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례식장 안치실에 설치된 다단식 시신안치 냉장고. 일정한 저온을 유지하는 안치설비는 시신의 부패를 늦추고 장례 전까지 안전하게 보관하는 핵심 시설이다. 국내에서는 감염병 사망자용 안치공간을 일반 시신과 별도로 확보해야 한다는 기준이 마련돼 있지만, 현장에서는 전용 안치냉장고 설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문제가 지적되고 있다.
이형웅
사람이 죽으면 우리는 곧바로 장례식을 떠올린다. 빈소를 차리고, 조문객을 받고, 입관을 하고, 발인을 거쳐 화장장으로 간다. 그런데 정작 이 모든 절차보다 먼저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다. 시신을 어디에, 어떤 조건으로, 얼마나 안전하게 모실 것인가 하는 문제다.
그 역할을 하는 공간이 안치실이고, 핵심 장비가 시신안치 냉장고다. 화장로가 몇 기인지, 봉안시설이 얼마나 부족한지는 자주 논의되지만, 정작 전국에 시신을 몇 구까지 안전하게 보관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통계는 취재 과정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웠다.
법에는 상당히 구체적인 기준이 있다. 장사 등에 관한 법률 시행규칙은 안치실이 시신의 부패와 감염원의 번식을 막기 위해 4℃ 이하의 온도를 항상 유지해야 하고, 정전에 대비한 비상용 발전기나 별도의 전기공급 설비를 갖추도록 규정한다. 감염병으로 사망한 시신을 위해서는 일반 안치고와 별도로 1인용 안치 냉장고 2개 이상을 설치해야 한다. 공설장례식장이라면 여기에 더해 무연고 시신 등을 보관할 안치 냉장고 2개 이상을 추가로 갖춰야 한다. 이 감염병용 조항은 2015년 메르스 사태를 계기로 감염병 사망자 시신 관리와 장례식장 감염관리의 필요성이 부각된 가운데, 2016년 1월 29일 시행규칙 개정으로 신설됐다.
법만 놓고 보면 촘촘하다. 문제는 이 법이 현장에서 얼마나 지켜지고 있느냐다.
'얼리는 것'이 아니라 '늦추는 것'
장례식장의 안치 냉장고는 가정용 냉장고와는 전혀 다른 설비다. 여러 구의 시신을 수용할 수 있도록 서랍식 또는 다단식으로 만들어지고, 저온을 일정하게 유지하기 위한 냉각장치와 강제순환장치가 들어간다.
핵심은 '얼리는 것'이 아니라 부패 속도를 늦추면서 장례 절차가 진행되는 동안 시신의 상태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것이다. 그래서 국내 장례식장에서는 냉동보다 냉장이 중심이 된다. 3일장 정도의 일반적인 장례라면 0~4도 사이, 냉장고 냉장실과 비슷한 온도로 시신을 보관하는 게 업계의 공통된 설명이다. 냉동은 장기 보관이나 특수한 상황에서만 활용될 뿐, 일반적인 장례에서는 해동 과정과 시신 상태를 고려해야 하는 만큼 잘 쓰이지 않는다. 결국 안치 냉장고는 단순한 냉장 설비가 아니라 온도, 위생, 전력, 공간, 출입을 함께 관리해야 하는 전문 설비다.
2022년 봄, 정육점 냉동창고로 간 시신들
이 시스템의 취약성이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난 순간이 2022년이었다. 코로나19 사망자가 급증하면서 화장장 예약이 밀렸고, 그 여파는 고스란히 장례식장 안치실로 향했다.
당시 언론 보도에 따르면 한 지방 장례식장은 영안실 안치시설이 모두 차자 대형 고깃집에서 쓰는 정육용 냉동창고를 임차해 시신을 보관했다. 다른 장례식장에서는 빈소에 별도 선반을 만들어 시신을 두거나, 안치 냉장고 한 칸에 시신 2~3구를 겹쳐 넣었다는 업계 관계자의 증언도 나왔다. 경기 고양시의 한 장례식장은 냉장고 6대가 모두 차자 내부 온도가 10℃를 넘는 공간에 시신 13구를 보관하다 당국에 적발되기도 했다. 장례식장이 시신을 4℃가 넘는 공간에 보관하는 것은 명백한 불법이다.
이 사건은 단순히 코로나19라는 특수한 상황의 해프닝으로만 읽어서는 안 된다. 한국의 시신안치 시스템에 완충능력이 사실상 없다는 걸 보여준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평상시에는 하루에 들어오는 시신 수와 장례식장의 안치능력이 대체로 맞아떨어진다. 하지만 사망자가 갑자기 늘거나 화장장이 정상적으로 돌아가지 않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시신은 안치실에서 무한정 기다릴 수 없다. 화장장이 막히면 안치실이 막히고, 안치실이 막히면 새로운 사망자를 받을 수 없다. 화장시설의 부족이 곧 안치시설의 부족으로 전이되는 구조인 셈이다.
법은 있는데, 지키는 곳은 5%도 안 된다
더 심각한 건 감염병 사망자용 안치시설 문제다. 2025년 2월 <매일경제> 보도에 따르면, 한국장사시설표준협회 조사 결과 전국 장례식장 1100곳(종합병원 650곳, 전문 장례식장 450곳) 가운데 1인용 안치 냉장고를 설치한 곳은 50여 곳에 불과했다. 법 시행 7년째, 사실상 사문화된 규정이라는 지적이 나온 배경이다.
더 황당한 지점은 정부조차 전국 설치 현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기사에 따르면 보건복지부는 한 시민이 낸 정보공개청구에 "장례식장 시설은 소재지 관할 지방자치단체에 신고하도록 돼 있다"며 사실상 답을 지자체로 넘겼다. 서울시 장사 업무 담당자 역시 <매일경제>의 질문에 "장례식장 시설은 신고와 관리를 각 자치구가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법은 중앙정부가 만들었는데, 정작 그 법이 지켜지는지는 아무도 제대로 모르는 상황이다.
현장의 사정도 열악하다. 기사에 등장한 복수의 장례지도사들은 대부분의 장례식장이 안치 냉장고를 1년에 한두 번 정도밖에 소독하지 않는다고 전했다. 시신을 직접 만져야 하는 장례지도사들이 위생 문제에 상시 노출돼 있다는 뜻이다.
감염성 시신 따로 모셨다
법령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흥미로운 지점이 하나 더 있다. 공설장례식장에는 일반 장례식장보다 더 엄격한 의무가 붙어 있다. 무연고 시신 등을 보관하기 위한 안치 냉장고 2개 이상을 추가로 갖춰야 한다는 조항이다.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이미 법률을 통해 '시신을 일정 기간 안전하게 보관하는 일은 공공의 책임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있다는 뜻이다.
실제로 이 원칙을 실행에 옮긴 사례가 있다. 세종시설관리공단은 2017년 은하수공원 장례식장에 감염시신 전용 상하분리형 안치 냉장고 1대를 850여만 원(부가세 포함)에 구매·설치하는 계획을 세웠다. 기존에 운영하던 서랍식 안치 냉장고는 상하분리 구조가 아니어서 감염시신 보관에는 부적합했기 때문이다. 계획서에는 이 조치가 안전보건경영시스템(OHSAS 18001) 인증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고 적혀 있다. 새 냉장고를 들이면서 기존 장례식장 안치실 냉장고 1대와 위생실 냉장고 2대는 화장장 안치실로 옮겼고, 그 결과 장례식장 안치능력은 일반 10기, 감염성 2기 체제로 재편됐다.
세종시설관리공단이 자체 예산 850여만 원을 들여 감염성 시신 전용 안치시설을 마련한 사례라는 점에서 눈여겨볼 만하다. 동시에 전국 1100곳 중 50여 곳만 이 규정을 지키고 있다는 현실과 나란히 놓고 보면 세종 은하수공원의 사례가 여전히 예외적이라는 것도 분명해진다. 시신의 종류와 위험도에 따라 안치공간을 분리하는 설계가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이자, 그 설계가 전국적으로는 거의 확산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동시에 보여주는 사례인 셈이다.
안치를 장례식장에만 떠넘겨 온 구조
한국의 장례 시스템은 오랫동안 한 줄기 흐름으로 설계돼 왔다. 사망하면 병원이나 장례식장으로 이동하고, 장례식장에 안치한 뒤 빈소를 차린다. 가족과 조문객이 장례를 치르고 나면 발인해 화장장으로 향한다.
이 과정에서 안치 기능은 장례식장에 사실상 종속돼 있다. 장례식장은 빈소를 제공하면서 동시에 시신 보관 기능까지 떠맡는다. 그러다 보니 화장장 예약이 밀리면 장례식장의 안치실이 가장 먼저 압박받는다. 2022년 정육용 냉동창고와 냉동탑차까지 동원됐던 건 장례식장이 갑자기 이상해졌기 때문이 아니라, 장례와 화장을 잇는 중간 완충시설이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역 단위 '공공안치센터'라는 대안
이제 시각을 바꿔야 한다. 시신안치 냉장고를 장례식장에 들어가는 여러 장비 가운데 하나로만 보면 문제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전국의 사망자 수, 화장능력, 장례식장 안치능력을 하나의 시스템으로 연결해 보면 전혀 다른 그림이 나온다.
사망자가 늘어난다. 화장장이 포화된다. 화장 예약이 밀린다. 장례식장 안치실이 가득 찬다. 시신이 갈 곳을 잃는다. 이때 필요한 건 또 하나의 빈소가 아니라, 시신을 안전하게 보관할 저온 안치시설이다.
그래서 장례식장마다 냉장고 몇 대를 더 넣는 방식만으로는 근본적인 해결이 어렵다. 지역 단위의 공공 시신안치센터를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가령 지역별로 50구, 100구, 200구 규모의 독립된 공공안치센터를 운영한다고 가정해보자. 평상시에는 즉시 장례를 진행하기 어려운 시신을 안전하게 보관하고, 무연고 시신도 맡는다. 감염병 사망자는 세종시 사례처럼 별도의 상하분리형 시설에서 관리한다. 화장장 예약이 밀리면 임시 완충시설로 쓰이고, 대형 재난이나 감염병 대유행이 발생하면 대규모 시신안치시설로 전환할 수 있다. 여기에 장례식장과 화장장을 연결하는 물류·예약 시스템까지 갖추면, 사망-안치-장례-화장의 흐름을 각각 분리해 관리할 수 있게 된다. 이건 장례산업의 작은 개선이 아니라 장례 인프라 구조 자체를 바꾸는 일이다.
우리가 여태 묻지 않은 질문
여기서 가장 근본적인 문제 하나가 남는다. 전국에 시신을 몇 구까지 안전하게 보관할 수 있는가. 화장로 숫자는 집계한다. 장례식장 숫자도, 사망자 숫자도 집계한다. 그런데 전국 안치능력을 한눈에 보여주는 통계는 찾을 수 없었다. 장례식장별 안치능력 데이터는 존재하지만, 전국 단위에서 일반 안치고가 몇 기인지, 감염병 전용 안치고가 몇 기인지, 지역별 안치능력이 사망자 수에 비해 충분한지를 종합적으로 보여주는 자료는 매우 제한적이다.
이건 단순한 통계 누락의 문제가 아니다. 정책의 시선이 어디를 향해 있는가의 문제다. 우리는 죽음의 마지막 단계인 '화장'을 지나치게 중요하게 여긴 나머지, 화장장에 도착하기 전까지의 시간을 놓치고 있는 건 아닐까.
지금까지 우리는 "우리나라에 화장장이 몇 개 있는가"라고 물어왔다. 이제는 여기에 질문 하나를 더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시신을 안전하게 얼마 동안 보관할 수 있는가." 그리고 더 구체적으로 물어야 한다. 지역별 안치능력은 얼마인가. 화장장이 멈추면 며칠을 버틸 수 있는가. 감염병 사망자를 별도로 수용할 수 있는가. 무연고 시신을 수용할 공공시설은 충분한가. 대규모 사망자가 발생하면 어디에 시신을 모실 것인가. 이 질문들에 국가가 숫자로 답할 수 있어야 한다.
죽음에도 시간이 필요하다
사람이 죽었다고 곧바로 화장할 수 있는 건 아니다. 가족에게 연락해야 하고, 장례 여부를 결정해야 하며, 필요하다면 빈소를 차리고 절차를 밟아야 한다. 화장 예약이 잡혀야 비로소 이동할 수 있다. 그 사이 고인은 어디에 있어야 하는가. 바로 안치시설이다.
사망자가 늘고 화장장이 부족해질수록 안치기간은 길어질 수밖에 없다. 안치시설이 충분하지 않다면 화장장 부족의 충격은 고스란히 장례식장으로 전가된다. 2022년의 정육용 냉동창고, 냉동탑차, 비정상적인 중복 안치는 그래서 단순한 코로나19의 예외적 풍경이 아니었다. 안치시설이라는 완충장치가 없는 장례 시스템의 민낯이었다.
사람이 죽으면 우리는 장례를 생각한다. 그러나 사회의 관점에서 보면 장례보다 먼저 필요한 건 안전한 안치다. 고인의 존엄을 위해서도, 유족을 위해서도, 장례지도사의 안전을 위해서도, 감염병 확산을 막기 위해서도, 화장장 부족에 대응하기 위해서도, 무연고 사망자와 재난사망자를 수용하기 위해서도 필요하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죽은 사람에게도 시간이 필요하다는 사실이다. 가족이 장례를 결정할 시간, 화장장을 예약할 시간, 행정절차를 처리할 시간, 유족이 고인을 마지막으로 만날 시간. 그 시간을 안전하게 보장하는 시설이 안치시설이다.
시신안치 냉장고는 장례식장의 부속 냉장설비가 아니다. 화장장이 죽음의 마지막 관문이라면, 안치시설은 죽음과 장례 사이를 지탱하는 첫 번째 사회 인프라다. 지금 한국에 필요한 건 화장로 몇 기를 더 늘리는 것만이 아니다. 죽은 사람이 다음 장소로 이동할 때까지 안전하게 머물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일이다. 그 공간은 민간 장례식장의 뒤편에 숨어 있어서는 안 된다.
이제는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책임지고 숫자로 관리해야 한다. '전국 시신안치능력'이라는 통계를 만드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래야 다음번에 화장장이 막혔을 때, 다시 고인의 시신을 정육용 냉동창고에 넣는 일이 벌어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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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육점 냉동창고에 시신 맡긴 장례식장들, 달라졌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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