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2026.05.02 18:02수정 2026.05.02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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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년 5월, 안정을 뒤로하고 동반 퇴사한 40대 부부입니다. '조기 은퇴'라는 로망 너머의 치열한 현실과 길 위에서 마주한 삶의 가치들을 솔직하게 기록합니다.[기자말] |
은퇴한 지 벌써 2년이 훌쩍 넘었다. 아내와 함께 세계 곳곳을 떠돌며 소소한 행복을 박제하듯 기록해 온 시간들. 경기도 양평 한옥의 깊은 밤, 석가래가 은은하게 비치는 거실에 앉아 글을 쓰다 보면 마음은 자연스레 과거의 어느 지점으로 회귀하곤 한다.
지금 내가 누리는 이 평화로운 은퇴 생활의 뿌리는 어디일까. 그것은 아마도 가장 치열했고, 가장 무모했으며, 그래서 가장 뜨거웠던 나의 젊은 시절과 그때 곁을 지켜준 사람들로부터 시작되었을 것이다.
나의 사회 초년생 시절인 2005년은 IT 산업의 역사가 다시 쓰이던 격동의 시기였다. 닷컴 버블의 거품이 걷힌 자리 위에 기업들이 실질적인 내실을 다지며 ERP(전사적자원관리) 구축과 보안 솔루션 도입에 열을 올리던 때였다. 세상은 디지털이라는 새로운 질서로 재편되고 있었고, 그 소용돌이 한복판에 20대의 내가 서 있었다.
그 시절, 나는 마음이 맞는 친구가 다니던 벤처회사에 입사하며 첫 사회생활의 닻을 올렸다. 아이템은 당시로선 생소했던 'DB 보안 솔루션'. 서울 상봉동의 낡은 건물, 대여섯 평 남짓한 작은 오피스에 세 명의 청년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세상을 정복할 듯한 기세로 머리를 맞댔다.
고작 세 살 차이밖에 나지 않던 대표이사는 영업적 감각이 탁월했다. 구멍가게 수준의 회사에서 DB 보안 전국 총판권을 따내는 것을 지켜보며 나는 확신했다. '이 사람을 믿고 가면, 분명 내가 상상하지 못한 높은 곳에 닿을 수 있겠구나.' 그때 꿈꿨던 '높은 곳'이 정확히 어디인지는 몰랐지만, 적어도 나를 성장시키기에 그곳은 부족함 없는 용광로였다.
처절했던 패배가 남긴 전리품, 베프... 소중한 인연
하지만 인생이란 참으로 묘한 복병을 숨겨두는 법이다. 20대의 패기만으로는 넘을 수 없는 거대한 현실의 벽 앞에서 회사는 풍랑을 맞았고, 나는 물질적으로 큰 손실을 보았다.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던 좌절의 시기였다.
하지만 시간이 흐른 뒤 깨달았다. 그때의 처절했던 경험과 노하우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인생의 근육이 되었음을... 그리고 무엇보다 그 거친 풍파 속에서도 침몰하지 않고 내 곁에 남은 '사람'들이라는 가장 값진 전리품을 얻었음을 말이다.
그 시절 척박한 땅에서 맺은 인연 중, 지금까지도 변함없이 내 곁을 지켜주는 소중한 이들이 있다. 바로 나의 '베프'들이다. 허물없이 지내는 동갑내기 친구와, 비록 나이는 한 살 어리지만 때로는 형처럼 묵직한 든든함을 주는 동생. 그들은 내가 은퇴 후 해외로 떠나기 전에도, 낯선 유럽을 유랑하던 고단한 순간에도, 그리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양평 구옥에 둥지를 튼 지금까지도 우리는 서로의 안부를 묻고 추억을 공유했다.

▲베프와 함께한 시간. 20년을 한결같이 함께해온 전우이자 친구인 소중한 인연.
김봉석
20대의 풋내기 청년들이었던 우리는 이제 40대 후반의 중견인이 되었다. 한 집안의 가장으로, 기업의 중책을 맡아 조직을 이끄는 리더로 각자의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신기한 것은, 세월이 흘러 겉모습은 변했어도 그 시절 함께 고생하며 나눴던 특유의 '전우애'만큼은 유통기한도 없이 여전히 끈끈하다는 점이다.
젊은 날의 우리는 서로의 밑바닥까지 속속들이 알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각자의 삶을 치열하게 살아내고 다시 만난 지금, 우리는 말하지 않아도 서로의 주름과 조금씩 돋아나는 흰머리에 담긴 고단함을 이해한다. 이제는 경쟁이 아닌 배려로, 시기가 아닌 응원으로 서로의 든든한 어깨가 되어주고 있다.
인연의 위대함, 다시 길을 떠날 용기를 얻다
최근 동유럽 여행을 마치고 양평에 정착하며, 오랫동안 보고 싶었던 그 인연들을 다시 만났다. 사회초년생 시절의 고락을 함께한 베프, 경력 단절의 위기에 처했던 나를 다시 IT의 길로 이끌어주셨던 은사 같은 이사님, 그리고 나의 사수이자 멘토로서 큰 귀감이 되어주신 상사님들과 파트너사 대표님들까지. 은퇴라는 사건이 사회생활로 맺어진 인연들을 정리하는 계기가 되기도 하지만 역설적으로 '누가 진짜 내 사람인가'를 걸러내는 투명한 필터가 되어 주기도 한다.
나를 잊지 않고 반갑게 맞이해 주는 그들의 눈빛을 보며 나는 다시 한번 '인연의 끈'이 지닌 위대함을 믿게 되었다. 내가 먼저 사회라는 울타리를 벗어나 '은퇴'라는 이름의 길 위에 서 있지만, 그들 역시 조만간 내가 걷고 있는 이 길로 합류할 것임을 안다. 먼저 길을 나선 선배 여행자로서 나는 그들에게 보여주고 싶다. 조직의 직함이 사라져도 사회적 타이틀이 없어져도 우리를 지탱해 주는 것은 결국 '사람'과 '추억'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양평의 밤이 깊어 간다. 보일러의 낮은 웅성거림과 풀벌레 소리 사이로 오랜 친구들의 웃음소리가 들려오는 것만 같다. 과거의 내가 지금의 나를 있게 했고, 그때의 인연들이 지금의 나를 완성하고 있다. 나는 이 인연의 소중함을 잊지 않고, 앞으로 어떤 인연이 또 내 삶의 지도에 그려질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지금 내 곁에 있는 이들과 함께라면 그 어떤 길도 외롭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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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20년간의 안정된 직장 생활을 뒤로하고, 부부가 함께 은퇴 후 시작한 새로운 여정. 안정된 삶 대신 꿈을 선택한 40대 파이어족의 좌충우돌 '은퇴 후 삶'을 공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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