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이 되면 별무더기가 내려온다. 꼬마 앵두전구 불빛이 하나둘 켜지면, 이곳은 우리 부부만의 낭만 포차가 된다.
이수정
태양광 꼬마 앵두 전구도 설치했다. 밤이면 별무더기가 내려 앉은 듯 중정이 보석처럼 빛났다. 앵두 전구가 반짝이는 중정의 밤은 우리 부부만의 낭만 포차가 되기도 했다. 따뜻한 차를 마시거나 때로는 와인 잔을 부딪히기도 하는 그 시간, 그 공간은 이제 더 이상 멈춘 것이 아니었다.
"오늘도 소식이 없어?"
"정말 잠꾸러기가 맞긴 맞나 보네."
그 가운데 우리의 시선이 가장 많이 머문 것은 '다이너마이트 백일홍 묘목'이었다. 어린 묘목이어서 나무 기둥도 가지도 여리기만 했다. 별명이 '잠꾸러기'라고 하던데 역시나 하루가 다르게 만개하는 봄꽃들 사이에서 백일홍 나무는 4월 내내 여전히 앙상한 가지를 드러낸 채였다. 아침저녁으로 우리는 백일홍 가지를 살폈다. 혹여나 말라버린 것은 아닌지 조바심이 나기도 했다.
아침저녁으로 백일홍의 가지를 살피며 나는 문득 런던의 딸아이를 생각했다. 낯선 공기, 생소한 언어 속에서 딸아이도 이 백일홍처럼 숨을 고르고 있을 것이다. 자신만의 속도로 자신의 때를 기다리며 뿌리 끝부터 힘을 모으고 있을 것이다.
자리를 만들어 가고 있는 시간들
4월이 지나고 5월이 시작되자, 봄꽃들은 하나둘 더욱 짙어진 잎사귀들에게 자리를 내주었다. 꽃의 화려함도 좋지만, 더욱 따스해진 햇살 아래에서 푸른 잎사귀들이 춤추는 모습은 우리에게 큰 기쁨이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드디어 잠꾸러기 백일홍 나무가 기지개를 켰다. 앙증맞은 연한 잎사귀가 빼꼼 고개를 두어 개 내밀던 날, "와, 드디어 나왔구나!"
나는 중정이 울리도록 환호했다. 오랜 잠에서 깬 백일홍은 하루가 다르게 싹을 틔워 냈다. 다이너마이트 백일홍이라더니, 잎사귀 끄트머리마다 붉은 기운이 번져 마치 꽃이 피기 전부터 이미 꽃을 품고 있는 것 같았다. 우리 부부는 아침저녁으로 기대와 설렘으로 백일홍 나무를 살폈다. 마치 딸을 키우며 매 순간 가슴 벅찼던 그 기쁨의 기억들이 백일홍 잎사귀 위로 겹쳐졌다.
"이것 봐, 너무 신기하지? 백일홍이 이렇게 많이 자랐어. 봐봐, 로벨리아는 아직도 이렇게 꽃이 풍성하고 예쁘지!"
"우와, 너무 예쁘다. 아빠, 그 옆에 있는 것은 뭐야?"
남편은 딸과 영상통화를 하며 낮은 포복 자세로 중정의 꽃밭 여기저기를 비춰주었다. 딸과 아빠의 대화 소리가 내 귀와 마음에 단비처럼 스며든다. 환하게 웃는 딸의 얼굴 위로 런던의 햇살이 비쳤다. 그렇게 우리의 시간은 다시 흐르고 있었다. 런던에 있는 딸도 그곳에서 자신의 시간을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낯선 공간과 시간 속에서 천천히, 그러나 분명하게 자기 자리를 만들어 가고 있을 것이다.
아이가 떠난 이 공간, 이 시간은 비어 있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무언가 머물 수 있는 자리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우리 나이대의 많은 부모들도 각자의 빈자리에 다른 무엇을 채워가며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어제보다 백일홍 나무는 더욱 풍성해졌다. 곧 붉은 꽃망울을 피워낼 것만 같다.

▲하루가 다르게 자라는 백일홍 나무 백일홍은 하루가 다르게 자라고 있다. 무성해지는 잎사귀에는 붉은 꽃잎 색이 번져있다.
이수정
<폭싹 속았수다>의 애순이처럼 요망지게(야무지게), 똘망똘망하게, 유쾌하지만 호락호락하지 않게 살아온 중년 여성들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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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상담센터 원장이자 언어치료사 심리상담가로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따뜻한 치유의 글을 쓰고 싶습니다. 공동저서 '글루미릴레이' 공동저서를 출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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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 데크를 걷어내자 나온 것, 십수 년을 모르고 살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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