지난 7월 6일 서울 배재고등학교 야구부 대표 선수가 사과문을 들고 전남광주특별시 광주제일고등학교를 찾았다. 공동취재사진

    다만 한 번으로 끝내지만 말아 주십사, 그 부탁을 드리는 것이다. 한 번의 자각이 습관이 되려면 그 자각을 다시 꺼내 보는 자리가 여러 번 있어야 한다. 3월에 물었던 것을 5월에 다시 묻고, 10월에 또 한 번 묻는 것. 대단한 기획이 아니라 그저 반복이다. 교육이 원래 그렇지 않던가. 우리는 구구단도 한 번 가르치고 끝내지 않는다.

    한 가지 원칙만은 예외 없이 지켜 주시기를 청한다. 비판을 위해 인용한 혐오 표현도 결국 한 번 더 유통된다. 그러니 실제 혐오 밈을 그대로 게시하거나 인용하지 않는 것, 특정 개인이나 집단을 알아볼 수 있게 표현하지 않는 것, 참여를 강요하지 않는 것. 그리고 참사와 역사적 비극을 다룰 때 피해자와 유가족의 존엄이 무엇보다 앞선다는 것. 이 수칙은 모든 자료와 함께 배포할 생각이다.

    그리고 이것이 전국의 선생님들께 손을 내미는 이유다. 한 학교가 혼자 하면 사흘 만에 원래대로 돌아간다. 내가 겪어 봤다. 그런데 옆 학교도 같은 주에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면, 아이들이 SNS에서 다른 지역 또래의 '멈춤 한 문장'을 보게 된다면, 그때는 조롱이 아니라 멈춤이 흐름이 된다. 아이들에게 가장 강력한 것은 언제나 또래의 공기다. 그 공기는 한 학교가 만들 수 없다.

    아이가 옆 학교에도, 사촌이 다니는 학교에도 같은 캠페인을 한다는 것을 알게 되는 순간, 그것은 우리 반 선생님의 잔소리가 아니라 세상의 기준이 된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대단한 프로그램이 아니라, 혼자가 아니라는 감각이다.

    '멈춤 프로젝트(STOP PROJECT 2026)' 참여 안내

    슬로건 : 혐오와 조롱은 놀이가 아니다
    구성 : 4개 트랙 11개 활동 (학교 사정에 맞게 택일 또는 병행/ 세부 계획 추후 안내)
    대상 : 초·중·고 학생, 교사, 학부모 및 시민 누구나
    참여 단위 : 개인 교사 / 학급 / 동아리 / 학교 / 지역 / 전국
    제공 자료 : 기획안, 부스 운영 자료집, 1차시 지도안·학습지, 서약문·배너 시안, 학생 기획단 가이드 등
    해시태그 : #멈춤프로젝트 #혐오와조롱은놀이가아니다
    신청 및 문의 : island615000@naver.com
    덧붙이는 글 글쓴이 이종관은 역사란 교실에서 배우는 것이 아니라 삶 속에서 발견하는 것이라 믿으며, 교실에서 아이들을 만나는 역사 교사다. 그래서 아이들과 늘 함께 던지는 질문이 있다. '나의 평화, 너의 평화, 그리고 우리의 평화를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이 질문을 교실과 일상에서 어떻게 실천할 수 있을지 고민한다. 그리고 그 답은 언제나 과거를 기억하는 일에서 시작된다. 지나간 역사를 기억하는 일이야말로 오늘 우리의 평범한 하루를 지키는 가장 단단한 힘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지은 책으로 <1일 1주제 9분 만에 끝내는 한국사>, <이불킥 한국사>, <개념연결 초등 세계사 사전>(공저) 등이 있다.
    #일베 #혐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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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교에서는 역사를 가르치고, 집에서는 8살 딸 지수와 6살 아들 지호에게 인생을 배우는 아빠. 첫째 출산 후 육아휴직을 하고 블로그에 육아일기를 쓰기 시작했고, 아이를 키우면서 사람과 세상을 다시 배우고 있습니다. 달리기를 하며 가장 자연스러운 나를 만나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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