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편의점에서 제공되고 있는 1회용품
환경운동연합
현장의 혼란은 이보다 더 참혹했다.
잠실야구장 모니터링 시 발견된 다회용기는 규격이 단 한 가지뿐이었다. 이렇다 보니 떡볶이나 국수류 정도만 겨우 다회용기에 담아 제공할 뿐, 야구장의 메인 메뉴이자 가장 수요가 높은 삼겹살, 물회 등은 일회용기에 담겨 판매되고 있었다. 심지어 다회용기 사용이 가능한 떡볶이 매장조차도 경기 중반부쯤이 되면 판매 편의성을 위해 이미 일회용기에 음식을 미리 담아 포장해 둔 채 판매하는 모습을 보였다.
잠실야구장에서 다회용기를 도입해 운영 중인 26개 매장을 분석한 결과, 컵(22개 매장)과 그릇(20개 매장)은 다회용으로 제공되고 있었으나, 다회용 숟가락과 젓가락을 제공하는 매장은 단 한 곳도 없었다. 관중들은 다회용 그릇에 담긴 음식을 먹기 위해 결국 일회용 나무젓가락과 플라스틱 포크를 뜯어야만 했다.
구장 내 편의점에서 캔맥주를 구매할 때, 계약을 맺은 주류업체의 로고가 박힌 일회용 종이컵을 관람객에게 제공하는 문제 역시 발견되었다. 편의점 단계에서부터 일회용품 원천 차단 노력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잠실야구장에는 분리배출을 유도하기 위해 다회용기와 똑같은 핑크색 반납함을 곳곳에 비치해 두었다. 하지만 매장마다 일회용품과 다회용기를 혼용해 판매하다 보니, 관중들은 무엇을 반납하고 무엇을 버려야 할지 혼란을 겪는다. 결국 눈에 잘 띄는 핑크색 다회용기가 일반 쓰레기, 재활용 쓰레기와 한데 뒤섞여 쓰레기통에 처박히는 장면이 빈번하게 목격되었다.

▲ 일반쓰레기로 버려진 다회용기
환경운동연합
100% 다회용기 쓰는 월드컵경기장... 결국 운영 주체들의 의지와 시스템 차이
반면, 같은 서울 하늘 아래 위치한 서울월드컵경기장(FC 서울 축구장)은 체육시설이 마음만 먹으면 얼마나 완벽하게 일회용품을 퇴출할 수 있는지를 똑똑히 보여주고 있다.
서울월드컵경기장 밖에는 약 20개의 푸드트럭이 늘어서 있고, 내부에는 편의점과 매점이 운영되고 있다. 이곳의 가장 놀라운 점은 경기장 바깥 푸드트럭 100%가 용기부터 수저까지 완벽하게 다회용기를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경기장 관람석 규모에 걸맞게 무려 4만 개의 다회용기를 상시 준비해 일회용품이 끼어들 틈을 원천 차단했다.
일각에서는 축구장은 홈경기가 격주로 열리고 평균 관중 수도 야구장보다 적어 다회용기 관리가 훨씬 수월한 것 아니냐고 반문할지 모른다. 하지만 실상은 스포츠 종목의 특성이 아닌, 구단, 지자체, 서울시설공단 등 운영 주체들의 의지와 치밀한 시스템이 만들어낸 차이다.

▲ 다회용기에 담겨 판매되고 있는 편의점 식품
환경운동연합

▲ 월드컵경기장 내 편의점에서 제공되고 있는 다회용컵
환경운동연합
축구장에서 사용하는 다회용기는 규격이 매우 다양하여 닭강정, 핫도그는 물론이고 야채곱창, 덮밥, 야끼소바까지 완벽하게 소화해 낸다. 놀랍게도 경기장 내부 편의점에서 판매하는 닭강정조차도 전량 다회용기에 포장되어 판매되고 있었다.
편의점에서 맥주를 구매할 때 일회용 컵을 쥐여주던 야구장과 달리, 축구장 편의점에는 다회용 컵이 상시 비치되어 있어 관람객들이 자연스럽게 다회용 컵에 맥주를 담아 입장한다.
분실률 4% 미만의 기적, 일상이 된 '반납 문화'

▲ 다회용기를 반납하고 있는 시민과 반납함 내부
환경운동연합
서울월드컵경기장에 다회용기를 제공하는 리턴잇은 스포츠 경기장에서의 다회용기 분실률은 4% 미만이라고 자신했다. 비결은 단순하면서도 강력하다. "일회용품을 섞어 쓰지 않기 때문"이다. 관람객들은 경기장 내에 일회용 쓰레기 자체가 거의 없다 보니 다회용기를 일반 쓰레기로 오인해 버리지 않는다. 또한 경기장 곳곳에 정돈된 반납함이 충분히 설치되어 있어, 시민들이 스스로 용기 규격에 맞춰 차곡차곡 정리해 반납하는 성숙한 시민 의식을 보여주고 있다.
물론 축구장 역시 완벽한 '제로 웨이스트'에 도달하기 위해 풀어야 할 공동의 숙제가 있다. 바로 '생맥주 부스'다.
야구장의 생맥주 부스와 축구장에 매주 홍보차 방문하는 주류 브랜드의 팝업 생맥주 푸드트럭은 규제하기 어렵다고 입을 모은다. 주류업체들이 자사 로고가 인쇄된 일회용 플라스틱 컵을 마케팅 도구로 고집하기 때문이다. 또한, 컵 하단에서 맥주가 역방향으로 치솟아 오르는 특수 '탭컵(Tap Cup)' 기기의 경우 기술적 특수성 때문에 다회용 컵 도입에 기술적 보완이 필요한 상황이다.
그러나 이러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현장 상인들은 이미 '지속 가능한 변화'에 몸을 싣고 있다. 축구장 외부에서 다회용기로 음식을 판매하는 한 푸드트럭 사장님은 인터뷰를 통해 다음과 같이 현장의 목소리를 전했다.
"처음에는 다회용기가 뭔지 몰라서 손님들도 우리도 우왕좌왕하고 컴플레인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매주 경기가 열리고 다회용기 사용이 지속되니까 이제는 관람객들도 다 익숙해져서 너무나 당연하게 잘 사용하고 반납합니다.
저희는 지자체에서 열리는 온갖 축제와 행사를 다 돌아다니는데, 단발성 행사로 잠깐 다회용기를 쓰라고 하면 혼란만 생기고 민원이 폭발해요. 결국 제도의 지속성이 가장 중요합니다. 계속 써야 문화가 됩니다."

▲ 잠실야구장 경기 종료 후 나뒹구는 맥주컵
환경운동연합
일회용품 혼용 원천 차단해야, 다회용기 효과가 난다
잠실야구장 사례가 보여주는 자원순환 정책의 맹점은 명확하다. 일회용품이라는 구멍을 그대로 열어둔 채 다회용기라는 양동이로 물을 퍼 담으려 하니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되는 것이다. 반면, 일회용품 혼용을 원천 차단하고 다회용기 사용을 기본값으로 설정한 FC 서울 축구장은 시민들의 자발적 협조와 높은 회수율이라는 선순환을 만들어냈다.
야구장 쓰레기 문제 해결의 핵심은 얼마나 많은 다회용기를 '보급'했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많은 일회용품을 경기장에서 '퇴출'시켰는가에 달려 있다. 일회용품 사용 금지라는 강력한 가이드라인이 전제되어야만 다회용기 정책은 비로소 제 기능을 할 수 있다.

▲ 잠실야구장에서 진행된 올스타전에서 전 구단 다회용기 도입을 촉구하는 환경운동연합 활동가들
환경운동연합
야구를 사랑하지만 지구도 사랑하는 야구팬 모임 '크보플(KBOFANS4PLANET)'의 한마디
"승패에 울고 웃으며 찾는 잠실야구장이 오래도록 사랑받는 공간이 되려면, 응원 문화만큼 환경도 함께 지켜져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은 다회용기 사용도, 분리배출도 결국 팬 개인의 의지에 기대는 부분이 커서 아쉬울 때가 많습니다. 누구나 자연스럽게 친환경적인 선택을 할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춰진다면, 불편함은 자부심으로 바뀔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LG를 응원하는 마음처럼, 지속가능한 야구 문화도 함께 성장했으면 좋겠습니다." - LG 트윈스 팬 소현
"잠실야구장이 올 시즌을 끝으로 문을 닫는다. 연고 두 구단은 함께 '클래식 데이'를 준비했고, KBO는 올스타전을 열었고, 정말 작별하게 될 늦가을까지 여러 행사들이 열릴 것이다. 그런데, 행사들을 치르는 것만이 잘 헤어지는 방법일까?
기존 구장에 대한 평가, 대체구장인 잠실주경기장 공사, 그리고 여러 산업과 자본이 물려 대형화 되는 신구장이 완성되는 과정을 우리가 주체적으로 지켜보자.
과거 로이스터 감독이 사직야구장을 '세상에서 제일 큰 노래방'이라고 말했다. 나는 자랑할 수 있길 바란다. '모든 이들이 차별받지 않고 안전하게 야구보고 경기하는, 잠실'이라고." - 두산 베어스 팬 루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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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가 끝난 뒤... 잠실야구장 vs. 월드컵경기장, 이렇게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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