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병기의 <미궁>
유튜브 갈무리
2016년 황병기 선생의 가야금 연주를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보았다. 가까운 아트센터에서 한다는 뉴스를 보고 바로 예매했던 <침향무> 공연. 무대 위로 선생이 하얀 모시 저고리를 입고 버선발로 사뿐사뿐 걸어 나오시던 모습이 떠오른다. 허공의 먼지 하나 건드리지 않으려는 듯 조심스러웠던 발걸음.
90년대 초반에 <침향무>를 즐겨듣곤 했지만 <미궁>은 몇 번 듣기를 시도하다가 포기했다. 이십 대의 나이로는 도저히 이해되지 않았다. 인간의 생로병사(生老病死)가 응축된 소리. 이제 그 소리가 들린다.
처음, 연주자가 댕댕댕댕 활로 현을 두드리다가 길게 켜 올리면 가야금에서 깊은 소리가 울려 퍼진다. 이런 소리가 몇 번 반복된 끝에 들리는 인간의 소리, 우우우우, 우우우우. 우주에 떠도는 혼을 불러내는 소리. 바로 탄생의 소리이다.
그다음에 웃음소리, 울음소리, 신음소리가 이어진다. 하이톤으로 깔깔거리다가 웃음소리는 곡하는 듯한 우는 소리로 바뀌고 그러다 고통을 이겨내는 신음소리가 된다. 웃고 울고 신음하는 한평생 살면서 인간이 내는 원초적인 소리. 이 소리는 허공을 채웠다가, 내 귀에 닿았다가, 어느 틈에 가슴 속의 근원적인 감정을 파고든다. 어디에 가 닿았던 것일까? 문득 저릿한 쾌감 섞인 통증이 느껴진다.
다음에 나오는 신문 읽는 소리는 문명의 소리. 처음에는 또박또박 읽지만, 차츰 빨라져서 나중에는 흡사 광인의 울부짖음처럼 들리는데 이 부분이 묘한 울림을 준다. 뒤이어 바람 소리인 듯, 파도 소리인 듯, 슛슛, 소리가 나면서 모든 소리를 쓸어 버리다가 고요해진다.
마지막으로 흘러나오는 반야심경의 주문.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익숙한 멜로디에 실려 나오는데 그 멜로디는 뜻밖에도 모차르트의 <작은 별>로 알려진 곡이다. 오호라, 한 인생의 주기가 끝나고 도달하는 곳은 바로 어린아이의 순수함이라는 뜻이구나.
1975년 발표 당시 이 곡은 한국 음악계에 거대한 충격을 던졌다. 가야금은 고루하다, 단조롭다, 옛것만 표현할 수 있다, 등등의 편견들. 이 곡은 그러한 편견과 고정관념을 단번에 무너뜨렸다.
전위적인 곡이니만큼 에피소드가 많다. 첫 공연 당시 어떤 여성 관객이 소리를 지르며 공연장을 뛰쳐나갔고, 단속이 심했던 1970년대 중반에는 너무 충격적이라고 연주 금지를 당하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뜻밖의 장르에서 많이 쓰였다. <전설의 고향>, 공포 게임 <화이트데이>, MBC 공포 예능 프로그램인 <심야괴담회> 등등의 배경음악. 심지어는 세 번 들으면 죽는다는 헛소문이 나돌 정도였다.
미궁 헤매는 우리를 인도할
다시 슈만의 <트로이메라이>를 들어본다. 한층 더 서정적으로 다가온다. 어린아이 같은 부드러운 선율. 하지만 우리가 눈앞에 마주하는 현실은 여전히 가파를 것이다. 미궁을 헤매는 우리를 인도할 아리아드네의 실은 무엇일까?
슈만의 <피아노 협주곡 가단조> 1악장의 주요 주제는 'C-H-A-A'(시-라-라) 음형으로 시작되는데, 이는 이탈리아어로 클라라의 이름을 암시하는 일종의 음악적 암호라고 한다. 바로 클라라에 대한 슈만의 사랑을 표현한 것. 첼로와 피아노가 대화하는 듯한 짧은 2악장을 거쳐, 생의 에너지와 환희를 표현한 3악장에 이르게 한 것은, 바로 사랑이었다.
미궁을 헤매는 우리를 인도하는 아리아드네의 실, 어쩌면 그것은 가까이에 있는지 모르겠다. 꿈. 여러 날 이 단어가 어른거리던 까닭은 아직 내게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꿈은? 우리의 꿈은 어디에 있을까? <미궁>의 2004년 공연에서 소개된 신문 기사가 우리의 꿈을 알려준다. "이제 한반도의 DMZ를 세계적인 평화의 공원으로 가꾸어 나가야 할 때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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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소설집 3권과 엔솔로지 2권을 냈다. 여성주의에 관한 논문을 썼다. 중학교 교사로 국어를 가르쳤고 대학에서 소설창작을 가르쳤다. 지금은 전업작가. 문학 외에도 다양한 예술 장르를 좋아하고 즐겨 감상한다. 문학과 예술이 하나가 되는 삶을 꿈꾼다. 그리고 많은 이들이 문학과 예술 가까이에서 살아가는 사회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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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음악계에 큰 충격... 세 번 들으면 죽는다는 헛소문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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