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 후 경제 활동은 없다 생각했는데 재취업한 지 두 달째

60대에 작업복 입고 캐나다 직장으로 출근하는 일의 감회

등록 2026.04.23 13:54수정 2026.04.23 13:54
3
원고료로 응원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은퇴를 선언하고 직장을 그만두던 날, 생애의 경제 활동은 영원히 끝났다고 믿기 마련이다. 은퇴 후 1년 반 동안 누린 자유는 꿈결 같았으나, 시간이 흐를수록 허망함과 좌절감이 밀려왔다.

무엇보다 가장 먼저 발목을 잡은 것은 무료함이었다. 어딘가에 소속되고 싶다는 갈망은 생각보다 짙었고, 일이 아닌 시간을 보낼 취미를 찾아 헤매던 과정은 사회에 첫발을 딛던 시절보다 혹독했다. 아침마다 직장으로 향하는 사람들의 뒷모습을 볼 때면, 치열했던 그 시절의 피로마저 그리워지곤 했다. ​


그러던 어느 날, 운명처럼 다시 일할 기회가 찾아왔다. 계획에 없던 재취업을 한 지 어느덧 두 달이 넘어가고 있다. 40여 년의 직장 생활 중 한국에서의 시간이 끝없는 감정 노동의 연속이었다면, 캐나다 이주 후의 생활은 정직하게 몸을 움직여야 하는 육체 노동의 직장이었다. 십 년 넘게 캐나다라는 낯선 환경에서 땀 흘리다 맞이했던 은퇴였기에, 다시 작업복을 갈아입고 직장으로 출근하는 일은 감회가 남달랐다. ​

 60대,은퇴라는 마침표를 지우고 다시 고쳐 멘 재취업. AI로 그린 그림이다.
60대,은퇴라는 마침표를 지우고 다시 고쳐 멘 재취업. AI로 그린 그림이다. 김종섭

다시 일을 시작하며 몸은 고될지언정 사람 사이의 감정 소모는 없을 줄 알았다. 그러나 생각은 빗나갔다. 재취업 후 마주한 자격지심이라는 복병은 육체적 고단함보다 매서웠다. 60세가 훌쩍 넘은 나이에 다시 직장의 막내로 돌아간 자리, 젊은 동료보다 느린 손끝은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게 만들었다. 아주 사소한 실수에도 "역시 나이 탓인가" 하는 자책이 먼저 고개를 들었고, 이는 스스로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져 몸과 마음을 더 지치게 했다. ​

가끔 위축된 마음이 들어 "이제 나이도 있고 이 일을 해도 몇 년이나 더 하겠어"라며 나약한 소리를 내뱉을 때면, 동료들은 손사래를 치며 응원해 주었다. "사장님, 아직 건강하시고 100세 인생에 젊으신데 벌써부터 무슨 그런 말씀을 하세요!" 그 따뜻한 응원 속에서 언제부턴가 불리는 호칭도 바뀌었음을 의식했다. ​

동료들이 불러주는 호칭은 형님이나 선배님도 아니었다. 자칫 거리감이 느껴지는 저기요나 아저씨도 아니었다. 그들은 일제히 '사장님'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실제 오너는 아니지만, 그 명칭이 처음에는 생경하면서도 묘하게 싫지 않았다. 그것은 40년 넘게 사회생활을 버텨온 세월에 대한 예우이자, 직장의 명장으로서 마땅히 받아야 할 존중처럼 느껴졌다. 비로소 그 호칭이 마음에서 진실하게 받아들여질 때, 직장에서 스스로의 존재를 다시 확인받는 기분이었다. ​

요즘은 가끔 수십 년이라는 긴 사회생활이 남은 젊은 동료들의 앞날을 가늠해 본다. 만약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가 이 험난한 과정을 수십 년 더 버텨야 한다면 어떨까. 생각만 해도 눈앞이 아찔하다. 그런데 그 아찔함이 역설적으로 지금의 삶에 묘한 여유를 준다. 이미 은퇴를 경험해 보았고, 이제 남은 노동의 시간은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자유롭게 마침표를 찍을 수 있는 소중한 한정판과 같기 때문이다. ​


지난 40여 년을 단 하루도 쉬지 않고 버텨온 세월이 비로소 경이롭게 다가온다. 그 시절에는 단 하루만 돈을 안 벌어도 삶이 무너질 것 같다는 절박함으로 그 지옥 같은 성실함을 견뎌왔다. 이제 노동은 생존을 위해서가 아니라, 존재의 가치를 증명하기 위한 수단이 된다.

혹시 오늘 직장에서 나이 때문에 고개를 떨구었는가. 40년을 견뎌온 당신의 어깨는 충분히 아름답고 경이롭다. 생존을 위한 노동이 아닌, 자유를 향한 노동이기에 우리는 오늘도 기꺼이 사장님의 자부심으로 작업복 단추를 채운다.
#? #은퇴 #재취업 #캐나다 #인생
댓글3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캐나다 거주, 이민자의 삶과 일상에서 건져 올린 이야기를 기록,다음'브런치'활동도 함께 합니다.


톡톡 60초

AD

AD

AD

인기기사

  1. 1 8년 다닌 회사에서 잘렸다, 구직급여 신청하고 깨달은 것 8년 다닌 회사에서 잘렸다, 구직급여 신청하고 깨달은 것
  2. 2 선수촌 없이 컨테이너까지 동원... 우려 쏟아진 아시안게임 선수촌 없이 컨테이너까지 동원... 우려 쏟아진 아시안게임
  3. 3 김승원 지키려다 정권 무너져... 아닌 건 아니다 김승원 지키려다 정권 무너져... 아닌 건 아니다
  4. 4 한국 기술로 소나무 살린 중국... 실패의 길로 가는 산림청 한국 기술로 소나무 살린 중국... 실패의 길로 가는 산림청
  5. 5 김어준이 맞았나, 민티07 뜨자 유튜브 적극 시청자 늘어 김어준이 맞았나, 민티07 뜨자 유튜브 적극 시청자 늘어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