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4년 2월 1일, 독일 슈타데의 쿤스트하우스 박물관에서 열린 특별전 ‘헤르만 헤세 - Mit Feder und Farbe (펜과 색채로)’에 수채화 작품 앞을 한 관람객이 지나가고 있다.
EPA/연합뉴스
헤세는 14세에 명문 신학교에 수석으로 입학한 후 자퇴를 했고 정신적 방황을 하는 과정에서 처음으로 자살을 시도했다. 그 후 부모에 의해 강제적으로 정신병원에 보내졌고 부적응자 수용소 또한 경험했다. 그러다가 다시 위기에 처한 것은 40대. 그의 부인은 정신분열증에 걸려 입원하고, 아들은 병이 들고, 아버지마저 세상을 떠나게 되었을 때였다. 헤세의 정신은 막다른 골목에 내몰렸다.
요즘 유행한 드라마 제목을 빌려 말하자면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 하지만 싸우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자신이 무가치하다는 생각에 잠식되는 사람들, 살아볼 의욕을 갖지 못하고 안으로만 꺼져 가는 사람들, 바로 우울증에 걸린 사람들이다. 원시인들에게는 없었을 듯한 이 병이 현대에 올수록 더 많아지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헤세도 오랫동안 우울증에 시달렸다. 그의 경우는 극도로 섬세한 감수성에, "너의 자아를 죽이고 신에게 복종하라"는 경건주의에 사로잡힌 부모의 기독교적 계율의 강요가 문제였다. 그런 헤세에게 탈출구는 글쓰기, 음악 듣기, 그림 그리기였다.
그가 좋아했다는 바흐의 <마태 수난곡>은 기독교의 경건주의가 낳은 깊은 죄책감을 떠오르게 한다. 이 가운데 가장 슬프고 아름다운 아리아는 제39곡인 알토 아리아 <나의 하나님, 눈물 흘리는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Erbarme dich, mein Gott)>. 이 곡은, 영상으로 시(詩)를 썼다고도 하고 영화를 예술로 승격시켰다고도 하는 러시아 영화감독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의 마지막 작품 <희생>의 처음과 끝 그리고 결정적 순간에 반복해서 흐른다.
제3차 세계대전이라는 인류의 종말을 앞두고 세상을 구하기 위하여 자신의 집을 태우는 주인공의 이야기를 따라가기는 쉽지 않지만, 영화 위로 흐르는 <마태 수난곡>을 들으면 어떤 강렬한 감정에 이끌리게 된다. 병든 인류에 대한 깊은 죄책감과 책임감. 그 메시지가 피를 토하는 듯한 바이올린의 선율에 묻어 나오는 것만 같은 것이다.
음악 속으로 종종 도피하듯 떠났던 헤세는 40대에 위기가 닥쳤을 때, 카를 구스타프 융의 제자인 요제프 베른하르트 랑 박사를 만난다. 랑 박사는 헤세 자신의 무의식을 도화지 위에 그리라는 처방을 내린다. 그 처방에 따라 헤세는 스위스 남쪽 지방인 몬타뇰라의 햇살 아래 정원을 가꾸고 산책을 즐기며 투명한 수채화를 그려나갔다. 이때 그린 그림이 수천 점. 헤세는 그림 그리는 행위를, '작은 사랑의 놀이', '원시적인 창조의 기쁨'이라고 표현했다.
대작가도 이토록 힘들어했는데...
그런데 만일, 음악 듣기로도 그림 그리기로도 해결이 안 된다면? 정신적 붕괴가 곧 생명을 내던질 지경에 이른다면? 소설 <싯다르타>에 그러한 위기가 나온다. 브라만으로 태어나 사문의 길을 거친 싯다르타가 세속의 삶을 통과한 뒤 맞닥뜨린 정신의 밑바닥. 저 높은 부귀영화 속 공허와 온갖 쾌락 뒤에 느낀 환멸, 불쾌, 두려움, 그리고 자기혐오. 싯다르타는 절망 속에서 강물에 자신을 내던지려 했다. 하지만 붕괴 직전의 순간 무엇인가 그를 일으켜 세웠다. 바로 성스러운 '옴'이라는 소리. 현실의 헤세에게 그것은 무엇이었을까?
그의 에세이집 <밤의 사색>, 나는 거기에서 힌트를 얻는다. 전남 목포를 여행하던 중 한 작은 책방에서, 검은 고양이가 단추 같은 검은 눈동자를 반짝이고 있는 표지에 끌려서 산 책이었다. 책의 중간쯤 <두려움 극복>이라는 제목 아래 강물에 몸을 던지는 사람의 이야기가 나온다. "우주에 홀로 매달려 있게 되자마자 사는 것이 축복이었고, 죽는 것이 축복이었다.", "새로 태어나고 싶은 사람은 죽을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한다." 그러니까 헤세에게 자살 충동은 새로 태어나기 위한 과정이었던 셈이다.
일찍이 1912년에 이사 간 스위스에서 1, 2차 대전을 모두 겪은 헤세에게 조국 독일은 가혹했다. 1차대전 때 참전했다가 부적격 판정을 받고 전쟁 포로 구호 활동에 배정되어 복무했던 헤세는 전쟁의 참상에 큰 충격을 받아 스위스 베른에서 평화 촉구 논설을 발표했다. 하지만 그 논설은 독일 언론과 대중에게 비난받았다. 이후 2차대전 때에는 스위스에서 유대인 작가들을 도와준 일이 독일 나치의 노여움을 샀다. 또 전쟁이 끝난 뒤에는 독일 내 좌파들이 헤세의 저항이 너무 소극적이었다고 비판했다. 평화주의가 비난받던 시대에 헤세는 고국으로부터 버림받은 고독한 아웃사이더, 황야의 이리였다.

▲ <헤르만 헤세 그림 시집> 겉표지
에피파니에쎄플라네르
헤세의 그림 시집을 다시 본다. 붉은 지붕, 노란 벽, 푸른 산, 맑은 하늘. 온갖 고통을 겪고 우울증을 앓은 사람의 그림이라기에는 색상이 매우 밝다. 우울증 환자에게 세상은 잿빛. 거기에서 밝은 색채에 도달하기까지 작가는 얼마나 힘겨웠을까? <데미안>의 서문에는 그 힘겨움을 표현하는 문장이 나온다. "나는 내 속에서 스스로 솟아나는 것, 바로 그것을 살아보려고 했다. 그것이 왜 그토록 어려웠을까?" 깨달음을 얻은 싯다르타도 푸념처럼 혼잣말한다. '그러나 무슨 놈의 길이 그렇게도 험난했을까!' 대작가도 이토록 힘들어했으니 우리 같은 범인들이 힘든 게 당연하지 않을까?
헤세가 가장 좋아한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는 그의 작품 <황야의 이리>에 등장한다. 영혼의 병을 앓고 있는 주인공 하리가 꿈속에서 만난 이 음악가는 말한다. "웃음을 배우라." 헤세 또한 말한다. '명랑'은 세상의 두려움과 인생의 불구덩이 한가운데를 뚫고 미소를 지으며 걸어가는 것이라고.
그러면 이제 음악을 들어보자. 모차르트의 피아노협주곡 23번 2악장의 투명한 슬픔의 아름다움이나,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의 이중창 <저녁 산들바람은 부드럽게>의 평화로움에 자신을 맡겨보자. 그러면 싯다르타의 깨달음이 산들바람처럼 부드럽게 우리 마음을 어루만질지 모르니까. 명랑한 미소와 함께 죽어 있던 마음이 새로 태어날지도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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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창작집 3권, 엔솔로지 2권을 냈다. 여성주의 논문을 썼다. 중학교에서 국어를, 대학에서 소설 창작을 가르쳤다. 지금은 전업 작가. 내가 생각하는 문학과 예술은? 아름다움, 새로움, 그리고 성찰. 궁극적으로는 보다 많은 이들이 향유하게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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