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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건넨 까만 비디오테이프... 보고 난 뒤 다른 사람이 됐다

역사 교사가 된 1980년생 섬소년과 5·18 광주민주화운동

등록 2026.05.19 13:24수정 2026.05.19 1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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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주 북구 망월동 5.·18 구묘역
광주 북구 망월동 5.·18 구묘역 이희훈

저는 1980년 11월에 태어났습니다. 그해 5월 27일 새벽 옛 전남도청에서 마지막 총성이 울린 지 다섯 달이 흐른 뒤였습니다. 전라남도 땅끝마을에서 배를 타고 한참 들어가야 하는 섬, 노화도. 저는 그곳에서 태어난 섬소년이었습니다. 어머니의 뱃속에 있던 저는 광주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한 사람의 생애는 그가 태어나기 직전의 시간으로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저는 훗날에야 알게 되었습니다.

아버지의 비디오 테이프, 침묵을 뚫고 온 진실

제가 처음 5·18을 만난 것은 중학교 3학년 때였습니다. 어느 날 저녁, 아버지가 까만 비디오 테이프 하나를 들고 들어오셨습니다.

"종관아, 이거 봐라. 너가 태어나던 해 광주에서 있었던 일이다."

테이프가 돌아가고 화면이 켜졌을 때, 저는 숨을 쉴 수가 없었습니다. 곤봉을 휘두르는 군인들, 거리에 쓰러진 사람들, 울부짖는 어머니들. 그 흐릿한 장면들은 그때까지 어디에서도 본 적 없는 한국이었습니다.

지금 돌이켜 보면, 그 비디오 테이프는 단순한 영상물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공식 역사의 두꺼운 침묵을 뚫고 손에서 손으로,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해 온 또 하나의 역사였습니다. 5·18은 1980년 그날로 끝난 사건이 아니라, 누군가가 누군가에게 진실을 건네는 그 순간 순간마다 다시 살아나는 사건이었습니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건넨 그 테이프는, 한 세대의 침묵을 깨고 다음 세대에게 보내는 한 통의 긴 편지였습니다. 그날 이후 열다섯 살의 섬소년은, 5·18을 잊을 수 없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저는 역사교사가 되고 싶었습니다. 사범대 역사교육과에 입학한 뒤, 동기 선후배들과 함께 매년 5월이면 광주로 답사를 떠났습니다. 비디오 테이프 속에서 보았던 전남대 정문, 옛 전남도청, 금남로, 망월동. 그 장소들을 한 곳씩 직접 찾아 걷는 일이 제게는 또 다른 공부였습니다.


역사는 책 속의 활자만으로는 다 읽히지 않습니다. 어떤 역사는 발바닥의 감각으로, 어떤 역사는 5월 햇살의 온도로, 어떤 역사는 도청 앞 광장에 멈추어 선 짧은 침묵으로 비로소 읽힙니다. 그렇게 매년 한 걸음씩 광주를 걸을 때마다, 제 안의 5·18은 점점 더 단단해졌습니다. 그것은 외워야 할 연도와 사건이 아니라, 살아가는 동안 잊지 말아야 할 한 시민의 자세가 되었습니다.

광천동의 주먹밥, 대동(大同)의 가장 작은 단위


 5·18민주화운동 당시 시민들이 음식을 가지고 나와 시민군들에게 식사를 제공하고 있다. 1980년 5월 22일 광주 누문동에서 이창성 기자가 촬영한 사진이다.
5·18민주화운동 당시 시민들이 음식을 가지고 나와 시민군들에게 식사를 제공하고 있다. 1980년 5월 22일 광주 누문동에서 이창성 기자가 촬영한 사진이다. 5·18기념재단 제공

광주에 내려갈 때마다, 1980년 그때를 살아낸 친척들이 한 분 두 분 입을 열기 시작했습니다. 작은 고모는 그 시절 광주 광천동에 사셨습니다. 1980년 5월, 고모는 동네 아주머니들과 함께 주먹밥을 빚으셨습니다. 누가 시킨 것도, 단체가 동원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저 광주를 지키는 사람들이 굶고 있었기 때문에 밥을 했습니다. 그 주먹밥은 트럭에 실려 도청 앞으로, 금남로로 갔습니다.

영화 <택시운전사>에서 송강호 배우가 "특별한 양념이 없어도 맛있다"고 했던 장면을 처음 마주했을 때, 저는 한동안 화면에서 눈을 뗄 수 없었습니다. 그것은 영화 속 한 장면이 아니라, 제 가족의 이야기였기 때문입니다.

1980년 5월의 광주를 우리는 종종 '대동세상(大同世上)'이라 부릅니다. 누구도 강제하지 않았는데도 시민들은 헌혈에 줄을 서고, 밥을 짓고, 부상자를 옮기고, 거리를 지켰습니다. 폭력 앞에서 인간이 어떻게 서로를 살릴 수 있는지를, 5월의 광주는 인류의 기억 속에 남겨 두었습니다. 작은 고모가 빚은 주먹밥 한 덩이는, 바로 그 거대한 마음의 가장 작고 가장 정직한 단위였습니다.

가게 벽에 박힌 총알, 국가폭력의 본질

작은아버지는 그 시절 금남로의 한 중고가전 가게에서 일하셨습니다. 어느 날 가게 안으로 총알 한 발이 날아 들어와 벽에 박혔다고 합니다. 작은아버지는 그 날의 충격을 떠올리며 나지막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종관아, 그날 그 가게 안에서 내가 죽을 수도 있었다. 나는 시위도 안 했는데."

이 한마디 안에 국가폭력의 본질이 들어 있습니다. 국가폭력은 가해자가 피해자를 선택하지 않습니다. 시위에 나간 사람과 나가지 않은 사람을 구분하지 않습니다. 광주 시민이 아니어도, 가게에서 일하던 평범한 노동자여도, 누군가의 아들이고 형이고 아버지여도, 가게 벽에 박힌 한 발의 총알 앞에서는 모두 같은 운명에 놓입니다.

저는 이 사실을 깨닫고 난 후, 교실에서 5·18을 가르치는 방식을 다시 정리했습니다. 5·18은 '저항한 사람들의 역사'이기 이전에, '평범한 사람의 평범한 하루가 어떻게 뿌리째 뽑힐 수 있는가'에 대한 역사입니다. 시위 한 번 한 적 없는 사람의 목숨까지 가져가는 폭력 앞에서, 우리는 누구나 가해자가 될 수도 있고 누구나 피해자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 그것이 5·18이 오늘의 우리에게 건네는 가장 무거운 질문입니다.

어머니의 눈물, 한 세대의 침묵

 5·18민주화운동 46주기를 하루 앞둔 지난 17일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5·18민주묘지에서 고(故) 김갑진 열사의 아내 정정희(72)씨가 남편의 묘역을 둘러보고 있다.
5·18민주화운동 46주기를 하루 앞둔 지난 17일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5·18민주묘지에서 고(故) 김갑진 열사의 아내 정정희(72)씨가 남편의 묘역을 둘러보고 있다. 연합뉴스

노화도에서 평생 농사를 지으신 어머니는, 역사 공부보다 세상 공부를 하고 다니는 아들을 늘 걱정하셨습니다. 대학에 입학하기도 전부터 어머니는 같은 말씀을 입에 달고 사셨습니다.

"아들아, 대학 가서 데모하면 안 된다. 큰일 난다."

대학에 들어가 시위에 나가는 아들을 본 뒤로는, 말씀이 조금 바뀌었습니다.

"아들아, 데모를 해도 앞에 서면 안 된다. 잡혀간다."

어느 해 5월, 저는 그런 어머니를 모시고 광주 망월동 민족민주열사 묘역에 갔습니다. 민족민주열사들이 누워 계신 그 묘역에서, 어머니와 저는 소주 한 잔을 따라 놓고 마주앉았습니다.

"엄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중학교 3학년 때 아버지가 보여 주신 그 비디오 테이프 속 광주를, 저는 잊을 수가 없어요. 그래도 제가 역사를 배운 사람인데, 역사 앞에 부끄럽지 않게 살아야지요. 이렇게 많은 분들이 누워 계신데 어떻게 외면하고 살아요."

어머니는 한참 말이 없으셨습니다. 그저 눈물만 흘리셨습니다.

그때 저는 알았습니다. 어머니도 5·18을 모르지 않으셨다는 것을. 몰라서 조용히 사신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한 시대의 침묵은 무지가 아니라, 자식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한 어머니의 두려움이었고, 그 시절을 함께 견뎌낸 한 세대의 슬픔이었습니다.

우리는 종종 침묵을 동의로 오해합니다. 그러나 어떤 침묵은 가장 깊은 애도이고, 가장 무거운 증언입니다. 어머니의 눈물 한 방울은, 침묵 속에 5월을 견뎌 온 수많은 어머니들의 마음과 같은 무게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1980년 광주의 비극은 시민군의 함성으로만 기억되어서는 안 됩니다. 말하지 못한 이들의 침묵, 울지 못한 이들의 눈물 또한 그날의 광주를 구성하는 또 하나의 진실입니다.

교실에서, 12년째의 5월

역사교사가 되어, 매년 5월이면 교실에서 5·18을 가르칩니다. 올해로 13년째입니다. 그리고 오늘, 2026년 5월 18일. 저는 우리 학교 아이들과 함께 '5·18 민주화운동 기억 캠페인'을 엽니다.

잊지 않기 위해 행동합니다. 기억하기 위해 행동합니다. 기억은 그저 머릿속에 남아 있는 정보가 아닙니다. 기억은 행동입니다. 행동으로 옮기지 않는 기억은 곧 잊힙니다. 그래서 저는 매년 아이들과 함께 작은 무엇이라도 합니다. 한 장의 포스터를 만들고, 한 줄의 추모 글을 쓰고, 5월의 어느 수업 시간에 다 같이 1분간 묵념을 합니다. 거창한 행사는 아닙니다. 그러나 그 1분이 한 학생의 평생에 5·18의 자리를 마련해 줄 수 있다고 저는 믿습니다.

하루에도 수차례 생활지도 사안이 발생하는 시끌벅적한 남자 중학교에서, 저는 아이들에게 평화를 자주 이야기합니다. 서로의 일상의 평화를 지키자. 평범한 삶의 평화를 깨지 말자. 친구의 평화를, 가족의 평화를, 이웃의 평화를 작은 말 한마디로도, 작은 행동 하나로도 무너뜨릴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말자. 5·18을 가르친다는 것은 1980년의 한 사건을 외우게 하는 일이 아니라, 평범한 한 사람의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그것을 지키기 위해 우리가 오늘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아이들과 함께 묻고 또 묻는 일입니다.

당신의 5·18은 안녕하십니까

5·18은 1980년 광주만의 일이 아닙니다. 앞서 말했듯, 5·18은 '평범한 사람의 평범한 일상이 어느 날 갑자기 무너질 수 있다'는 인류 보편의 경고입니다.

작은 고모가 빚으셨던 주먹밥은, 굶주린 이웃을 외면하지 않은 한 시민의 양심이었습니다. 작은아버지의 가게 벽에 박힌 총알은, 시위 한 번 한 적 없는 사람의 하루마저 빼앗아 가는 국가폭력의 얼굴이었습니다. 어머니의 눈물은, 자식의 안위를 걱정하며 침묵으로 5월을 견뎌낸 한 시대의 애도였습니다.

서로 다른 표정을 한 이 세 가지 이야기는 결국 같은 사실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평범한 일상의 평화는 결코 저절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 누군가는 그것을 지키기 위해 밥을 짓고, 누군가는 그것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거리에 섰고, 누군가는 그것이 다시 무너지지 않게 하기 위해 평생 침묵의 무게를 견뎌 왔다는 사실 말입니다.

그래서 오늘 저는 우리 모두에게 묻고 싶습니다. 나의 평화와, 너의 평화와, 우리의 평화를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거창한 일이 아니어도 됩니다. 옆 사람의 안부를 묻는 것. 잘못된 정보 앞에서 침묵하지 않는 것. 5월에 한 번이라도 광주를 떠올리는 것. 영화 한 편을 더 보고 가족과 이야기 나누는 것. 그리고 '그날 그곳에 내가 있었다면 나는 어떻게 했을까'라는 질문을 잊지 않는 것. 그것이 우리가 오늘을 사는 방식이자, 5·18을 살아내는 방식입니다.

오늘 하루만이라도 잠시 하던 일을 멈추고, 1980년 5월의 광주를 떠올려 주십시오. 누군가의 어머니였고, 누군가의 아들이었고, 누군가의 작은아버지였던 그분들을 기억해 주십시오. 주먹밥을 빚으셨을 누군가의 거친 손을, 가게 벽에 박힌 한 발의 총알을, 자식을 잃은 어머니의 마른 통곡을 잠시만이라도 함께 떠올려 주십시오.

그 기억이, 오늘 우리의 평범한 하루를 지키는 가장 단단한 힘이 됩니다.

당신의 5·18은 안녕하십니까. 저는 오늘도 교실에서 아이들과 함께, 그날을 기억하겠습니다. 사람과 사랑과 삶을 지키는 일이, 결국 우리 모두가 5·18을 살아내는 방식이기에.

제46주년 5.18 민주화운동 기념 영성중 기억 캠페인 기억 캠페인 포스터
▲제46주년 5.18 민주화운동 기념 영성중 기억 캠페인 기억 캠페인 포스터 이종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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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서는 역사를 가르치고, 집에서는 8살 딸 지수와 6살 아들 지호에게 인생을 배우는 아빠. 첫째 출산 후 육아휴직을 하고 블로그에 육아일기를 쓰기 시작했고, 아이를 키우면서 사람과 세상을 다시 배우고 있습니다. 달리기를 하며 가장 자연스러운 나를 만나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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