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제조창 본관 입구 .한국공예관에서 열리는 ‘앙리 마티스와 프랑스 화가들’ 전시를 알리는 대형 현수막
믄운주
8일 오후, 국립현대미술관 청주를 나왔다. 바로 옆에는 문화제조창이 자리한다. 한때 담배를 만들던 청주연초제조창에는 이제 전시장을 찾는 관람객과 식당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시민들의 발길이 이어진다. 담배공장이 멈춘 자리에 문화와 예술이 들어선 청주의 또 다른 풍경을 만나러 간다.
문화제조창 1층은 높은 천장과 탁 트인 공간이 인상적이다. 식당과 편의시설이 자리하고, 2~3층 일부는 청주시청 임시청사로 사용되고 있다. 한때 담배를 만들던 공장은 이제 시민들이 식사를 하고 행정업무를 보며 전시장을 오가는 일상의 공간으로 바뀌었다.
1층 식당에서 늦은 점심을 먹었다. 메뉴는 육회비빔밥이다. 자극적이지 않고 담백했다. 닭강정과 감자고로케도 함께 나왔다. 비빔밥에 닭강정과 고로케라니 조금 낯선 조합이다. 시장기 때문이었을까. 한 그릇을 맛있게 비웠다.
점심을 마치고 전시장으로 향했다. 조금 전 국립현대미술관 청주에서 만난 방혜자의 '빛'과는 분위기부터 달랐다(관련기사 :
폭염에 떠나는 미술관 여행, '빛'을 만났습니다). 이번에는 앙리 마티스와 마리 로랑생, 라울 뒤피 등 프랑스 화가들의 작품이 기다린다. 청주에서 또 다른 미술 여행이 시작됐다.
마티스의 선과 색을 만나다

▲앙리마티스 자화상 /1923 중국종이에 석판
문운주

▲푸른누드 앙리마티스/1954 석판 원본
문운주
전시실에 들어서자 앙리 마티스의 작품이 하나둘 눈에 들어왔다. <자화상>에서는 간결한 선으로 표현한 깊은 눈매와 짙은 수염에 시선이 머문다. 화려한 색채로 잘 알려진 마티스지만 몇 개의 선만으로 인물의 표정과 분위기를 잡아낸 모습도 눈길을 끈다.
<푸른 누드>에서는 분위기가 달라진다. 푸른색으로 단순화한 인체가 화면을 가득 채운다. 종이를 오려 만든 형태는 단순하지만 굽힌 팔과 다리를 따라 시선을 옮기면 몸의 움직임이 느껴진다.

▲한 다발/1954년 앙리 마티스 ,종이에 다색 석판화
문운주

▲왕의 슬품 앙리마티스/1954년 동일제목의 ?컷아웃 작품을 기반으로 한 석판 원본
문운주
<한 다발> 앞에 섰다. 색이 먼저 눈길을 끈다. 파랑과 빨강, 초록과 주황이 화면을 채우고 단순한 형태와 선명한 색채가 어우러진다. 화려한 색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눈이 즐겁다.
말년의 대표작 <왕의 슬픔>에서는 그 특징이 더욱 뚜렷하다. 파랑과 노랑, 초록 등 강렬한 색의 종이를 오려 만든 인물과 식물의 형태가 화면을 채운다. 붓 대신 가위를 들었지만 마티스의 선과 색은 멈추지 않았다.
<자화상>의 간결한 선에서 <푸른 누드>와 <왕의 슬픔>의 대담한 색과 형태까지 차례로 둘러봤다. 몇 점의 작품만으로도 평생 새로운 표현을 찾아 나선 마티스의 변화를 엿볼 수 있었다.
화가이면서 시인이기도 했던 마리 로랑생

▲ 가든파티 중 삽화 3/1939년 종이에 댜색 석판
문운주
<가든파티> 앞이다. 한 여인의 모습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푸른색 소매와 갈색 옷, 검은 머리카락이 가느다란 선과 은은한 색으로 이어진다. 살짝 비껴보는 눈빛에는 화려한 파티와는 어울리지 않는 쓸쓸함이 묻어난다.
이 작품은 마리 로랑생이 영국 작가 캐서린 맨스필드의 단편소설 <가든파티>를 위해 그린 삽화 가운데 하나다. 소설은 부유한 집안의 소녀 로라가 정원 파티를 준비하던 중 이웃 노동자의 죽음을 접하며 삶과 죽음, 계층의 차이를 마주하는 이야기다. 소설의 내용을 떠올리며 다시 그림을 보니 여인의 눈빛에 한 번 더 시선이 머물렀다.

▲ 눈물의 연못 속 앨리스 / 이상한 나라 앨리스 삽화
문운즈

▲ 이상한 나라 앨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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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상자 속에는 로랑생이 삽화를 그린 1930년판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펼쳐져 있다. 앨리스와 여왕 등 익숙한 동화 속 인물들이 로랑생 특유의 부드러운 선과 옅은 색채로 등장한다.
몸이 커진 뒤 자신이 흘린 눈물에 빠진 앨리스의 장면도 볼 수 있다. 여왕과 함께하는 크로케 장면도 만날 수 있다. 익숙한 동화 속 이야기지만 그림이 달라지니 분위기도 새롭게 다가온다. 기묘한 앨리스의 세계가 로랑생의 손을 거쳐 부드럽고 몽환적인 풍경으로 펼쳐진다.
로랑생은 화가이면서 시인이기도 했다. 우리에게 '잊혀진 여인'으로 알려진 작품도 그가 쓴 시다.
권태로운 여인보다 더 불쌍한 여인은
슬픔에 젖은 여인입니다
…
죽은 여인보다 더 불쌍한 여인은
잊혀진 여인입니다.
시를 떠올리며 그림 속 여인을 다시 바라봤다. 부드러운 선과 은은한 색으로 그려진 얼굴이지만 눈빛에는 어딘가 쓸쓸함이 배어 있다. 그림과 시를 오가며 자신만의 세계를 그려낸 로랑생, <가든파티> 속 여인의 눈빛이 오래 남았다.
뒤피의 바다와 책 속 그림

▲노르망디해안 항구에 정박한 배와 펄럭이는 깃발을 밝고 경쾌한 색채로 담아낸 라울 뒤피의 〈노르망디 해안〉
문운주

▲바르드리칼 붉은 드레스를 입고 꽃을 든 여인을 그린 라울 뒤피의 《마드리갈》 삽화
문운주
라울 뒤피의 그림 앞에 이르자 전시장 분위기가 한층 밝아졌다. 노르망디 해안을 그린 작품에는 항구에 정박한 배와 펄럭이는 깃발, 해안의 집들이 펼쳐진다. 파랑과 빨강, 노랑이 어우러진 화면에서는 바닷가의 활기가 느껴진다.
<마드리갈>의 삽화에서는 붉은 드레스를 입고 꽃을 든 여인이 눈길을 끈다. 바다와 여인이라는 서로 다른 소재지만 자유로운 선과 밝은 색채에서는 뒤피 특유의 경쾌함이 느껴진다.
라울 뒤피(1877~1953)는 밝은 색채와 자유로운 선으로 자신만의 화풍을 만든 프랑스 화가다. 바다와 항구, 요트와 음악회 등 일상의 풍경을 즐겨 그렸다. 문학에도 관심을 가져 시집과 책의 삽화 작업에도 참여했다. 전시장에 놓인 아트북을 들여다보니 캔버스와는 또 다른 뒤피의 작품 세계를 만날 수 있었다.
'앙리 마티스와 프랑스의 화가들' 특별전에서는 세 화가의 서로 다른 개성이 눈길을 끈다. 마티스의 대담한 색과 단순한 형태, 로랑생의 부드러운 선과 옅은 색채, 뒤피의 밝고 자유로운 선을 한자리에서 만났다. 책에서만 보았던 작품을 직접 마주한 시간이었다. 전시는 10월 25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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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 옛 담배공장에서 만난 프랑스 화가 작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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