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역 서울로7017에서 내려다본 철길. 선로 너머로 빌딩 숲이 보인다.
문운주
서울역 밖으로 나왔다. 붉은 벽돌의 옛 서울역사가 눈에 들어온다. 1925년 경성역으로 문을 연 건물로, 지금은 '문화역서울284'로 쓰인다. 그 앞에는 1919년 남대문역에서 조선총독을 향해 폭탄을 던진 강우규 의사의 동상이 서 있다.
구도심으로 걸음을 옮겼다. 빌딩 숲 사이에 남아 있는 서울의 오래된 시간과 흔적을 찾아가는 길이다. 서울로7017, 자동차가 달리던 고가도로가 보행길로 바뀐 곳이다. '7017'에는 1970년에 만들어진 고가가 2017년 사람의 길로 다시 태어났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서울로7017에 올라서니 옛 서울역사와 철길, 도심의 빌딩이 한눈에 들어온다. 발아래로 자동차가 오가고 철길에는 열차가 드나든다. 길에는 나무와 꽃을 심은 화분과 쉼터가 이어져 도심 속 공원을 이룬다.
길 끝에 '윤슬: 서울을 비추는 만리동'이 있다. 햇빛이나 달빛에 반짝이는 물결을 뜻하는 이름이다. 건물 사이로 빛이 스며드는 공간에서 잠시 걸음을 멈췄다. 빌딩과 도로가 이어지는 도심에서 만난 또 다른 서울의 풍경이다.
서소문은 조선시대 한양도성의 사소문 가운데 하나로 정식 이름은 소의문이다. 1396년 도성을 쌓을 때 소덕문으로 세웠다가 성종 때 소의문으로 이름을 바꿨다. 한양에서 마포와 양화진 등 서남쪽으로 나가는 통로였다.
성문 밖 네거리는 조선시대 처형장이기도 했다. 도성 안에서 형을 집행하는 것을 꺼려 죄인들을 성 밖으로 데려와 처형했다. 조선 후기 천주교 박해 때 많은 신자가 이곳에서 목숨을 잃었다. 지금은 서소문역사공원과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이 들어서 그 역사를 전한다.
서소문을 지나 중림동 골목으로 들어섰다. 비탈진 언덕과 좁은 골목, 오래된 집들이 서울의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골목 끝에서 붉은 벽돌의 약현성당을 만났다. 1892년에 세워진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벽돌 성당으로, 언덕 아래 서소문 순교지와도 깊은 인연을 지닌 곳이다.
성당을 둘러보고 다시 골목길을 내려와 서소문역사공원으로 향했다. 조금 전 이야기로 만난 순교의 현장을 직접 마주한다. 공원 지하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에는 조선 후기 천주교 박해와 순교의 역사가 고스란히 남아 있다.
공원에 들어서도 박물관 건물은 쉽게 눈에 띄지 않는다. 전시 공간 대부분을 지하에 두고 지상은 시민들을 위한 공원으로 꾸몄기 때문이다. 역사의 아픔을 땅속에 품고 그 위에 오늘의 일상이 이어지는 독특한 공간이다.

▲서소문 순교자현양탑 조선 후기 천주교 박해로 희생된 순교자들의 삶과 신앙을 기억하기 위해 세워진 탑이다
문운주

▲순교자의 칼/이경순 조선시대 죄인의 목에 씌웠던 칼을 형상화한 작품 ‘순교자의 칼’. 고통을 딛고 땅을 뚫고 나와 하늘로 치솟는 듯한 모습은 순교자들의 기개를 상징
문운주
1801년 신유박해와 1839년 기해박해, 1866년부터 이어진 병인박해를 거치며 많은 천주교 신자가 서소문 밖 형장에서 목숨을 잃었다. 현양탑은 이곳에서 순교한 이들의 삶과 신앙을 기리기 위해 세워졌다.
현양탑을 지나 '망나니 우물'로 불리는 뚜께우물을 만난다. 형을 집행하던 망나니들이 칼을 씻거나 목을 축였다고 전해지는 곳이다. 작은 우물 앞에 서니 당시의 참혹한 풍경이 떠올라 마음이 무거워진다. 수많은 사람이 오가는 서울 한복판에 이런 아픈 흔적이 남아 있다는 사실이 새삼 낯설게 다가온다.
지하로 내려가면 콘솔레이션홀과 하늘광장이 이어진다. '위로와 위안'을 뜻하는 콘솔레이션홀에는 순교 성인 다섯 분의 유해가 모셔져 있다. 어둡고 고요한 공간에 천장에서 내려오는 한 줄기 자연광이 스며든다. 빛과 침묵이 어우러져 절로 발걸음이 느려진다.
상설전시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서소문 밖 네거리의 역사와 천주교 박해, 순교자들의 삶을 보여주는 자료가 전시돼 있다. 동학과 관련된 자료도 눈길을 끈다. 전시물을 하나씩 들여다보며 종교와 사상이 다르다는 이유로 수많은 사람이 희생됐던 이곳의 아픈 역사를 되짚어본다.

▲정현의 〈서 있는 사람들〉 수없이 기차의 무게를 견뎌온 침목들이 사람의 형상으로 다시 서 있다. 묵묵히, 그러나 꼿꼿하게
문운주

▲동경대전(東經大全) 동학의 창시자 최제우가 지은 동학의 기본 경전. 동학의 사상과 가르침을 담고 있으며, 1880년 인제에서 처음 간행됐다.
문운주
<서 있는 사람들>은 서소문 밖 네거리 형장에서 종교적 박해로 순교해 성인의 반열에 오른 44인을 형상화한 작품이다. 수많은 기차가 지나가며 짓밟혔던 침목을 세워 만든 작품이다. 하늘을 향해 우뚝 선 모습이 이곳에서 신앙을 지키다 순교한 이들의 굳은 의지를 떠올리게 한다.
이 밖에도 <좁은 문>, <발아>, <영웅> 등 여러 조형물을 둘러보고 상설전시실에 전시된 자료도 찬찬히 살펴봤다. 그렇게 서소문 일대에 남아 있는 순교의 흔적을 돌아보며 도심 여행을 마무리했다. 빌딩과 자동차로 분주한 서울 한복판에서 오래전 이곳을 살다 간 사람들의 아픈 역사를 만난 시간이었다.

▲만리동 〈윤슬〉 빛이 물결이 되고, 서울의 풍경이 거울 위에서 일렁인다
문운주

▲상설전시장 곡선형 아치가 겹겹이 이어지는 상설전시장. 부드러운 곡선과 조명이 어우러져 마치 시간의 터널을 걷는 듯한 느낌을 준다.
문운주

▲성요셉문화거리 중림동 골목을 따라 이어지는 성요셉 문화거리. 오래된 건물과 좁고 비탈진 골목이 어우러져 서울 구도심의 정취를 간직하고 있다.
문운주

▲주한 프랑스대사관 건물 한국 현대건축의 거장 김중업이 설계한 주한 프랑스대사관. 한옥의 처마를 연상시키는 곡선 지붕에 한국 전통건축의 아름다움을 현대적으로 풀어냈다.
문운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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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참혹한... 서울 한복판에서 만난 아픈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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