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025년 10월 24일 리향대씨가 1심 승소 후 지지자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있다. 이날 재판부는 소에다 시오리 시의원의 온라인 게시물이 리향대씨의 명예훼손, 프라이버시 침해, 초상권 침해, 인격권 침해를 인청, 피고 소에다 시오리에게 55만엔의 손해 배상 지급 명령, 온라인에 남아 있는 게시물 살제를 명령랬다.
김지운
정치인의 말은 개인의 말과 다르다
사건은 2024년 오사카의 이벤트 회사 트라이하드재팬(THJ)이 센난시 행사 사업을 맡으면서 시작됐다.
센난시 시의원인 소에다 시오리는 회사를 향해 "중국공산당과 연결돼 있다", "공금이 새고 있다"는 취지의 주장을 반복했다. 회사가 이를 허위사실이라며 소송을 제기하자, 그날 밤부터 회사 임원이던 리향대씨 개인을 겨냥한 게시물이 이어졌다.
소에다 의원은 리씨가 조선학교 무상화 운동에 참여했던 사실과 조선학교 관련 사진, 재일동포 유학생 간첩조작 사건 피해자인 이철씨와의 친족관계를 SNS에 공개했다. 직접 '북한 공작원'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지는 않았지만, 게시물에는 "북한 공작원", "반일 활동가", "일본의 적"이라는 댓글이 이어졌고 온라인상에서 집단적인 공격이 시작됐다.
리씨는 결국 자신의 존재 때문에 회사가 피해를 입는 것은 아닌지 고민하며 임원직 사퇴까지 생각했다고 법정에서 진술했다.
이번 재판에서 핵심 개념으로 떠오른 것이 '도그휘슬 헤이트'다.
도그휘슬은 사람에게는 들리지 않지만 특정 대상만 들을 수 있는 호루라기를 뜻한다. 정치에서는 노골적인 차별 발언 대신 특정 단어와 이미지를 반복해 지지층에게만 혐오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식을 의미한다.
교토 도시샤대학교 이타가키 류타 교수는 법원에 제출한 의견서에서 소에다 의원의 게시물을 전형적인 도그휘슬형 인종주의라고 분석했다.'조선학교', '북한', '중국계 기업'이라는 단어를 반복적으로 연결하면서 직접적인 혐오표현을 하지 않아도 지지자들이 특정 민족을 공격하도록 유도하는 구조라는 것이다.
이번 사건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부분은 혐오를 생산한 주체가 일반 시민이 아니라 선출직 공직자라는 점이다. 과거 일본 사회에서 재일동포들을 향한 헤이트스피치는 주로 극우 시민단체나 일부 개인들이 주도해 왔다. 물론 그 역시 심각한 사회문제였지만, 이번 사건은 양상이 다르다.
지역 주민을 대표하는 지방의회 의원이 자신의 정치적 영향력과 공적 지위를 활용해 특정 개인을 공격했고, 그 결과 온라인에서 수많은 혐오 발언과 신상털기가 이어졌다. 공직자의 발언은 일반 시민의 발언과 무게가 다르다. 시민들은 정치인의 발언을 사실이나 공적 판단으로 받아들일 가능성이 높고, 그만큼 사회적 파급력도 훨씬 크다.
이 때문에 국제인권기구들은 오래전부터 정치인의 혐오표현이 민주주의와 소수자 인권을 동시에 위협한다고 경고해 왔다.

▲ 소에다 시오리 시의원이 'X'에 투고한 게시물, 리향대 씨의 사진과 함께 트라이하드(TRY HARD) 임원이며, 오사카조선고급학교 어머니회 전 임원인 리향대(李香代). 사촌은 ‘재일유학생 간첩단 사건’으로 사형 판결을 받았던 이철씨. 재일양심수동우회) 대표라고 적혀 있다. 소에다 시오리 시의원은 이외에도 리향대씨를 혐오하는 여러 건의 게시물을'X'에 투고했다.
김지운
일본 현대사가 보여준 '혐오 선동'의 위험성
일본 현대사는 공권력과 정치권이 만들어낸 혐오가 얼마나 참혹한 결과를 낳을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경험을 갖고 있다.
1923년 간토대지진 당시 일본 정부와 경찰, 군은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풀었다", "방화를 저지르고 있다"는 유언비어를 제대로 차단하지 못했고, 일부는 이를 확산하는 데 관여했다는 역사적 평가를 받고 있다. 이러한 허위정보는 민간 자경단의 폭력을 부추겼고, 결국 수천 명의 조선인이 학살되는 비극으로 이어졌다.
오늘날 일본 사회가 당시와 동일하다고 볼 수는 없다.그러나 혐오와 편견이 공적인 권위를 가진 사람들의 입을 통해 정당성을 얻기 시작할 때, 그 파급력이 일반 개인의 혐오발언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커질 수 있다는 역사적 교훈은 여전히 유효하다.
"개인을 공격했지만 표적은 재일동포였다"
1심에서 오사카지방법원은 소에다 의원의 게시물이 명예훼손과 프라이버시권 침해에 해당한다고 판단해 손해배상과 게시물 삭제를 명령했다. 그러나 이를 인종차별로는 인정하지 않았다. 항소심은 바로 이 부분을 다시 판단하게 된다.
이타가키 교수는 의견서에서 특정 개인을 공격했더라도 그 이유가 민족적 출신이라면 유엔 인종차별철폐협약상 인종차별에 해당한다고 설명한다.
리향대씨가 공격받은 이유는 개인의 범죄나 위법행위 때문이 아니었다. 그가 재일동포이고 조선학교 교육권 운동에 참여했던 사람이라는 사실 자체가 공격의 근거가 됐다.즉, 공격은 개인을 향했지만 그 배경에는 재일동포 전체에 대한 편견과 혐오가 자리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 지난해 부산의 시민단체 '조선학교와 함께하는 시민모임 봄' 초청으로 리향대씨가 이번 소송에 관한 강연을 하고 있다.
김지운
대한민국이 이 재판을 외면해서는 안 되는 이유
이번 사건은 일본 국내 재판이지만 한국 사회 역시 관심을 가져야 한다.
첫째, 리향대씨는 대한민국 국적을 가진 재외국민이다. 해외에 거주하는 대한민국 국민이 민족적 배경을 이유로 조직적인 혐오와 인권침해를 당한 사건이라는 점에서 우리 정부와 사회도 무관할 수 없다.
둘째, 이번 사건은 재일동포 한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일본 사회에서 재일동포의 시민권과 인권이 어디까지 보장되는지를 보여주는 시험대다.
셋째, 혐오표현의 양상이 변하고 있다는 점이다. 과거 재일조선인과 조선학교를 향한 헤이트스피치와 헤이트크라임은 주로 일부 극우 시민단체나 개인의 행동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최근에는 일부 정치인들이 혐오를 정치적 동원의 수단으로 활용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공직자가 특정 집단을 암시적으로 낙인찍고, 이를 지지자들이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증폭시키는 '도그휘슬' 방식은 개인의 일탈을 넘어 민주주의와 인권의 문제로 이어진다. 이번 항소심은 단지 리향대씨 개인의 명예회복을 위한 재판이 아니다.
일본 사법부가 정치인의 혐오 선동에 어디까지 책임을 물을 것인지, 그리고 재일동포를 비롯한 소수자의 존엄과 안전을 어떻게 보호할 것인지에 대한 중요한 기준을 세우는 재판이다.그 판결은 일본 사회뿐 아니라, 일본에 살고 있는 수많은 대한민국 국적 재외동포들의 일상과 안전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 올해 7월 오사카에서 열린 강연회에서 재일동포와 일본 시민들이 리향대씨를 응원하고 있다.
김지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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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거주,
조선학교, 재일동포, 재외동포 관련 뉴스 취재,
다큐멘터리'항로-제주,조선,오사카', '차별' 감독,
조선학교와 함께하는 시민모임 봄 총괄사업단장,
이스크라21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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