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녀사냥 교본으로 통용된 고서 <말레우스 말레피카룸> 표지. 혐오에 '매뉴얼'과 '기술'이 붙는 순간, 광기는 한 마을을 넘어 대륙으로 번졌다.
우물이 있는 집
몇 해 전 수업 중, 한 학생이 특정 지역을 비하하는 표현을 아무렇지 않게 내뱉었다. 잠시 수업을 멈추고 그 말이 왜 문제인지 짚어 주려는데, 다른 아이가 이렇게 되물었다. "선생님은 파란색이에요?" 겉으로는 정치 성향을 묻는 말이었지만, 속뜻은 '선생님도 편향된 것 아니냐'는 견제였다.
이것은 결코 드문 일이 아니다. 요즘 교실에서는 교사가 혐오 표현을 지적하면 "선생님 좌빨이에요?", "전교조예요?" 하고 되받는 일이 흔하다. 어떤 학생은 그 장면을 몰래 녹음하고, 어떤 학부모는 '정치 편향 교육'이라며 민원을 넣는다. 정당한 생활지도조차 자칫 '정서적 아동학대' 신고로 되돌아올 수 있는 현실 앞에서, 13년째 교단에 선 교사조차 입을 다물게 되는 순간이 있다.
문제의 심각성을 모르는 교사는 없다. 지난 겨울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설문에서 응답 교사의 다수가 교실 내 혐오 표현이 심각하다고 답했지만, 정작 적극 대응하지 못하는 이유로는 '편향됐다는 민원과 보복에 대한 두려움'이 앞자리에 꼽혔다.
심각성은 누구나 아는데, 손발이 묶여 있는 셈이다. 그래서 이 현상을 "요즘 애들이 이상하다"는 한마디로 닫아서는 안 된다. 이것은 몇몇 아이의 인성 문제가 아니라, 아이들을 그렇게 떠민 '구조'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구조의 정체를 이해하려면, 다시 역사를 펼쳐야 한다. 역사는 지금 우리가 겪는 일이 처음이 아님을, 그리고 그것이 어떻게 흘러갔는지를 이미 기록해 두었다.
역사가 증언한다, 불안은 늘 '희생양'을 찾았다
15세기부터 18세기까지, 유럽은 수만 명을 '마녀'로 몰아 처형했다. 흥미로운 것은, 마녀사냥이 가장 극심했던 시기가 흑사병의 상흔과 소빙기의 기근, 그리고 끝없는 종교전쟁으로 사회 전체가 극도의 불안에 빠져 있던 때와 정확히 겹친다는 점이다. 원인을 알 수 없는 재앙 앞에서, 사람들은 '누군가의 탓'을 필요로 했다. 그리고 그 표적은 늘 과부, 가난한 여성, 이방인처럼 힘없는 이들이었다.
수업에서 이 대목을 가르칠 때 꼭 덧붙이는 것이 있다. 마녀사냥이 그토록 넓고 빠르게 번진 데에는 '기술'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1487년, <마녀를 심판하는 망치>(말레우스 말레피카룸)라 불린 책이 나왔다. 누가 마녀인지 가려내고 어떻게 처벌하는지를 적은, 말하자면 혐오의 '매뉴얼'이었다. 마침 반세기 앞서 등장한 구텐베르크의 활판 인쇄술은 이 책을 유럽 전역에 수십 판씩 찍어 실어 날랐다. 손으로 베끼던 시대라면 한 마을에 머물렀을 광기가, 인쇄기를 타고 대륙을 건넌 것이다. 여기서 학생들에게 던지는 질문이 있다.
"그때의 인쇄술은, 오늘의 무엇일까?"
게다가 마녀 고발은 어느새 이웃끼리의 '놀이'처럼 번졌다. 미운 이웃을, 재산이 탐나는 과부를, 조금 다른 사람을 지목하기만 하면 됐다. 죄책감은 "다들 그렇게 하니까"라는 말 뒤로 숨었다. 집단이 함께 손가락질할 때, 개인은 자신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조차 잊는다. 오늘 교실에서 여럿이 눈을 맞추며 함께 낄낄거리는 그 조롱의 풍경은, 이 장면과 무섭도록 닮았다.
'우물에 독을 풀었다'는 말, 1923년 관동의 기억
불안이 희생양을 만든 역사는 먼 유럽에만 있지 않다. 1923년 9월 1일, 일본 관동 지역에 대지진이 덮쳤다. 도시가 무너지고 십수만 명이 목숨을 잃은 극도의 혼란 속에서,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풀었다', '조선인이 불을 지르고 폭동을 일으킨다'는 유언비어가 삽시간에 퍼졌다. 어디에도 근거는 없었다. 오히려 이 유언비어는 계엄령 아래 관헌의 손을 거쳐 조직적으로 확산된 정황이 뒷날 여러 사료로 드러났다.
그러자 곳곳에서 자경단이 꾸려졌고, 어제까지 평범한 이웃이던 사람들이 죽창과 몽둥이를 들고 조선인을 색출해 학살했다. 대한민국임시정부 기관지 <독립신문>은 그렇게 희생된 조선인을 6661명으로 기록했다. 일본 정부가 공식 인정한 수는 수백 명에 그쳐, 그 편차 자체가 오늘까지 이어지는 은폐와 책임 회피의 증거로 지목된다. 우리 국회가 2025년 12월에야 '간토대학살 진상규명 및 피해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을 통과시킨 것도, 100년이 넘도록 진실이 온전히 밝혀지지 못했음을 방증한다.
여기서 반드시 짚어야 할 것이 있다. 그 손에 피를 묻힌 이들 대부분이 원래부터 '악인'이었던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그들은 재난 앞의 공포와, 그 공포를 파고든 유언비어와, '다들 그렇게 한다'는 군중심리에 휩쓸린 보통 사람들이었다.
두 역사를 굳이 나란히 가르치는 이유가 있다. 학생들이 "옛날 사람들은 왜 저렇게 잔인했을까요?"라고 물으면, 이렇게 답한다. "그들이 특별히 악해서가 아니다. 극심한 불안이 평범한 사람을 그렇게 만든다." 마녀사냥도, 관동의 학살도, 결국 불안한 사회가 '내 탓이 아니라 저들 탓'이라고 지목할 희생양을 찾는 데서 시작됐다. 이것을 이해하는 것이야말로, 아이들이 '남 이야기'가 아니라 '자기 이야기'로 역사를 바라보게 하는 첫걸음이다.
유언비어의 자리를 대신한 알고리즘

▲ 유언비어가 입에서 입으로 번지던 자리를, 이제는 알고리즘이 대신한다(AI생성 이미지).
오마이뉴스
그렇다면 오늘의 우리 사회는 어떤가. 유언비어가 입에서 입으로 번지던 자리를, 지금은 알고리즘이 대신한다. 자극적일수록 더 많이 노출되고, 공격적일수록 더 큰 반응이 돌아온다. 그렇게 짜인 필터버블 안에서 아이들은 보고 싶은 것만 반복해 보고, 편향은 교정되기는커녕 점점 더 단단해진다. 앞서 던진 질문의 답이 여기 있다. 그때의 인쇄술이 지금은 '알고리즘'이다. 혐오의 매뉴얼을 대륙 너머로 실어 나르던 그 기술이, 이제 손안의 화면에서 아이들에게 직접 배달된다.
그러나 기술만으로 모든 것이 설명되지는 않는다. 지금 우리 아이들은 끝없는 경쟁과 비교, 입시의 압박 속에서 자란다. 존중받은 경험보다 평가받고 밀려난 경험이 쌓일수록, 사람은 타인을 '함께 살아갈 존재'가 아니라 '내 스트레스를 풀 대상'으로 보기 시작한다. 박탈감에 시달리는 사회가 희생양을 찾는 메커니즘은, 500여 년 전 유럽이나 100년 전 관동이나 지금의 교실이나 놀라우리만치 똑같다. 달라진 것은 표적의 이름과, 그 표적을 실어 나르는 기술의 속도뿐이다.
여기에 한 가지가 더 얹힌다. 바로 '놀이'라는 포장이다. 마녀 고발이 이웃끼리의 놀이가 되고, 관동의 학살이 '다들 하는 일'이 되었던 것처럼, 오늘의 혐오도 '재미'와 '밈'이라는 옷을 입는 순간 제동장치를 잃는다. 진지한 증오라면 스스로 멈칫했을 사람도, '장난인데 뭐 어때' 앞에서는 브레이크를 밟지 않는다. 역사가 반복해서 보여 준 가장 위험한 조합이 바로 이것이다. 불안한 사회, 그것을 실어 나르는 기술, 그리고 죄책감을 지워 주는 '놀이'라는 이름. 지금 우리 교실에는 그 세 가지가 모두 갖춰져 있다.
돌아봐야 할 것은 아이가 아니라 우리 자신이다

▲ 구조가 만든 문제는 구조로 풀어야 한다. 교실 하나에 책임을 떠넘길 일이 아니다.(AI생성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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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이 문제를 아이들의 탓으로만 돌리는 데 반대한다. 아이들은 이 불안한 사회가 만들어 낸 조건 위에서, 어른들이 먼저 보여 준 언어를 따라 하고 있을 뿐이다. 정작 돌아봐야 할 것은 아이가 아니라, 아이를 그렇게 떠민 우리 사회의 구조이며, 그 구조를 오래 방치해 온 어른들 자신이다.
그러니 "선생님 파란색이에요?"라는 말 앞에서 홀로 위축되는 교사를 탓할 일도 아니다. 구조가 만든 문제는 구조로 풀어야 한다. 교사가 민원의 두려움 없이 혐오에 당당히 맞설 수 있는 환경, 역사·미디어·시민 교육이 제자리를 찾는 학교, 그리고 이 모든 것을 뒷받침하는 사회적 합의가 함께 마련되어야 한다. 그것이 없다면, 교실은 계속 혼자 싸우다 지쳐 갈 것이다.
여기까지 오면, 누군가는 여전히 이렇게 물을지 모른다. "그래도 결국은 가벼운 장난 아니냐"고. 정말 그럴까. 다음 편에서는, 이 '가벼운 놀이'가 역사 속에서 실제로 어디까지 갔는지, 말이 어떻게 칼이 되었는지를, 르완다의 비극과 우리 사회의 잊지 못할 한 장면을 통해 마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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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재고 학생들은 왜 그랬을까...90년 전 독일의 '웃음'이 떠올랐다 https://omn.kr/2ize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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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서는 역사를 가르치고, 집에서는 8살 딸 지수와 6살 아들 지호에게 인생을 배우는 아빠. 첫째 출산 후 육아휴직을 하고 블로그에 육아일기를 쓰기 시작했고, 아이를 키우면서 사람과 세상을 다시 배우고 있습니다. 달리기를 하며 가장 자연스러운 나를 만나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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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파란색이죠?" 아이들을 이렇게 만든 세 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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