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북 경주 문무대왕릉.
권우성
개인적으로 문무왕을 높이 평가하는 부분이 있다. 바로 '호국 정신'이다. 이는 살아 생전에 충분히 발휘됐지만, 말년에 이르러서도 변함이 없었다. 문무는 죽기 직전에 신하들에게 다음과 같은 유언을 남겼다.
"나는 죽어서도 나라를 지키는 용이 되겠다. 나를 동해에 장례를 치러 달라."
이에 따라 다른 왕들처럼 거대한 능이 만들어지지 않았다. 동해의 한 바위섬에 화장된 유골이 안치됐다. 이곳이 오늘날의 '문무대왕릉'이다. 먼 발치에서 보면 작은 암초처럼 보이지만, 가까이 가면 범상치 않은 기운을 느낄 수 있다.
문무의 아들인 신문왕은 아버지의 뜻을 기리기 위해 감은사지에 절을 세웠다. 전해지는 이야기로는, 바다의 용이 된 문무왕이 절 아래 수로를 통해 드나들며 나라를 지켰다고 한다. 비록 설화적 요소가 강하지만, 문무왕이 후대에 얼마나 호국 군주로 기억됐는지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문무도 긍정적 평가만 있는 것은 아니다. 비판적 시각도 존재한다. 외세의 힘을 빌려 고구려와 백제를 멸망 시켰다는 점, 그리고 삼국 통일이 한반도 전체가 아니라 대동강 이남 지역으로 한정됐다는 점이 대표적 비판 지점이다. 이것은 뼈아픈 사실이기에 부인할 수 없다. 그렇다고 문무가 자신이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최선을 다했다는 사실까지 비판할 수는 없다. 그의 노력으로 말미암아 한민족의 역사가 지켜지고 오늘날까지 이어질 수 있었다는 사실도 그렇다. 이는 대하사극으로 문무를 조명하기에 합당한 이유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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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겸 기자.
저서로 [소련의 서기장들], [전쟁의 역사], [정변의 역사], [암살의 역사], [숙청의 역사-세계사편], [숙청의 역사-한국사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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