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랑스의 서양 고전 음악 작곡가 모리스 라벨
위키미디어 공용
그렇다면 라벨은 어떤 작곡가였을까? 음악과 결혼했다며 평생 독신으로 지낸 사람, 연주자들이 자신의 곡을 정확하게 연주하지 못하면 못 견뎠던 사람, 느리고 세심하게 작곡하느라 작곡 편수가 많지 않은 사람, 작곡 스타일이 시계처럼 정밀해서 스트라빈스키가 '시계장인'이라고 부른 사람, 사랑하는 여인에게 키스 대신 자신의 '음악'을 바치겠다는 사람. 제1차 세계대전에서 오른팔을 잃은 친구 파울 루빈스타인(철학자 루빈스타인의 형)을 위해서 <왼손을 위한 협주곡>을 작곡한 사람, 일찍이 스물네 살에 <죽은 황녀를 위한 파반느>를 작곡한 사람.
라벨 본연의 음악 세계에 더 가까운 곡은 <물의 유희>일 것이다. 이 곡은 물결이 살랑대는 소리, 샘물, 폭포, 실개천 등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과연 피아노 소리는 살랑대다가 잔잔하다가 쏟아지는 듯하다가 또 유연하게 흐른다. 물의 변화를 리듬과 색채로 표현했다는 곡.
젊은 날, 앞을 보며 달려가던 시절에는 사물이 고정된 것으로 보였다. 마치 내가 도달해야 할 도착지가 저 앞에서 부동의 자세로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그런데 어떤 일을 계기로 삶을 멈춘 듯이 살아야 했을 때, 그때 비로소 주변이 보이기 시작했다. 멈추지 않고 변하는 사물들과 사람들이. 그 무렵부터 라벨의 음악은 내 귀에 와 머물렀다.
세상에는 얼마나 많은 '물'이 있을까? 장마 때 떠내려갈 뻔했던 친척 집 앞 개울물, 어릴 적 장화를 신고 놀던 흙탕물, 시골 처마 밑에서 떨어져 땅바닥에 작은 구멍을 내던 빗물, 김수영의 시 '폭포' 속 곧은 소리로 떨어지는 물. 사실 물처럼 다양하게 변할 수 있는 물질도 없을 것이다. 그래서 공자는 '지자요수(知者樂水)'라고 말했나 보았다. 변할 수 있는 것은, 지혜를 통해서만 가능하니까.
<물의 유희>는 물의 희롱, 혹은 물의 장난이라고도 불린다. 나는, 또 우리는, 너무나 오랫동안 유희를 경박한 것으로 무시해 왔다. 하지만 진정한 유희의 정신이란, 물의 정신, 자유의 아름다움을 지녔다. <물의 유희>에서 흘러나오는 맑고 투명한 선율처럼.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소설가. 소설집 3권과 엔솔로지 2권을 냈다. 여성주의에 관한 논문을 썼다. 중학교 교사로 국어를 가르쳤고 대학에서 소설창작을 가르쳤다. 지금은 전업작가. 문학 외에도 다양한 예술 장르를 좋아하고 즐겨 감상한다. 문학과 예술이 하나가 되는 삶을 꿈꾼다. 그리고 많은 이들이 문학과 예술 가까이에서 살아가는 사회를 소망한다.
공유하기
"매춘쇼"같은 공연에 이 곡을? 훗날 세계가 사랑한 음악의 정체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