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색꽃무지 풀색꽃무지는 꽃 하나도 빠뜨리지 않겠다는 듯 느릿느릿 그러나 꼼꼼히 꽃을 옮겨 다녔다. 뒤늦게 날아온 꿀벌 한 마리는 그 곁을 잠시 기웃거리더니, 더 얻을 것이 없다고 여긴 듯 곧장 다른 꽃으로 날아갔다.
신극채
풀색꽃무지도 꽃을 옮겨 다니며 꿀을 탐했다. 해가 저무는데도 느릿느릿 꽃 속을 훑으면서 꽃 하나라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 꼼꼼했다. 벌 한 마리가 옆에 날아와 기웃 거리더니 곧장 날아갔다. 풀색꽃무지가 먼저 다녀간 자리라 더 얻을 꿀이 없다고 느낀 듯했다. 이렇게 관찰 첫날의 쥐똥나무에서는 저마다 속도로 늦은 오후가 지나고 있었다.
향기로운 쥐똥나무를 찾는 곤충들
다음 날에는 늦은 아침을 먹고 정오 무렵에 다시 나갔다. 햇살이 좋아서인지 더 많은 곤충이 들고났다. 역시 꿀벌이 가장 많았다. 황나꼬리박각시 한 마리가 날아들었다. 날개를 빠르게 움직여 꽃 앞에서 멈춘 듯 정지해서 긴 주둥이를 꽃에 넣어 꿀을 빨았다. 허공에 머문 채 꿀만 빼 먹는 모습이 얄미울 만큼 능숙했다. 꽃 입장에서는 귀한 손님인지, 얌체 같은 뜨내기인지 헷갈릴 것 같았다.
노린재는 꽃보다 잎에 머물렀다. 긴 더듬이로 잎을 더듬었다. 노린재류는 꿀을 먹는 종도 있으나 대부분 식물의 즙을 빨아 먹는다. 꽃 위주로 살피던 시선을 잎이나 줄기로 옮기자 다른 존재들이 보였다. 꽃을 찾아온 곤충만이 아니라 그들을 노리며 숨어있는 포식자들이었다.
나뭇가지 사이에 먼지거미처럼 보이는 작은 거미도 있었다. 전날에는 보지 못했었다. 거미줄은 햇빛을 받을 때 잠깐씩 드러났다. 가지와 가지 사이에 거미줄을 쳐 놓고 한가운데 꿈쩍없이 엎드렸다. 거미줄에는 이미 잡아먹힌 곤충의 빈 껍데기가 걸렸다. 바람에 나뭇가지가 흔들리면 껍데기도 함께 흔들려 순간 살아있는 것처럼 보였다.
나뭇가지 틈새에 숨은 꽃게거미가 눈에 들어왔다. 이미 사냥을 끝낸 뒤였다. 호리꽃등에 한 마리를 붙잡아 체액을 빨아 먹고 있었다. 사진을 찍으려고 스마트폰을 밀어 넣자 멈칫했다. 그러나 달아나지 않았다. 먹이를 물고서 천천히 뒷걸음칠 뿐이었다. 초록빛의 작은 몸은 연약해 보였지만 대치하는 모습에서 포식자의 기개가 느껴졌다.
둘째 날의 쥐똥나무는 초원의 물웅덩이와 다름없었다. 생명을 이어주는 먹이가 있는 곳이면서도 반대로 생명을 위협하는 포식자가 도사리고 있었다. 다음 날에는 집 주변을 벗어나 강변으로 가보기로 했다. 그곳에는 쥐똥나무가 훨씬 많고 주변 생태 환경도 다를 것이다. 어떤 세계를 보게 될지 기대하며 집으로 왔다.

▲쥐똥나무에 모여든 곤충들 1. 황나꼬리박각시는 벌새처럼 정지비행에 능하다. 날개는 빠르게 움직였지만 몸을 허공에 고정된 듯했다. 긴 주둥이를 이용해 꿀을 먹는 솜씨가 놀라웠다. 2. 노린재는 더듬이를 내밀어 잎을 더듬었다. 꽃보다 잎을 살피는 것 같았다. 3. 먼지거미류로 보이는 거미도 있었다. 둥글게 쳐진 그물 한가운데 몸을 낮추었다. 4. 아기스라소니거미도 눈에 띄었다. 가느다란 다리에는 잔가시가 돋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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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리꽃등에를 사냥한 꽃게거미 꽃게거미가 제 몸보다 큰 호리꽃등에를 사냥했다. 인기척을 느끼고 멈칫거릴 뿐 먹이를 놓지도 자리를 피하지도 않았다. 물러서지 않는 기개가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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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변에서 목격한 약육강식의 세계
연휴 마지막 날에는 계획대로 강변으로 갔다. 이번에는 오전에 갔다. 아파트 주변 쥐똥나무에서 보지 못했던 곤충들이 눈에 띄었다. 붉은 딱지날개를 가진 곤충이 먼저 보였다. 검색해 보니 진홍색방아벌레였다. 인기척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잎과 가지를 타고 오르내렸다. 빨간 딱지날개가 작은 방패처럼 보였다. 꽃하늘소는 잎 뒤에 숨어 짝짓기 중이었다. 다가서면 매번 곤충들이 먼저 뒷걸음쳤지만 이번에는 내가 먼저 멀어졌다.
잠시 뒤 통통한 몸에 검고 노란 털을 두른 어리호박벌이 나타났다. 잠시 꽃 앞에 서성이더니 내려앉았다. 앞다리로 꽃을 끌어안듯 붙잡고 긴 주둥이를 꽃 속에 넣었다. 내게 뒷모습을 보인 채 꽃 하나하나 옮겨 다녔다. 꽁무니에 믿는 구석이 있다는 듯 배짱이 느껴졌다.
이런 믿음이 늘 유효할까. 이곳에는 전날과 다른 포식자들이 있었다. 파리매는 꽃 아래 그늘진 잎에 앉아 주변을 살폈다. 잠자리는 보란 듯이 꽃 위에 앉았다. 먹잇감이 사정거리 안으로 들어오면 번개처럼 덮칠 태세였다.

▲꿀벌을 사냥하는 말벌 사냥 목표를 정한 말벌의 움직임은 망설임이 없었다. 어떤 빈틈도, 주저도 없었다. 먹잇감을 향해 곧장 달려들었다. 빠르고 단호한 돌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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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정은 말벌의 사냥 장면이었다. 말벌 한 마리가 주변을 맴돌았다. 꽃에 내려앉을 듯하다가도 이내 떠오르고 다시 좌우로 방향을 틀었다. 꿀을 찾는 움직임보다 뭔가를 살피는 기색이었다. 긴장감이 돌았다.
그러더니 꿀벌에게 달려들었다. 어떤 틈도, 어떠한 망설임도 없었다. 말벌과 꿀벌은 잠깐 뒤엉켰다. 승부는 곧 끝났다. 말벌은 먹이를 움켜쥔 채 강변으로 멀어졌다. 순식간이었다. 곧 아무 일도 없는 듯 다시 꽃 향기가 풍겼다.

▲쥐똥나무에 모여든 곤충들 1. 진홍색방아벌레는 무엇을 찾는지 꽃 주변을 서성였다. 작은 몸인데도 붉은 딱지날개가 단단한 방패처럼 보였다. 2. 꽃하늘소는 여러 마리가 보였다. 짝짓기하는 녀석도 만났다. 꽃은 먹이를 찾고 짝을 만나는 자리였다. 3.. 파리매가 몸을 낮춘 채 앉았다. 먹잇감이 나타나면 금방이라도 튀어오를 듯하다. 4. 잠자리는 한동안 자리를 뜨지 않았다. 쉬는 듯하면서도 머리를 두리번거리며 주변을 살피는 사냥꾼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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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리호박벌 꽃을 하나씩 옮겨 다니며 꿀을 빨았다. 꽃에 몸을 맡기듯 느긋했다. 침을 믿어서 일까. 일반적으로 벌은 다른 곤충에 비해 경계심이 덜하다. 덕분에 사진에 담기 수월하다. ⓒ 신극채
사실 나비를 기대하고 사흘 동안 쥐똥나무를 찾아갔다. 지난번에 보았던 제비나비가 또 오지 않을까 싶었다. 금계국에는 노랑나비가 잠시 머물렀고 큰주홍부전나비도 다녀갔다. 웬일인지 쥐똥나무꽃 근처로는 오지 않았다. 향기도 좋고 꿀도 많아 보이는데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어쨌든 나비가 오지 않은 덕분에 생태계의 다른 모습을 보았다.
이 기사의 초안을 써두고 출근한 날이었다. 퇴근길에 다시 그곳에 들렀다. 배추흰나비가 팔랑거렸다. 쥐똥나무꽃에 앉기를 기다렸다. 경계하지 않도록 멀리서 바라보았다. 잠시 망설이더니 꽃을 다리로 잡고 꿀을 먹었다. 서너 발 앞까지 다가섰다. 그런데도 나비는 날아가지 않고 주변 꽃으로 옮겨 다녔다. 제 모습을 사진에 담는 시간을 넉넉히 주었다. 오래 기다린 내게 마지막 한 장면을 선물처럼 남겼다. 스마트폰 촬영 버튼을 누르는 손끝이 기분 좋게 떨렸다.

▲배추흰나비 배추흰나비 한 마리가 쥐똥나무꽃에 내려앉았다. 가느다란 다리로 꽃송이를 붙잡고 주둥이를 뻗어 꿀을 빨았다. 꿀이 달았던 것인지, 나비는 쉽게 날아가지 않았다. 덕분에 사진에 담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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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 찾는 줄 알았는데 꿀벌에게 달려든 말벌, 살벌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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