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우미 개인전 포스터
정우미
정우미씨는 시각예술가다. 평면 회화, 소리, 퍼포먼스를 넘나들며 작업한다. 학부에서는 심리학을 전공하며 미술사를 복수전공했다. 대학원은 미국으로 넘어가 순수 미술로 마쳤다. 대학 시절 독립영화 미술팀과 연출팀으로 일하다 협업 중심의 작업 방식에 회의를 느끼고 혼자 하는 작업을 하고 싶어 순수 미술을 전공으로 택했다.
2016년 귀국한 뒤에는 몇 년간 미술 비전공자들의 유학을 돕는 개인 사업을 했다. 결혼과 겹친 이 시기에는 작업을 거의 하지 못했다. 그녀는 2022년 사업을 정리하고 작업에만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 무렵부터 그녀의 작업은 하나의 주제로 좁혀졌다. 베이비박스와 입양이었다.
2022년 이후 그녀가 열었던 세 번의 개인전은 모두 이 주제와 연결돼 있었고 이번에 그녀는 베이비박스와 관련된 공간과 서울 마포구 망원동의 한 갤러리에서 동시에 전시를 앞두고 있다. 작가 정씨와의 인터뷰는 지난 6월 24일 주사랑공동체 사무실에서 진행했다.
정씨는 2018년 결혼했다. 결혼 전부터 심한 생리통 때문에 피임약으로 증상을 조절하고 있었는데 이 약을 끊는 일이 두려웠다고 했다. 남편을 만날 무렵에는 이미 자궁 관련 진단을 받아둔 상태였다. 그는 연애를 시작한 지 보름 만에 이 이야기를 남편에게 꺼냈다.
"아기를 안 낳는 게 좋을 것 같고, 만약 아기를 갖고 싶으면 입양도 선택지일 것 같다고 했어요."
정씨는 스스로를 '김칫국 마시는 스타일'이라고 표현했다. 연애 초반에 이런 이야기를 꺼내 상대가 불편해한다면 차라리 빨리 아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다. 남편은 거부감없이 받아들였다. 결혼 후 정씨는 자연임신을 시도했다. 시험관 시술처럼 적극적인 방법은 아니었다.
임신은 되지 않았다. 큰 고민 없이 아이 낳기를 포기했다. 정씨는 이 무렵 아이 낳은 걸 완전히 접는 것에 짧게나마 슬픔을 느꼈다고 했다. 우리를 닮은 아이를 낳을 수도 있었다는 가능성을 내려놓는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녀는 미련이 크지 않았다고 했다.
입양을 결심한 뒤, 정씨는 자궁 수술을 받기로 했다. 사실상 자연임신이 불가능해지는 결정이었다. 기관 상담사는 이 일로 상실감이 클 것이라며 부부가 함께 상담받기를 권했다. 정씨는 이 권유가 예상과 달랐다고 말했다.
"저는 사실 상실감이 하나도 없었거든요. 그 고통에서 해방되는 게 너무 좋았고, 새로운 삶을 얻은 해방감 때문에 수술 끝나고 오히려 생기 넘치게 살았어요."
정씨는 이 선택을 두고 스스로 '차선책처럼, 플랜 B처럼 입양을 하고 싶지 않았다'고 했다. 아이를 낳지 못해서 입양했다는 서사보다, 아이에게 더 건강하고 자신감을 줄 수 있는 입양 말하기를 하고 싶었다.
아이가 자라면 그 편지를 보여줄 계획

▲ Scrota for Mom, 2015, 퍼포먼스
정우미
아이의 생모가 남긴 편지가 정씨에게 그토록 무겁게 다가온 데는 이유가 있다. 그녀는 아이를 만나기 전 스스로 베이비박스를 거친 아이를 원한다고 기관에 먼저 요청했다.
"저희가 몇 명 하게 될지 모르니, 일단 베이비박스로 하자고 했어요."
정씨는 베이비박스를 거친 아이들은 생부모에 대한 정보가 거의 없다는 이유로 입양을 원하는 부모들이 상대적으로 덜 찾는다는 말을 들어 알고 있었다. 반면 생모가 입양기관에 직접 데려다준 아이들은 기다리는 부모가 더 많았다.
기관에서는 그녀에게 '입양기관을 통하면 생모의 지병이나 조부모 병력까지도 알려줄 수 있지만, 베이비박스는 알려줄 수 있는 정보가 거의 없는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정보가 없다는 것은 이 편지가 왜 그토록 귀했는지를 보여준다. 그것이 아이의 뿌리에 대해 남은 거의 전부였기 때문이다.
정씨가 입양기관에 처음 전화를 돌린 때는 2020년 정인이 사건 직후였다. 한 곳은 사건 이후 모든 입양 절차가 멈춘 상태라고 했다. 다른 한 곳은 결혼 기간 3년을 채우지 못했다는 이유로 거절당했다. 정씨는 남은 두 기관 중에 아이 중심의 입양을 강조한 기관을 선택했다.
그 뒤로 자궁 관련 수술과 남편의 대학원 졸업 등을 이유로 여러 차례 절차가 유예됐다. 서류 준비도 만만치 않았다. 범죄경력조회, 의료 기록, 소득과 재산 증빙까지 서류만 24종이었다. 처음 입양기관에 전화를 건 시점부터 따지면 아이를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은 3년이었다.
2023년 5월이었다. 정씨는 서울의 한 보육시설에서 8개월 된 남자아이를 처음 만났다. 면회를 신청하러 간 사무실 벽에는 아이들 사진이 붙어 있었다. 궁금했지만 그 아이가 누구인지 물어볼 수 없었다.

▲ 아들 운트와 정우미 작가
정우미
아이 이름은 '운트'다. 향기를 뜻하는 한자 '운(芸)'과 트인다는 의미의 한글 '트'를 붙여 정씨가 직접 지었다. 첫 만남 이후 아이가 완전히 집으로 온 날은 두 달 뒤였다. 지금은 사라진 입양전제위탁이었다. 그 사이 정씨 부부는 일주일에 최대로는 네 차례씩 보육시설을 찾았다. 법원의 최종 허가는 그다음 해 2월에 났다.
정씨는 아이가 자라면 그 편지를 보여줄 계획이라고 했다. 공개입양을 택한 그녀는 아이가 자신을 낳은 생모를 궁금해하면 반가울 것 같다고 했다. 더불어 그녀는 언젠가 편지를 쓴 사람을 직접 만나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고 했다.
생모가 스스로 얼굴을 드러내지 않기를 선택할 수도 있다는 질문에 정씨는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답했다. 다만 그 이유에 대해서는 다르게 말했다.
"그분들이 왜 자기를 숨겨야 했느냐고 하면, 그 책임이 그분들에게만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우리가 애초에 그분들을 내팽개치듯 하지 않았다면, 더 용기 내서 아이를 키우거나 지원받을 가능성이 더 많았을 수도 있어요. 우리는 흔히 유기된 아이, 아이를 버린 엄마라고 말하지만, 사실은 그보다 먼저 우리 사회가 그 여성들을 유기했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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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유목생활을 청산하고 고향을 거쳤다가 서울에 다시 정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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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이의 친생모가 남긴 편지… 그냥 둘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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