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전도비 귀부 처음 제작했다가 사용하지 못한 것으로 추정되는 작은 귀부
문운주
전망대를 내려와 석촌호수로 향했다. 조금 전 발아래 내려다보던 호수를 이제 두 발로 걷는다. 산책로에는 걷는 사람과 벤치에 앉아 쉬는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진다. 고층 빌딩이 빼곡한 잠실 한복판에 이런 호수가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이 새삼 특별하게 다가온다.
호숫길을 따라 걷다 삼전도비 앞에 섰다. 정식 명칭은 대청황제공덕비다. 병자호란에서 패한 인조가 1637년 삼전도에서 청 태종에게 항복한 뒤 세운 비석이다. 왕이 청 황제 앞에 머리를 조아린 것도 모자라 그의 공덕까지 돌에 새겨야 했다. 조선으로서는 씻기 어려운 굴욕이었다.
삼전도비 옆에는 처음 제작했다가 사용하지 못한 것으로 추정되는 작은 귀부가 남아 있다. 청나라 사신이 크기와 형태를 문제 삼은 것으로 전해지면서 조선은 훨씬 크고 웅장한 귀부를 다시 만들었다. 두 귀부를 나란히 보면 패전국 조선이 감당해야 했던 굴욕의 무게가 더욱 선명하게 다가온다.
비석의 운명도 기구했다. 청의 힘이 약해지자 땅에 묻혔고, 일제강점기에는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해방 이후에는 또다시 땅속으로 들어갔다. 시대가 바뀔 때마다 삼전도비를 바라보는 시선도 달라졌다. 치욕의 흔적이라며 감추려 했고, 역사의 증거라며 다시 세우기도 했다.
거대한 삼전도비와 주변에 남은 옛 흔적을 번갈아 바라본다. 세월이 흐르며 비석에 새겨진 글씨는 닳고 흐려졌지만, 그 또한 지나간 시간을 말해준다. 작은 돌 하나에도 역사가 남는데, 눈앞의 거대한 비석은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을까.
감추고 지운다고 없었던 일이 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대로 남겨 두고 왜 그런 치욕을 겪어야 했는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나라를 지킬 힘이 얼마나 중요한지도 생각하게 한다. 삼전도비는 치욕의 흔적이기에 오히려 더 오래 기억해야 할 역사의 증거인지도 모른다.
비석 앞에서 고개를 들자 555m 높이의 롯데월드타워가 눈앞에 우뚝 서 있다. 그 아래 석촌호수는 잔잔하고, 한쪽에는 삼전도비가 묵묵히 자리를 지킨다. 화려한 초고층 빌딩과 400년 가까운 역사의 흔적이 불과 몇 걸음 사이에서 마주한다.
조금 전 서울스카이에서 화려한 서울을 내려다봤다면, 이제 그 발아래에서 아픈 역사를 만났다. 높은 빌딩과 석촌호수만 보이던 잠실이 새롭게 다가온다. 오늘의 서울과 오래된 역사가 한곳에 함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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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위에서도 보고, 하늘에서도 내려다 본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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