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련에서 연길까지 중국 대련에서 연길까지 1,600km 대장정
정선영
그 길 위에서 나는 몇 개의 질문과 마주했다. 민족과 국민은 어떻게 구분해야 할까? 중국의 동북공정(중국 동북부(만주)에 있었던 나라들이 중국의 역사라고 주장하는 정부 주도의 수정주의적 역사 왜곡)에 우리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중국은 과연 선진국이 될 수 있을까? 전체를 담기엔 지면에 한계가 있을 것 같아서 가장 강렬했던 몇 장면만 풀어놓으려 한다.
우리가 손을 흔들자, 그들도 손을 흔들었다
대련에 도착한 다음 날 아침, 우리는 압록강 단동부교를 걸어서 건넜다. 다리는 중간에서 끊겨 있었다. 맑게 갠 하늘 아래, 다리 끝에 서서 더 선명해진 북한 땅을 바라보다, 나도 모르게 노래를 흥얼거렸다. '직녀에게'였다.
"이별이 너무 길다 슬픔이 너무 길다 선 채로 기다리기엔 세월이 너무 길다... 연인아, 연인아 이별은 끝나야 한다. 슬픔은 끝나야 한다. 우리는 만나야 한다."
만날 수 없는 연인 사이에 빗대 분단을 노래한 가사인데, 부르다 보니 가슴 밑바닥에서 뭔가 뜨거운 게 울컥 올라왔다. 다리 아래로 내려가 배를 타고 수풍댐 근처까지 올라갔다. 왼편은 중국, 오른편은 북한. 수영할 줄 아는 사람이라면 헤엄쳐 건널 수도 있을 만큼 가까운 거리였다.
번듯한 중국 쪽 건물들과 달리, 북한 쪽엔 산과 밭, 그리고 미국의 경제 제재로 문을 닫았다는 공장들이 드문드문 보였다. 밭길 사이로 걸어가는 주민들의 모습도 눈에 들어왔다. 우리와 똑같이 생긴 사람들인데, 그들을 발견할 때마다 왜 그리 신기하고 반가운지.

▲북한땅 압록강 너머 북한땅. 처음부터 끝까지 철책선이 둘러있다.
정선영
그때,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강가 초소에 서 있던 북한 군인 두 명을 향해 우리가 소리 없이(괜히 목소리를 냈다가 무슨 일이 생길지 몰라) 크게 팔을 흔들었다. 그러자 군인들이 우리를 향해 팔을 번쩍 들어올린 것이다.
그저 무심한, 어디서나 있을 법한 사람 사이의 소박한 몸짓. 그런데 그 순간이 왜 그토록 감격스러웠을까. 서로에게 호의를 가진 마음과 마음은 통하는구나. 마음에는 국경선이 없구나. 우리는 결코 서로 적대할 수 없는 한 민족이구나. 그런 복잡한 감정이 밀려왔다.
중국 조선족 저명 시인 윤동주
다음 날엔 환도산성, 장수왕릉, 광개토왕릉 등 고구려 유적지를 둘러봤다. 장수왕릉은 중국 정부가 A5 등급의 최상급 국가 사적지로 지정해 놓았다. 그런데 유적지 곳곳에서 고구려가 철저히 '중국 땅 안에 존재했던 소수민족'으로 규정돼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우리는 유적지를 걸으며 열띤 이야기를 나눴다. 한 나라의 영토 안에 있으면 그 나라 국민이자 한 민족인 걸까. 민족이란 개념이 혈통과 언어, 역사적 경험의 공유를 전제로 한다면, 고구려인들을 과연 중국의 소수민족이라 부를 수 있을까.

▲환도산성 고구려 유적지 환도산성
정선영
이 의문은 여행 내내 필자를 따라다녔다. 원래 일정에는 윤동주 시인의 묘소 참배가 있었다. 하지만 당일 아침, 중국 공안으로부터 갑작스러운 통보를 받았다. 윤동주 묘소에는 갈 수 없다는 것이었다. 아마 한국인들의 민족의식이 고양되는 걸 경계한 것 같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윤동주 생가는 갈 수 있다고 했다. 이유는 모른다. 그저 그들의 결정에 따라야 할 뿐.
사실 여행 첫날부터 공안은 우리 일행을 졸졸 따라다니며 감시하고 있었다. 일반 패키지여행과 달리 아무래도 북한 접경 지역 위주로 다니다 보니 공안이 우리를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살피는 것 같았다.

▲윤동주 생가 중국 당국이 '중국조선족 저명시인' 윤동주라고 머릿돌에 새겨놓았다.
정선영
윤동주 생가 정문 앞 머릿돌에는 이런 글씨가 쓰여 있었다. '중국 조선족 저명시인 윤동주'. 우리에게 윤동주가 누구인가. 한국을 대표하는 민족 시인이다. 하지만 중국의 시선에서 그는 그저 여러 소수민족 중 하나인 조선족 시인일 뿐이었다.
그럼에도 생가를 이렇게 잘 보존해 놓은 이유는 뭘까. 한국인들에게 그 사실을 명확히 각인시키기 위함일까, 아니면 한국인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함일까. 사실 중국의 논리대로라면, 중국 땅에서 태어나 자란 윤동주를 중국인(엄밀히 말해 재미교포나 재일교포와 다름없는 재중교포)이라 불러도 아주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씁쓸하고 개운치 않은 뒷맛이 오래 남았다.
윤동주를 비롯해 항일 운동을 했던 지사들이 살았던 북간도 명동촌 마당에 큰 석류 모형이 있었고 그 아래 이런 의미의 글이 쓰여있었다. "석류알들이 뭉쳐서 하나가 되듯이 모든 민족이 하나의 중국으로 뭉치자." 하지만 석류알들이 껍질을 깨고 나와야 그것을 다시 심어 계속 열매를 맺을 수 있다는 사실을 그들은 모르는 것 같다.

▲동북공정의 상징 석류알이 뭉쳐 하나의 석류가 되듯이 모든 민족이 하나의 중국이 되자는 뜻이라고 한다.
정선영
첨단 기술과 통제, 그 모순 사이에서
이런 동북공정의 흔적은 여행 내내 곳곳에서 발견됐다. 지면 관계상 다 담을 수는 없지만, 이번 여행을 통해 나는 중국이라는 나라의 모순을 다시 확인했다. 지금 중국은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겠다며 우주항공, 피지컬 AI, 자율주행차, 드론 등 여러 첨단 산업을 키우고 있다(3년 전 나는 이 소재로 다큐멘터리를 만든 적이 있어, 중국이 이 분야에서 얼마나 앞서 있는지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철저한 관리와 통제 국가라는 사실은 결국 국가 발전의 발목을 잡을 것이라 생각한다. 필자는 여행을 앞두고 wifi 사용을 위해 VPN을 설치했지만, 중국의 단단한 방화벽을 뚫지 못하고 결국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데이터를 아껴 써야 했다.
경찰이 외국 여행객을 따라다니며 어디는 가라, 어디는 가지 말라 간섭하는 나라, 인터넷과 스마트폰으로 외부와 연결되는 통로를 차단하는 나라, 지구상에 그런 나라가 얼마나 있을까. 기술력만으로 선진국이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자국민은 물론 외국인의 사생활까지 관리하고 통제하는 국가가 선진국으로 나아가긴 어렵지 않을까.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댓글6
현직 방송작가. <SBS 스페셜>, <KBS 환경스페셜>, <EBS 다큐프라임> 등 다큐멘터리 작업을 했고, 하고 있습니다.
세상은 냉철한 시선으로, 사람은 따뜻한 가슴으로 보려고 노력합니다.
공유하기
압록강 건너편에서 손을 흔들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