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은 사람의 서열을 재는 시험이 아니다

등록 2026.08.07 13:34수정 2026.08.07 1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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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의 이름에는 제도의 목적이 담겨 있다. 대학수학능력시험은 말 그대로 대학에서 공부할 능력을 판단하는 시험이다. 대학 수학에 필요한 능력을 확인하는 자격시험이어야 한다. 그러나 지금의 수능은 전국 수험생의 상대적 위치를 가리는 데 더 충실하다. 무엇을 이해했는가보다 몇 명을 앞섰는가가 중요하다. 상대평가는 수능의 목적을 뒤집어놓은 모순이다.

교육부와 국가교육위원회가 수능과 고교 내신의 절대평가 전환, 서술·논술형 평가 확대를 검토하고 있다. 불안과 반발이 따르는 대입제도를 정면으로 다루는 결단을 응원한다.

상대평가는 성취 기준에 도달했는지를 묻지 않는다. 옆 사람보다 앞섰는지를 묻는다. 모두가 충분히 배웠어도 누군가는 낮은 등급을 받아야 한다. 친구의 성취가 나의 불이익이 되고 협력보다 경쟁이 합리적인 선택이 된다. 학교는 협력을 가르치면서 평가에서는 친구를 경쟁자로 대하도록 훈련한다.

이 구조에서 공교육이 온전할 수 없다. 학교 수업은 출제 경향에 종속되고 사교육은 더 빠른 풀이법과 희귀한 정보를 판매한다. 부모의 경제력은 점수가 되고, 점수는 대학 간판과 취업의 차이로 이어진다. 상대평가는 공교육의 몰락과 사교육 팽창, 경쟁만능주의와 학벌사회를 재생산하는 엔진이다.

절대평가를 말하면 "우리도 경쟁하며 공부했고 경제성장을 이루었다", "뛰어난 소수가 다수를 먹여 살린다", "요즘 아이들은 어려움을 견디지 못한다"는 반론이 나온다. 산업화 시대의 교육이 압축성장에 기여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과거에 역할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그 제도를 영원한 원리로 삼을 수는 없다. 오늘의 사회는 정답 없는 문제를 함께 풀고, 다른 생각을 조정하며, 자신의 판단에 책임지는 사람을 요구한다. 사회는 몇몇 수재만으로 유지되지 않는다. 교육은 소수의 승자를 세우는 일이 아니라 각자가 자신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타인과 더불어 살아갈 힘을 갖게 하는 일이다.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문제를 더 빨리 푸는 능력만이 아니다. 한 권의 책을 끝까지 읽을 시간, 한 문제를 오래 생각할 여유, 친구의 말을 기다려 들을 인내가 필요하다. 공부는 타인을 이기기 위한 무기가 아니라 자기 확신을 의심하고 타인을 함부로 단정하지 않기 위한 연습이어야 한다. 사랑과 박애, 배려와 연대는 공동체를 지탱하는 힘이다.


인공지능은 정답을 인간보다 빠르게 찾는다. 그러나 자신의 판단을 의심하고 타인의 처지에서 다시 생각하는 일은 인간의 몫이다. 교육은 질문을 만들고 근거를 검토하며 자신의 언어로 생각을 설명하는 힘을 길러야 한다.

절대평가는 기준을 낮추자는 제도가 아니다. 학생이 갖춰야 할 지식과 사고력의 기준을 세우고 그 기준에 도달했는지를 엄정하게 판단하자는 것이다. 90점과 89점의 우연한 차이를 평생의 진로 차이로 확대하지 말자는 것이다. 절대평가는 평가의 포기가 아니라 정상화다.


독일의 아비투어는 일정한 기준을 충족한 학생에게 대학입학자격을 부여한다. 중요한 것은 제도의 모방이 아니라 시험의 철학이다. 읽고 쓰고 토론하고 설명하는 공부가 시험 준비와 분리되지 않게 해야 한다.

절대평가만으로 대학 서열과 사교육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지역대학 육성, 학벌 중심 채용 개선, 대학별 지필고사 제한과 선발 기준 공개가 함께 추진되어야 한다. 서술·논술형 평가도 단계적으로 확대하고 공정한 채점 기준과 이의신청 절차를 갖춰야 한다.

"아직은 시기상조"라는 말은 교육개혁을 미룰 때마다 등장했다. 그러나 완벽히 준비된 뒤 시작할 수 있는 개혁은 없다. 방향을 정하고 인력과 예산, 제도를 갖추는 것이 개혁이다. 바꾸어서 생길 혼란만 걱정하고 바꾸지 않아서 아이들이 치르는 비용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수능은 학생을 떨어뜨리기 위한 시험이 아니라 대학에서 배울 준비를 확인하는 시험이다. 수능 절대평가는 경쟁에 빼앗긴 아이들의 생각할 시간과 서로를 인간으로 바라볼 여유를 돌려주는 일이다. 시기상조가 아니라 이미 너무 늦어진 개혁이다.
#수능 #대학입시 #사교육 #서열화 #경쟁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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