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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음악계에 큰 충격... 세 번 들으면 죽는다는 헛소문까지

[박형숙 소설가의 촉] 슈만, 구로사와 아키라, 황병기

등록 2026.05.12 13:24수정 2026.05.12 1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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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9세 때의 로베르트 알렉산더 슈만을 묘사한 석판인쇄화
29세 때의 로베르트 알렉산더 슈만을 묘사한 석판인쇄화 위키미디어 공용

얼마 전부터 이상하게도 한 단어가 어른거렸다. 꿈. 이 나이에 꿈이라니? 그와 함께 떠오르는 곡 슈만의 <트로이메라이>. 처음 클래식을 들을 때 드보르자크의 <유머레스크>나 쇼팽의 <야상곡>, 드뷔시의 <달빛> 같은 곡 사이에 어김없이 끼어 있던 곡.

낭만주의의 대가로 불리는 슈만의 음악이 결코 가벼운 감미로움에 머물지 않은 까닭은 무엇일까? 서양 고전 음악사에서 유명한 러브스토리의 주인공, 슈만과 클라라의 이야기는 너무도 잘 알려져 있다.


<피아노 협주곡 가단조> 1악장이 시작될 때, 피아노를 내려치는 듯한 격렬한 타건(打鍵). 그것은 클라라 아버지인 비크가 슈만과 클라라의 만남을 금지하는 것은 물론 온갖 중상모략과 욕설을 퍼붓고 침을 뱉고 길거리에서 뺨을 때릴 때, 그 모든 모욕과 방해 공작에 대해 슈만이 단호히 펼치는 사랑의 선언으로 들린다.

<트로이메라이>는 슈만이 클라라를 만날 수 없었던 시절, 클라라를 그리워하며 어린 시절 추억을 담아 작곡했다는 피아노곡 <어린이 정경> 중 제7곡이다. 우리의 무의식에 평화롭고 아름답게 보존된 유년의 감정을 천천히 길어 올리는 곡.

구로사와 아키라의 <꿈>

꿈이라는 단어가 연상시키는 다른 단어들을 생각해 본다. 잠, 몽상, 환상, 희망, 헛된 기대. 꿈에 대한 기억과 상념을 뒤적이다 보니 문득 떠오르는 영화가 있다. 구로사와 아키라의 <꿈>. 이십 대에 보았던 <폭주 기관차> <7인의 사무라이> <라쇼몽>만으로도 충분히 흠모하게 된 일본의 세계적인 영화감독의 작품.

유튜브를 뒤적이니 반갑게도 거기에 <꿈>이 있다. 친절하게 영어 자막이 뜬다. 그러고 보니 90년대 초반에는 아무 자막 없이 보았다. 영화에서 흘러나오는 툭툭 끊어지는 듯한 일본어가, 어쩔 수 없이 분출되는 일본인의 억압된 정서 같아서 불편했던 기억이 난다.


<꿈>은 구로사와 아키라가 어릴 때부터 성장하면서 자신이 본 꿈을 여덟 편의 단편으로 만든 옴니버스 영화다. 젊었을 때의 나는 완결된 구조 속 빼어난 영상미와, 선명한 사회적 메시지를 함께 읽어내느라 정신없었다. 작가주의와 정치적 올바름을 동시에 추구한 영화. 30년 만에 다시 보니 익숙한 듯 새롭다.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1990년 영화 <꿈>의 네 번째 에피소드인 <터널>에서 퇴역 장교가 터널에서 전사한 부하들의 유령을 대면하는 장면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1990년 영화 <꿈>의 네 번째 에피소드인 <터널>에서 퇴역 장교가 터널에서 전사한 부하들의 유령을 대면하는 장면 워너브라더스

전사한 부하들의 유령을 마주하는 퇴역 장교의 죄책감을 다룬 <터널>은 전쟁에 대한 총체적인 속죄는커녕 위안부 배상도 제대로 하지 않는 일본의 뻔뻔스러움을, <붉은 후지산>과 <우는 귀신>에서 보여주는 원자력 발전소 폭발과 핵전쟁의 위협은 여전히 유효할뿐더러 한층 더해지고 있는 인류사적 위기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이번에 보면서는 음악이 들렸다. 특히 일본 전통 음악이. <여우비>에서 흘러나오던 일본 전통 타악기와 피리 소리. 결혼 행렬에서 가부키 같은 가면을 쓴 여우들이 커다란 삼나무 사이에서 고개를 돌리며 멈칫, 할 때 함께 멈추는 타악기 소리와 뒤이은 정적. 그것은 몹시 기이한 느낌으로 일본 문화에 대한 선명한 인상을 남긴다.

<복숭아밭>에서는 계단식 밭에 일렬로 서 있는 복숭아 요정들 위로 연분홍의 꽃잎들이 비처럼 날리는 마지막 장면. 전통 의상을 입은 요정들이 뻣뻣한 동작으로 느린 춤을 출 때 흐르는 고풍스러운 느낌의 궁중 음악. 일본의 '에텐라쿠'풍의 선율이 쓰였다고 한다. 해마다 3월 3일에 하는 소녀들의 날을 뜻하는 일본 전통 축제, 히나마츠리를 연상시키는 장면이다.

젊은 날 감독 자신의 출사표 같았던 작품은 첫 번째 <여우비>였다. 햇빛 찬란한 날에 내리는 비, 여우비. 바로 그 비가 내리는 날, 소년은 봐서는 안 될 여우들의 결혼 행렬을 엿보고 만다. "스스로 목숨을 끊어 사죄하거나 아니면 여우들에게 직접 용서를 빌고 오라"는 형벌을 받는다. 여우를 만나러 소년은 떠난다. 여우가 남긴 칼을 들고서. 그것은 어쩐지 감독 가슴 속에도 있었을 것만 같다. 금기의 아름다움을 엿본 죄로 그에 필적하는 작품을 만들기 위해 자신을 벼렸을 날카로운 칼이.

소년은 용서를 구했을까? 결론은 보여주지 않는다. 대신 마지막 장면은 화려한 꽃밭 위에서 소년이 무지개를 바라보는 장면이다. 이것을 담은 포스터가 있었는데 까맣게 잊고 있었다. 젊고 가난한 영화감독 지망생에게 건네받았던 그 포스터는 결혼 전 내가 잠시 혼자 살던 원주의 고즈넉했던 자취방에 한동안 걸려 있었다. 그리고 결혼과 함께 신혼방으로 옮겨온 후에는 TV 뒤쪽 벽면에서, 자칫하면 자신을 송두리째 잃어버릴 낯선 결혼 생활에 적응 중인 신부를 오랫동안 지켜보았다. 그러다가 몇 번의 이사 끝에 언제인지 모르게 사라져 버렸다.

그 포스터는 왜 오랫동안 잊혔던 것일까? 만만치 않은 결혼이라는 현실 생활 때문이 아니었을지. 현실은 결코 꽃밭도 아니고 무지개 색깔도 아니었으니까. 현실은 그럼 무엇일까? 종잡을 수 없는 여러 문제가 복잡하게 얽힌 실타래. 그래. 미궁 같은 것이었으리라.

생로병사가 응축된 황병기의 <미궁>

 황병기의 <미궁>
황병기의 <미궁> 유튜브 갈무리

2016년 황병기 선생의 가야금 연주를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보았다. 가까운 아트센터에서 한다는 뉴스를 보고 바로 예매했던 <침향무> 공연. 무대 위로 선생이 하얀 모시 저고리를 입고 버선발로 사뿐사뿐 걸어 나오시던 모습이 떠오른다. 허공의 먼지 하나 건드리지 않으려는 듯 조심스러웠던 발걸음.

90년대 초반에 <침향무>를 즐겨듣곤 했지만 <미궁>은 몇 번 듣기를 시도하다가 포기했다. 이십 대의 나이로는 도저히 이해되지 않았다. 인간의 생로병사(生老病死)가 응축된 소리. 이제 그 소리가 들린다.

처음, 연주자가 댕댕댕댕 활로 현을 두드리다가 길게 켜 올리면 가야금에서 깊은 소리가 울려 퍼진다. 이런 소리가 몇 번 반복된 끝에 들리는 인간의 소리, 우우우우, 우우우우. 우주에 떠도는 혼을 불러내는 소리. 바로 탄생의 소리이다.

그다음에 웃음소리, 울음소리, 신음소리가 이어진다. 하이톤으로 깔깔거리다가 웃음소리는 곡하는 듯한 우는 소리로 바뀌고 그러다 고통을 이겨내는 신음소리가 된다. 웃고 울고 신음하는 한평생 살면서 인간이 내는 원초적인 소리. 이 소리는 허공을 채웠다가, 내 귀에 닿았다가, 어느 틈에 가슴 속의 근원적인 감정을 파고든다. 어디에 가 닿았던 것일까? 문득 저릿한 쾌감 섞인 통증이 느껴진다.

다음에 나오는 신문 읽는 소리는 문명의 소리. 처음에는 또박또박 읽지만, 차츰 빨라져서 나중에는 흡사 광인의 울부짖음처럼 들리는데 이 부분이 묘한 울림을 준다. 뒤이어 바람 소리인 듯, 파도 소리인 듯, 슛슛, 소리가 나면서 모든 소리를 쓸어 버리다가 고요해진다.

마지막으로 흘러나오는 반야심경의 주문.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익숙한 멜로디에 실려 나오는데 그 멜로디는 뜻밖에도 모차르트의 <작은 별>로 알려진 곡이다. 오호라, 한 인생의 주기가 끝나고 도달하는 곳은 바로 어린아이의 순수함이라는 뜻이구나.

1975년 발표 당시 이 곡은 한국 음악계에 거대한 충격을 던졌다. 가야금은 고루하다, 단조롭다, 옛것만 표현할 수 있다, 등등의 편견들. 이 곡은 그러한 편견과 고정관념을 단번에 무너뜨렸다.

전위적인 곡이니만큼 에피소드가 많다. 첫 공연 당시 어떤 여성 관객이 소리를 지르며 공연장을 뛰쳐나갔고, 단속이 심했던 1970년대 중반에는 너무 충격적이라고 연주 금지를 당하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뜻밖의 장르에서 많이 쓰였다. <전설의 고향>, 공포 게임 <화이트데이>, MBC 공포 예능 프로그램인 <심야괴담회> 등등의 배경음악. 심지어는 세 번 들으면 죽는다는 헛소문이 나돌 정도였다.

미궁 헤매는 우리를 인도할

다시 슈만의 <트로이메라이>를 들어본다. 한층 더 서정적으로 다가온다. 어린아이 같은 부드러운 선율. 하지만 우리가 눈앞에 마주하는 현실은 여전히 가파를 것이다. 미궁을 헤매는 우리를 인도할 아리아드네의 실은 무엇일까?

슈만의 <피아노 협주곡 가단조> 1악장의 주요 주제는 'C-H-A-A'(시-라-라) 음형으로 시작되는데, 이는 이탈리아어로 클라라의 이름을 암시하는 일종의 음악적 암호라고 한다. 바로 클라라에 대한 슈만의 사랑을 표현한 것. 첼로와 피아노가 대화하는 듯한 짧은 2악장을 거쳐, 생의 에너지와 환희를 표현한 3악장에 이르게 한 것은, 바로 사랑이었다.

미궁을 헤매는 우리를 인도하는 아리아드네의 실, 어쩌면 그것은 가까이에 있는지 모르겠다. 꿈. 여러 날 이 단어가 어른거리던 까닭은 아직 내게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꿈은? 우리의 꿈은 어디에 있을까? <미궁>의 2004년 공연에서 소개된 신문 기사가 우리의 꿈을 알려준다. "이제 한반도의 DMZ를 세계적인 평화의 공원으로 가꾸어 나가야 할 때가 왔다."
#꿈 #트로이메라이 #구로사와아키라 #슈만피아노협주곡가단조 #황병기미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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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소설집 3권과 엔솔로지 2권을 냈다. 여성주의에 관한 논문을 썼다. 중학교 교사로 국어를 가르쳤고 대학에서 소설창작을 가르쳤다. 지금은 전업작가. 문학 외에도 다양한 예술 장르를 좋아하고 즐겨 감상한다. 문학과 예술이 하나가 되는 삶을 꿈꾼다. 그리고 많은 이들이 문학과 예술 가까이에서 살아가는 사회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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