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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길한 느낌에 추적"...마을을 위기에서 구해낸 이장님의 활약

[쓰레기와 싸우는 사람들 ④] 폐기물과 맞서 싸운 '두 이장' 이야기

등록 2026.07.14 07:04수정 2026.07.14 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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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과 중소 도시를 중심으로 산업폐기물처리장, 소각장, 매립장 등이 무분별하게 들어서면서 지역주민의 삶이 위협받고 있다. 연재 '쓰레기와 싸우는 사람들'은 전국 각지에서 환경오염 시설과 맞서 싸우고 있는 주민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통해 정보 차단과 주민 배제의 현실을 진단하고 제도 개선 방안을 모색한다.[기자말]
인구가 적고 고령화된 농촌은 폐기물 산업의 손쉬운 먹잇감이 된다. '친환경', '자원순환'이라는 그럴듯한 이름을 앞세운 폐기물 시설들이 대도시 대신 규제가 느슨하고 저항이 약한 농촌을 겨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든 농촌이 자본의 시나리오대로 무너지는 것은 아니다. 치밀한 전술과 끈끈한 연대로 난개발과 싸운 두 명의 이장이 있다. 충북 괴산군 사리면 대기마을 김용자 이장과 경북 고령군 우곡면 포2리 곽상수 이장이다.

'산업단지 보고서' 속에 숨은 폐기물 매립장

 메가폴리스 산업단지가 들어올 예정이었던 괴산군 사리면 소매리 대기마을
메가폴리스 산업단지가 들어올 예정이었던 괴산군 사리면 소매리 대기마을 정보공개센터

충북 괴산군 사리면의 대기마을은 30년간 돈사와 퇴비 공장이 내뿜는 악취로 고통 받던 마을이었다. 2018년 무렵부터 "어마어마하게 큰 산업단지가 들어와서 냄새도 없애주고 잘 먹고 살게 해줄 것"이라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30년 숙원이 해결된다니 주민들은 당연히 호재로 여겼다.

그런데 2020년, 부모님 집으로 날아든 '개발행위 제한 지역 지정' 공문을 받아 든 김용자 이장은 불길함을 느끼고 추적에 나섰다. 서울에서 시민단체 활동을 하다 고향으로 돌아왔던 그는 괴산군청 홈페이지를 이 잡듯 뒤져 '메가폴리스 산업단지 출자 타당성 검토 용역 보고서'를 찾아냈다.

"부모님 땅이 있는 마을 산 맨 위에 지하 20미터, 지상 40미터짜리 거대한 매립장을 짓겠다는 거예요. 일반폐기물도 아니고 전국의 지정폐기물을 다 받겠다는 계획이었죠." (김용자 이장)

산업단지는 껍데기일 뿐, 속내는 막대한 이윤을 노린 폐기물 매립장 사업이었다. 마을 근처 산 위에 지하 20미터 규모의 매립장을 짓겠다는 계획. 이것이 허용되는 것은 현행 입지 규제가 그만큼 허술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주거지와 농지, 수원으로부터의 이격거리 기준이 없거나 너무 느슨해 사실상 어디에든 들어설 수 있는 구조다. 진실을 알게 된 주민들은 격분하며 반대대책위를 꾸렸다.


 메가폴리스 산단 반대 투쟁을 주도한 괴산군 사리면 대기마을 김용자 이장
메가폴리스 산단 반대 투쟁을 주도한 괴산군 사리면 대기마을 김용자 이장 정보공개센터

"거기서 도장 찍으면 끝났어요"... 김 이장의 초강수

김 이장은 이미 지역신문 기사에서 괴산군과 한 대기업이 산업단지 조성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는 사실을 접한 적이 있었다. 대상 부지가 나오지 않아 "우리 동네는 아니겠지" 하고 넘겼던 그 협약의 실체를 확인하려 정보공개청구를 냈지만, 돌아온 답은 비공개였다.


"영업비밀이라 공개할 수 없다는 거예요. 그래서 협약 내용은 아직도 모르고 있어요." (김용자 이장)

지자체와 민간 기업이 지역의 운명을 좌우할 협약을 맺었는데도, 그 내용은 협약 당사자가 아닌 주민에게는 원천적으로 닫혀 있는 것이다.

가장 아찔했던 순간은 토지 사용 동의 단계였다. 사업 부지의 40%를 차지하는 특정 문중의 임원진이 이미 찬성 쪽으로 기울어 도장을 찍기 직전이었다. 업체가 토지 소유자의 동의를 받으면 인허가 절차가 급물살을 타게 된다. 김 이장은 즉시 문중 내 반대파를 설득해 임원진을 교체하는 초강수로 이를 막아냈다.

"거기서 도장 찍었으면 끝났어요. 인허가가 통과되고 나면 군수가 바뀌어도 소용없을 수 있었어요." (김용자 이장)

이러한 회고는 난개발 싸움에서 '초기 정보 확보'가 어떻게 '골든타임'으로 이어지는지 보여준다. 만약 김 이장이 보고서를 찾아내지 못해 인허가 절차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면, 이후 아무리 격렬하게 싸우더라도 '합법성'을 주장하는 업체 측을 막아내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2021년, 마을에 걸려 있던 괴산 메가폴리스 산업단지 반대대책위원회의 현수막
2021년, 마을에 걸려 있던 괴산 메가폴리스 산업단지 반대대책위원회의 현수막 정보공개센터

248일의 1인 시위로 쟁취한 승리

이후 주민들은 2021년 6월부터 248일간 산업단지를 추진한 군수를 비판하며 매일 군청 앞 1인 시위를 벌였다.

"매일 아침 농민들이 양쪽에 서서 출근하는 군수를 향해 시위를 했죠. 동네가 좁으니까 몇 표를 모으면 낙선시킬 수 있는지 표 계산이 가능했고요. 승산이 있다고 봤습니다." (김용자 이장)

결국 산업단지를 강행한 현직 군수는 낙선하고 전면 재검토를 약속한 새 군수가 당선되며 메가폴리스 산단은 완전히 백지화됐다. 주민들이 승리한 것이다. 승리의 경험으로 자신감을 얻은 사리면 주민들은 현재 축사와 폐공장 등 악취 시설을 정비하고 마을 주민들을 위한 생활 복지 인프라를 개선하는 농촌공간정비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고령군 우곡면 포2리 이장이자, 고령군 난개발 대책위원회 위원장인 곽상수씨
고령군 우곡면 포2리 이장이자, 고령군 난개발 대책위원회 위원장인 곽상수씨 정보공개센터

'쓰레기 식민지'... 이래도 가만히 있을 겁니까?

경북 고령군은 1개 읍, 7개 면 등 총 8개 읍면으로 이뤄져 있다. 이 중 6곳에 폐기물·난개발 관련 대책위가 있다. 우스갯소리로 "1면 1대책위"라 부를 정도다.

이렇게 된 배경에는 역사적인 이유가 있다. 1990년대 중반, 대구 시내에서 악취 문제로 쫓겨난 주물 공장 88곳이 통째로 고령군 다산면으로 옮겨왔다. 주물공장은 하루 500톤 이상의 '주물사'라는 폐기물을 쏟아내고, 이걸 묻을 매립장이 8년 주기로 하나씩 산업단지 안에 들어서는 패턴이 반복돼 왔다. 1차 산단 매립장이 다 차면 2차 산단에, 2차가 차면 또 다른 곳에.

이런 과정 속에서 경북 고령군은 연간 10만 톤의 폐기물 중 8만 8천 톤이 대구에서 유입되는 '쓰레기 식민지'가 되었다. 자체 매립장이나 소각장이 거의 없는 대구의 폐기물 부담을 고령군이 대신 지고 있는 것이다.

20년 경력의 환경운동가이자 고령군 우곡면 포2리 이장인 곽상수 고령군공동대책위원회 위원장은 8개 읍면 중 6곳의 대책위를 진두지휘하며 맞서고 있다.

주민들은 알 수 없는 소각장 사업계획서

2022년, 고령군 쌍림면에서 석산을 운영하던 한 업자가 그 부지에 산업폐기물 소각장을 짓겠다고 나섰다. 대책위가 이 사실을 처음 알게 된 것은 군청의 공식적인 발표가 아니라 한 군의원의 개인적 제보를 통해서였다.

"산업단지처럼 관이 계획을 세우는 사업은 계획이 바뀔 때마다 공람 절차를 거칩니다. 그런데 이런 폐기물 사업은 민간이 하는 사업이기 때문에 그런 공람 절차가 아예 없어요." (곽상수 이장)

게다가 개인업자가 낸 사업계획서 자체가 비공개다.

"개인업자가 사업 신청을 하면 사업계획서 오픈이 안 되잖아요. 이 사업계획서는 고령군만 알 수 있어요. 심의를 할 때 그 계획서는 오픈이 안 됩니다." (곽상수 이장)

심의 과정 자체도 닫혀 있다. 군계획심의위원회 회의는 비공개이고, 주민은 참관조차 할 수 없다. 반면 사업을 신청한 업체는 '사업 설명'을 이유로 회의에 직접 들어가 발언할 수 있다. 정보공개청구로 심의 결과는 받을 수 있지만, 그 결과가 나오기까지의 과정과 근거 자료는 여전히 "영업비밀"이라는 이유로 닫혀 있다.

주민들의 반발이 거세지자 군청이 업체에 부적정 통보를 했지만, 업체가 행정소송에 나서면서 투쟁은 길어지기 시작했다. 그러던 와중에 새로운 제보가 들어왔다. 해당 업체가 농협의 토목공사를 맡아 진행하면서, 허가 받지 않은 깊이까지 땅을 파고 모래를 몰래 팔아넘겼다는 것이었다. 대책위는 이를 단순 절도 사건이 아니라, 모래를 파고 불법으로 폐기물을 매립한 사건이 아닌지 파고들었다.

"제가 보도자료를 낼 때 '불법 모래 반출'뿐 아니라 '그 자리에 폐기물을 묻은 것이 아니냐'고 의혹을 제기했어요. 그러면 경찰이 즉각 조사하고 군청에서도 원상복구 명령을 내려야 하거든요."(곽상수 이장)

대책위는 업체와 관련 공무원, 그리고 연루 의혹이 제기된 군의원들까지 함께 경찰에 고발했고, 군청은 불법성토에 대해 원상복구하라는 행정명령을 내렸다. 마침 업체가 소각장의 배출량 수치를 조작했다는 의혹도 새로 제기되었다. 이렇게 여론이 악화되자, 업체는 결국 두 손을 들고 폐기물 사업 행정소송을 포기했고, 주민들의 승리로 싸움은 마무리됐다.

싸움의 성과로 조례를 만들다

대책위가 매일 군청과 군의회 앞에서 1인 시위를 하며 불법 모래 반출 사건에 대한 연루 의혹을 제기하자, 군청은 1인 시위를 멈춰달라고 대책위를 찾아왔다. 곽 이장은 이를 제도화의 기회로 삼았다.

"1인 시위를 멈추는 대신, 갈등 시설이 들어올 때 의무적으로 사전 심의를 받는 환경정책위원회 조례를 만들어 달라고 조건을 내걸었죠. 그렇게 협상해서 조례를 통과시켰습니다."

환경정책위원회 조례의 핵심은 사전 심의다.

"사전 심의를 하기 위해서는 인허가 전에 미리 위원회에 안건을 올려야 하는 거잖아요. 그 과정에서 위원회에 들어가 있는 주민 대표들이 미리 알게 되는 효과가 생기죠."

조례가 통과되자 주민 몰래 인허가를 내려던 업체들이 사전심의를 거쳐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스스로 발을 빼는 일이 여러 번 있었다고 한다.

두 이장의 승리에는 공통점이 있었다. 싸움에 이기는 데 그치지 않고, 정치와 제도를 고민하며 다음 싸움이 벌어지지 않을 조건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2026년 5월 6일, 경북도청 앞에서 진행된 난개발·환경오염 방지 및 주민알권리 조례 운동본부의 조례 채택 요구 기자회견
2026년 5월 6일, 경북도청 앞에서 진행된 난개발·환경오염 방지 및 주민알권리 조례 운동본부의 조례 채택 요구 기자회견 정보공개센터

폐기물 매립장이나 소각장 건설을 밀어붙이는 과정에서 지역 사회의 갈등이 생겨나고, 공동체가 파괴되는 일들이 지금도 벌어지고 있다. 이러한 갈등을 예방할 수 있는 방법은 주민들의 주권을 보장하는 법과 조례를 만드는 것이다. 인허가 신청이 들어오는 순간 주민에게 알리는 사전고지 조례, 갈등 유발 시설을 심의 단계부터 통제하는 환경정책위원회 조례, 주민의 삶터와 이격거리를 두는 입지 규제 조례 등이 바로 그것이다.

"정보는 그냥 처음부터 오픈했으면 좋겠어요. 일방적으로 '이거 할 거다'가 아니라, '이런 걸 하고 싶은데 어떻게 생각하느냐' 톡 까놓고 한번 이야기하는 과정이 필요해요. 그럼 찬성하든 반대하든, 주민들이 이야기를 해서 합의를 볼 수 있잖아요." (김용자 이장)

 서명 캠페인 '아무리 덮어봐라 우리가 파헤치지'
서명 캠페인 '아무리 덮어봐라 우리가 파헤치지' 정보공개센터

*투명사회를위한정보공개센터는 난개발과 밀실 행정에 맞서 싸우고 있는 농촌 주민들의 이야기를 전하고, 법과 제도를 바꾸기 위한 서명 캠페인 '아무리 덮어봐라 우리가 파헤치지'를 진행하고 있다. https://team-sigol.kr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투명사회를위한정보공개센터 홈페이지에도 실립니다.
#난개발 #폐기물 #알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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