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폭염 등 악천후는 택배노동자 생명안전, 건강권에 심각한 영향을 미친다.
전국택배노조
기후 위기, 그 중에서도 폭염에 의한 사망자가 급격하게 늘고 있는 것이 서유럽의 현실이다. 이에, 유럽 각국은 폭염을 기후 위기로서의 대응에 더해, 산업안전의 문제로 접근하려는 경향들이 곳곳에서 확인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나라는 '산업안전보건법의 적용 범위' 즉, 근로자에게만 적용할 것인가, 누구에게나 적용할 것인가, 라는 구태의연한 쟁점을 두고 논쟁을 벌이고 있다. 결국 폭염에 대한 사전 예방과 사후 조치라는 법이 정하고 있는 사용자의 부담 의무는 전적으로, 택배 노동자 개인의 책임이 되고 만다.
폭염에 대한 대응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볼 때, 택배 노동의 특성은 복합적이다. 하루 일과의 시작은 터미널에서 분류와 상차 작업을 하는, 이른바 '정주 노동'으로 시작된다. 뒤이어 차량을 타고 이동하며 무거운 상자를 들고 계단을 오르내리는, 소위 '이동 노동'이 이어진다. 매일 반복되는 하루에도 노동 환경이 변화하는 만큼 산업안전보건법 역시 이러한 현실을 반영한 입체적인 적용이 필요하다.
누군가는 "차 안에서 에어컨을 켜고 쉬면 되는 것 아니냐"고 말할 수도 있다. 실제로 배송 중 잠시 차량 안에서 더위를 피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법과 제도가 보장하는 안전이 아니라, 노동자 스스로가 자신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해 막다른 골목에서 선택하는 임시방편일 뿐이다. 국가가 없는 것도 아니고, 법이 없는 것도 아닌데, 노동자의 생명과 안전이라는 문제가 개인의 요령에 기대어 유지되어서는 안되지 않겠는가.
그러나, 이보다 더 큰 문제는, 심각한 사고가 발생한 이후에도 사고에 대한 책임 구조가 달라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지난해 여름에도 폭염 속에서 닷새 사이 세 명의 택배 노동자가 잇따라 목숨을 잃는 안타까운 일이 있었다. 그러나 폭염 대책은 오히려 작년보다 올해가 더 후퇴했다는 현장의 목소리마저 들린다. 생명을 위협하는 위험은 반복되는데도, 법은 그 위험 앞에서 충분한 보호막이 되어 주지 못하고 있다.
이 글은 택배 노동자만을 특별히 배타적으로 보호해 달라는 특권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대표적인 야외 노동과 이동 노동인 건설 노동자들과, 배달 노동자들, 퀵서비스, 가전 설치 노동자들, 대리운전 노동자 등 폭염과 한파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수 많은 특수고용·플랫폼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택배 노동자의 입장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누구라도 계약 형태가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생명과 안전의 법적 보호에서 뒷전으로 밀려나 차별을 받아서는 안 된다.
오늘의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첨단 메모리 반도체로 세계 시장을 석권하고 있는 반도체 강국이라는 자부심을 느끼고, K-culture로 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 문화 강국이라는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 그런데 한쪽에선 폭염이 닥칠 때마다 수많은 야외 노동자가 생명의 위협을 감수하며 일해야 하고, 심지어 그 사고의 예방과 책임의 문제가 오로지 노동자 개인에게만 전가되고 있다. 이 현실이 주는 괴리감에 내가 매일 경험하고 있는 현실이 오히려 비현실적으로 느껴질 정도이다.
물론, 법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만병 통치약'도 아니고, 모든 위험을 사전에 없앨 수 있는 '전가의 보도'도 아니다. 그러나 충분히 예상 가능하고, 얼마든지 예방할 수 있는 위험 앞에서 누구를 보호하고, 누구를 보호하지 않을 것인지의 문제로 시간 끌기를 해서는 안 된다. 폭염이 근로자와 특수고용노동자를 구분해서 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폭염은 모두에게 온다. 이제는 산업안전보건법도 모두에게 적용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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