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공지능(AI)을 활용해 만든 이미지.
오마이뉴스
퀴즈를 하나 내보겠다. 문장이 끝날 때 반드시 있어야 하는 문장부호는? 맞다. 마침표다. 언제나 그 자리에, 있어야 할 자리에 찍혀야 하는 문장부호가 마침표다. 그런데 문장이 끝났음을 알려주는, 그 '확신의 점'이 하나도 찍히지 않은 글을 보고 생각했다. 대체 왜 마침표를 안 찍었을까?
하지만 일하는데 이런 생각은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 나는 틀린 걸 바로잡는 사람. 발견했으면, 기사로 낼 글이면 글쓴이를 대신해 점을 찍어야 한다. 그게 내 일이니까. 마지막 문장까지 수십 개의 마침표를 찍으면서 생각했다. 그것 참, 번거롭네.
번거롭지만 완성된 글로 내보내기 위해서는 하지 않을 수 없는 일. 이런 번거로움을 피할 수 없는 일이 편집이라는 걸 새삼 또 깨닫는다. 그렇다. 퇴고는 본래 번거로운 일이다. 퇴고를 게을리하는 사람은 어쩌면 이런 번거로움을 싫어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좋은 음식 맛을 유지하는 비결
그러다 우연히 나와 같은 마음으로 일하는 사람을 TV에서 보게 되었다. 충남 당진의 한 닭개장 식당 사장님이 그 주인공. 사장님은 장모님이 20년간 하시던 식당을 이어받아 6년째 운영하고 있다고 했다. '감칠맛 폭발 닭개장의 비법'을 설명하는 인터뷰에서 사장님은 이렇게 말했다.
"닭개장의 기본은 신선한 닭이에요. 닭은 소량으로 나눠 매일 여러 번 삶아서 준비합니다. 육수는 닭고기를 삶으면서 나오는 걸로, 매번 신선하게 사용해요. 새벽 4시 반에 출근해서 닭을 삶고 손질하고 또 닭을 찢고. 음식의 신선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번거롭지만 두세 시간마다 반복적으로 손으로 닭을 찢어요.
한꺼번에 끓이게 되면은 야채가 숨이 죽어서 식감이 떨어지기 때문에 10인분 정도씩 나눠 끓여서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런 번거로움 때문에, 손님들도 많이 찾아주신다고 생각하고 또 그 번거로움 때문에, 맛을 유지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 <전현무계획2> 2025년 6월 20일 방송분.
이것이 바로 이른 아침부터 찾아온 손님들로 가게가 붐비는 닭개장 맛의 비결이었다. 편리함을 따진다면 닭을 한꺼번에 삶고 살을 찢는 걸 택했을 거다. 사장님은 그러지 않았다. 음식 맛을 중요하게 생각했기에 참 번거로운 과정을 매일 반복하고 있었다. 마치 내가 다양한 편집 요소를 빠뜨리지 않고 매일매일 꾸역꾸역 해내는 것처럼. 음식에 대한 그 정성을 제일 잘 아는 것은 손님들이었다. 마침표를 몽땅 빼고 쓴 분도 느꼈을까? 마침표가 다 채워진 문장의 아름다움을?
닭을 삶고 살을 찢고 다시 야채를 넣어 끓이는 수고로움이 담긴 영상을 보며 다시 나로, 내 일로 돌아와 본다. 출근해서 퇴근할 때까지 내 책상 위 모니터에는 매일 수십 개의 글이 놓인다. 누군가가 한 자 한 자 고심해서 썼을 이야기들. '이런 걸 글이라고 할 수 있나, 이게 이야기가 될까, 이런 글을 내가 써도 될까, 이런 글을 누가 공감해 줄까...' 등등 걱정과 염려와 불안이 가득 담긴 얼굴로 내 손길을 기다리고 있는 글들이(자신감이 가득 담긴, 자기애가 넘치는 글들도 물론 있다).
편집은 퇴고의 시간이다. 글쓴이가 미처 보지 못한 오류를 잡아내는 시간, 정돈하는 시간이다. 마침표가 없는 문장들을 비롯해, 쉼표, 작은따옴표와 큰따옴표, 창괄호, 둥근 괄호, 가운뎃점, 인용 표시, 사진 입력 등 무수히 많은 자잘한 그러나 결코 건너뛰어서는 안 되는 일을 번거롭지만 반복하는 일이다.
신나고 재밌을 때도 있지만 반대로 고단하고 지겹고 하찮게 느껴질 때도 있다. 이런 것까지 해야 하나 싶은 일들을 매일매일 해내는 일에 가깝다. 어떤 날엔 '이건 일이 아니라 수련'이라는 생각도 든다. 계속 해야 하니까. 하기 싫다고 안 해도 되는 일이 아니니까. 포기하지 않고 견뎌야 하는 시간이라서.
귀한 그릇을 다루듯 조심조심
그런데 참 희한하지. 좋은 글 앞에서는, 좋은 이야기 앞에서는 마음이 돌변한다. 귀한 그릇을 다루듯 조심조심 한 글자 한 글자 받들게 된다. 내 마음을 좋은 방향으로 움직이게 하는 글, 잠시 숨을 고르며 생각에 잠기게 하는 글,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글, '나만 그런 게 아니구나'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글, 지금의 나를 돌아보고, 앞으로의 나를 생각하게 하는 글, 나도 한번 써볼까 싶은 마음이 들게 하는 글 앞에서는 고치고 다듬는 일이 싫지 않다.
번거로운 적은 많았어도 그 번거로움에 지고 싶었던 적은 없었다. 그러니 이 일을 20년 이상 하고 있겠지. 손님들에게 맛있는 닭개장을 제공하기 위해 매일 닭을 삶고 살을 찢는 일을 반복하는 닭개장 사장님 마음과 번거로움에 지지 않고 꿋꿋이 버티고 버텨 완성도 있는 글을 만들고 싶은 내 마음이 조금 닮아 보인 것은 그래서다.
언젠가 내가 편집 일을 그만두게 되었을 때를 상상한다. 마지막 글, 마지막 문장에 마침표를 찍는 그 순간. 조금 그리울지도 모르겠다. 뭐든 떠나고 나면 아쉬운 법이니까. 그러니 할 수 있는 지금 최선을 다할밖에. 내 글이 아닌 남의 글에 찍는 마침표 하나도, 홀가분한 마음으로 편집 완료 버튼을 누르는 마우스에도.
가게 문 닫을 때까지 오신 손님들에게 맛있는 음식을 내주려고 노력하는 사장님처럼, 나도 번거로운 퇴고의 과정을 무심하게 지나치고 싶지는 않다. 쓰는 사람이라면 응당마땅고도리(이건 너무 당연하다는 뜻의 유행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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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이런 제목 어때요?>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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