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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서가 지운 독립운동가들... 아이들 질문에 대답 못한 이유

[아이들은 나의 스승] 동아리 아이들과 함께한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의 본향' 경북 안동 답사기

등록 2026.07.17 14:13수정 2026.07.17 1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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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동시 풍산면에 자리한 학암 고택 입구. 이곳은 조선공산당 초대 비서인 김재봉의 생가로, '조선 독립을 목적하고'라는 글귀가 새겨진 어록비가 있다. 계급 해방과 조국의 독립을 동시에 추구했던 그의 인식을 보여준다.
안동시 풍산면에 자리한 학암 고택 입구. 이곳은 조선공산당 초대 비서인 김재봉의 생가로, '조선 독립을 목적하고'라는 글귀가 새겨진 어록비가 있다. 계급 해방과 조국의 독립을 동시에 추구했던 그의 인식을 보여준다. 서부원

정확히 천 리 길이었다. 첫째 날, 몇 군데 답사지를 경유해 이육사 문학관 근처의 숙소에 도착해 보니, 렌터카 계기판에 맞춰둔 0km가 400km를 가리켰다. 고속도로로 이곳 광주에서 서울까지가 채 300km가 안 되는 거리이니, 이번 동아리 답사 여행은 말 그대로 강행군이었다.

지난 주말(11~12일) 이틀 일정으로 현대사를 함께 공부하는 역사 동아리 아이들과 함께 경북 안동 일대를 답사했다. '일제강점기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가'를 주제로, 그들의 생가와 묘소 등의 발자취를 찾아가 보기로 했다. 알아보니 그들의 고향은 십중팔구 대구 아니면 경상북도였다.

직접 운전까지 해가며 굳이 이 먼 경북 북부 지역을 찾은 건, 교과서의 이 한 문장 때문이었다. '3.1 운동 이후 독립운동은 민족주의와 사회주의의 두 축으로 전개되었다'. 독립운동의 방식을 달리했던 두 진영은 일제의 탄압에 맞서 서로 대립하고 때론 단결을 모색하면서 조국의 해방을 꿈꾸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초대 국무령 이상룡 선생의 고택, 임청각에서 후손의 설명을 듣고 있는 동아리 아이들. 공교롭게도 당일 국가유산채널 방송에서 촬영 나와 공부하는 동아리 아이들의 모습을 담았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초대 국무령 이상룡 선생의 고택, 임청각에서 후손의 설명을 듣고 있는 동아리 아이들. 공교롭게도 당일 국가유산채널 방송에서 촬영 나와 공부하는 동아리 아이들의 모습을 담았다. 서부원

"일제강점기에 사회주의 세력이 주도한 독립운동에는 어떤 게 있나요?"

한 아이가 던진 이 질문에 잠시 대답을 머뭇거렸다. 기실 '사회주의 세력이 주도하지 않은 독립운동에 어떤 게 있는지' 묻는 게 더 적확한 질문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3.1 운동 이후 1920~1930년대 독립운동의 팔 할은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가의 몫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1917년 러시아 혁명의 광풍이 전 세계에 몰아치던 당시 유라시아 대륙의 변방인 조선도 사회주의의 물결을 피할 수 없었다. 1921년에 중국 공산당이 수립됐고, 1925년 조선 공산당도 깃발을 세웠다. 노파심에 한마디 얹자면, 이는 지금 북한 김정은의 노동당과는 궤를 달리하는 정당이다.

당시 사회주의는 '신사상'으로 불리며 식민지 지식인들을 매혹했다. 독립 투쟁을 위한 이념적 도구로 빠르게 확산했고, 전 세계의 사회주의자들은 연대하며 제국주의의 식민지 침탈에 맞서 싸웠다. 1925년 제정된 일제의 치안유지법도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가를 탄압하기 위한 악법이었다. 치안유지법은 해방 후 여순 사건을 계기로 만들어진 국가보안법의 모태가 됐다.


당장 1923년 경남 진주에서 일어난 형평운동부터 사회주의적 평등사상이 스며들어 있다. 신분 차별에 맞선 백정들의 저항은 끝내 실패하고 말았지만, 신분 해방을 염원하는 민심의 도도한 물줄기는 막을 수 없었다. 조선 공산당의 2대 비서인 강달영이 진주 출신인 건 결코 우연이 아니다.

같은 해 전남 신안의 작은 섬, 암태도에서 일어난 소작쟁의도 당시 광범위하게 퍼져 가던 사회주의와 무관치 않다. 수확량의 7~8할에 이르던 소작료를 인하하고 일제가 뒷배를 봐주던 악덕 지주의 횡포에 맞선 농민들의 투쟁은 사회주의의 확산을 부채질했다. 암태도 소작쟁의는 항일 투쟁의 첫 성공 사례로 손꼽힌다.


사회주의 세력이 주도한 독립운동들, 역사의 빈칸

3.1 운동이 좌절되고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분열하며 국내외 독립운동이 침체의 늪에 빠졌을 때 저항의 불씨를 살려낸 이들도 사회주의자들이었다. 당시 전 세계 식민지 해방 운동을 지원했던 국제공산당 조직 코민테른의 역할이 컸다. 사회주의를 공부한 학생들은 일제의 식민 통치와 차별 교육에 맞서 동맹휴학을 벌여나갔다.

1926년의 6.10 만세운동은 사회주의자들이 주도한 대표적인 독립운동이다. 이는 사회주의자와 비타협적 민족주의자와의 연대 필요성을 절감한 계기로 작용했다. 반년 뒤 정우회 선언으로 이어졌고, 이른바 민족유일당 운동이 전개되며 신간회의 결성으로 결실 맺었다. 신간회는 전국에 수많은 지부까지 갖춘, 일제강점기 최대의 항일 민족운동 단체다.

신간회의 활동은 1929년에 일어난 광주학생독립운동을 전국적으로 확산시킨 기폭제가 되었다. 이 또한 사회주의 사상운동 단체였던 조선학생사회과학연구회와 학교마다 조직되어 있던 독서회가 주도했다. 사회주의자들이 주도한 광주학생독립운동은 3.1 운동 이후 최대의 민족운동으로 평가받고 있다.

일제의 대륙 침략이 본격화한 1930년대에도 사회주의자들은 혁명적 노동조합운동과 농민운동의 견인차 노릇을 하며 항일 투쟁을 이끌었다. 만주로 건너가 중국 공산당 세력과 손잡고 '한중 연합작전'을 전개하는가 하면, 동북항일연군을 결성하여 게릴라 작전을 수행하기도 했다. 당시 중국은 우리와 항일 투쟁의 '동지'였다.

중국 본토에서는 김원봉의 의열단 세력을 중심으로 사회주의 계열의 정당이 모여 조선민족혁명당을 결성하였다. 김두봉이 이끄는 조선독립동맹 역시 옌안의 중국 공산당과 연대하여 항일 무장 투쟁을 선도하였다. 주시경의 수제자로 일제강점기 말 '말모이'를 주도한 한글학자이기도 한 김두봉은 해방 후 북한 정권 수립에 앞장섰다.

사회주의 세력이 주도한 독립운동을 소략해도 이 정도다. 그런데, 정작 안타까운 건 따로 있다. 그들이 주도한 독립운동의 이름은 청사에 빛나지만, 그저 사회주의 계열이라고 뭉뚱그릴 뿐 주동자가 누구인지는 잘 모른다는 점이다. 심지어 사회주의자를 민족주의자로, 민족주의자를 사회주의자로 혼동하는 경우마저 드물지 않다.

앞서 언급한 형평운동과 암태도 소작쟁의를 이끈 인물의 이름을 댈 수 있는 이는 거의 없을 줄 안다. 백정과 소작 농민이 주도했다고 두루뭉수리 눙칠 뿐이다. 시험에 단골로 출제되는 6.10 만세운동과 광주학생독립운동 역시 마찬가지다. 그저 청년 학생들이 주도한 독립운동 정도로 기억할 뿐이다. 민망한 고백이지만, 역사를 가르치는 교사라고 크게 다를 것도 없다.

역사에서 지워진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가들

 안동 풍산의 오미동 마을 입구에 세워진 봉황문. 안동 지역에는 한 집 건너 한 집꼴로 독립운동가를 배출한 마을이 숱하다. 삿된 기운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홍살문 닮은 표식을 세워둔 게 이채롭다. 이는 독립운동의 성지인 안동의 자긍심을 보여준다.
안동 풍산의 오미동 마을 입구에 세워진 봉황문. 안동 지역에는 한 집 건너 한 집꼴로 독립운동가를 배출한 마을이 숱하다. 삿된 기운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홍살문 닮은 표식을 세워둔 게 이채롭다. 이는 독립운동의 성지인 안동의 자긍심을 보여준다. 서부원

반면에 연인원 200만여 명이 참여한 3.1운동은 유관순이라는 특정 인물이 언급되고, 1920년 평양에서 시작된 물산장려운동은 자연스럽게 조만식이라는 이름부터 떠올린다. 비슷한 시기 일제의 식민지 동화 교육에 대한 반발로 추진된 민립 대학 설립 운동도 주도한 인물을 이상재로 못 박고 있다. 예컨대, 동학농민운동과 전봉준을 한데 묶어 이해하는 식이다.

참고로, 국산품을 애용하자는 물산장려운동은 물가가 올라 자본가들만 배를 불렸다는 비판과 함께 지도부가 일제와 타협하는 모습을 보이며 채 1년도 못 되어 흐지부지됐다. 민립 대학 설립 운동 또한 일제의 방해와 모금 활동의 부진으로 얼마 못 가 중단되었다. 아이들조차 성과에 견줘 과대 평가된 독립운동으로 꼬집을 정도다.

공교롭게도, 대체로 민족주의 계열의 독립운동은 주도한 인물을 강조하지만, 사회주의자들이 이끈 독립운동의 경우엔 주동자가 누군지 밝히고 있지 않다. 해방 후 월북한 이들이야 그렇다 해도, 해방을 보지 못하고 순국한 독립운동가들까지 이름과 공적을 애써 지워낸 모양새다. 독립운동의 확연한 규모와 성과의 차이에도 교과서의 분량부터 차이가 난다.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을 주도한 사회주의자에는 누가 있나요?"

안동에 다다르자, 출발 전에 사회주의 세력이 주도한 독립운동에는 어떤 게 있는지를 묻던 아이가 또다시 질문을 던졌다. 동아리 친구들과 함께 자료를 찾아 공부하면서 질문의 앞뒤가 뒤바뀐 거다. 일제강점기 사회주의자들의 헌신이 없었다면, 기록될 만한 독립운동이 없었을 거라는 사실을 깨달은 셈이다.

질문에 부러 답변하지 않았다. 이틀 동안 안동의 구석구석을 답사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알게 될 테니 말이다. 짐작하건대, 그의 다음 질문은 아마도 이것이지 싶다. 우리나라에서 사회주의 계열의 독립운동가를 가장 많이 배출한 안동의 '지기(地氣)'를 부러워하며, 이런 감탄사를 쏟아내지 않을까. 이제 천 리 길 안동을 찾아온 보람을 느낄 차례다.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은 경북 안동에 빚을 진 거로군요.'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가인 이육사의 묘소 앞에서 단체 사진을 찍었다. 그저 '저항 시인'으로만 알고 있던 아이들의 편견이 바루어진 계기가 됐다.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가인 이육사의 묘소 앞에서 단체 사진을 찍었다. 그저 '저항 시인'으로만 알고 있던 아이들의 편견이 바루어진 계기가 됐다. 서부원


#안동 #사회주의계열독립운동가 #이육사 #김재봉 #임청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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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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