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년퇴직 후, 8천 명의 독자를 만날 줄이야

등록 2026.03.23 10:18수정 2026.03.23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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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일국 기자님, 오마이뉴스입니다. 기자님의 기사가 방금 채택되었습니다. 이 기사를 지인과 함께 나누세요. 제목: 이 약속을 지키려 아내의 기일마다 짐을 쌉니다."

3월 13일, 내 스마트폰으로 날아온 이 짧은 알림 한 통이 내 인생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았다. 파란색 링크를 누르는 순간, 아프리카에서 제일 높은 해발 5,885m 킬리만자로 정상에 섰을 때보다 더 큰 전율이 온몸을 스쳤다. 정년퇴직 후 평범한 시민으로 살아가던 내게 '기자'라는 새로운 이름표가 붙는 순간이었다.


[관련기사 : 이 약속을 지키려 아내의 기일마다 짐을 쌉니다]

나는 이 벅찬 소식을 복사해 지인들과의 단체 카톡방에 올렸다. '늙은이가 무슨 잘난 척이냐'는 소리를 들을까 잠시 망설였지만, 무언가에 다시 도전하고 성취했다는 기쁨을 수십 년 지기들과 나누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

22일 일요일 아침. 서울대공원은 완연한 봄의 숨결로 가득했다. 친구들과 둘레길을 걷기로 한 날인데, 스마트폰 속 내 기사에 마음을 빼앗기다 보니, 내려야 할 정거장도 놓치고, 출구도 잘못 들어섰다. 둘레길도 늘 걷던 익숙한 동물원 코스였지만, 오늘따라 그 길이 낯설게 느껴졌다.

예전 같으면 세월의 무게를 탓하며 쓴웃음을 지었겠지만, 오늘은 껄껄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것은 노화의 증거가 아니라, 내 안에 다시 찾아온 설렘 때문이었다.

공원 광장에는 유모차를 탄 쌍둥이 아이들과 젊은 부모들의 웃음이 햇살처럼 번지고 있었다.


"사진 한 장 찍어도 되겠습니까?"

조심스레 허락을 구하며 셔터를 누르는 내 손끝이 기분 좋게 떨렸다. 나도 저런 시절이 있었지. 아이들의 보폭에 맞춰 걷던 그 찬란한 봄날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갔다.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홍학의 붉은 날갯짓, 그 모든 풍경이 이제는 단순한 구경거리가 아니라 내 기사를 채울 문장으로 다가왔다.


서울 대공원에 봄이 오고 있다 부모는 아이의 보폭에 맞추어 걷다. 느림이 주는 행복
▲서울 대공원에 봄이 오고 있다 부모는 아이의 보폭에 맞추어 걷다. 느림이 주는 행복 정일국

점심 자리에서 친구들은 이미 내가 올린 링크를 읽고 온 상태였다.

"야, 일국이가 기자가 됐다. 큰일 해냈네!"

자리에 앉기도 전에 친구가 축하의 잔을 권했다. 미처 확인하지 못했던 친구들까지 그 자리에서 기사를 읽으며 식탁 위는 금세 축하의 열기로 달아올랐다.

"선생과 교수라는 직함보다 기자라는 이름이 훨씬 생동감 있고 멋지다. 네가 몸으로 부딪쳐 얻은 결과 아니냐."

친구의 투박한 축하 속에는 수십 년 우정의 무게와 77세라는 나이에 새로운 길을 개척한 친구를 향한 진심 어린 응원이 담겨 있었다. 8천명이 넘는 독자가 내 글을 읽었다니. 나는 숫자보다, 친구들이 나를 진심으로 '기자'라 불러주며 기뻐해 준 그 순간이 더 가슴 깊이 남았다.

집으로 돌아가는 지하철 안에서 나는 다시 스마트폰 앱을 켜고 이 글을 정리한다. 이제 나는 말로 기록하고 손으로 다듬으며 실시간으로 세상과 소통하는 법을 배웠다. 군 시절 육군기갑학교에서 전차병으로 훈련받으며 들었던 "중도 포기는 없다"는 다짐이 노년의 '디지털 수업'교실에서 다시 빛을 발했다.

비록 육신은 낡아가도 새로운 문명을 향한 갈구는 나를 영원한 청년으로 남게 한다. 길을 잃어도 다시 돌아가면 되고, 정거장을 지나쳐도 다시 시작하면 된다. 마음을 내려놓으니 비로소 인생의 길이 보이기 시작한다.
덧붙이는 글 비록 육신은 낡아가도 새로운 문명을 향한 갈구는 나를 영원한 청년으로 남게 한다. 길을 잃어도 다시 돌아가면 되고, 정거장을 지나쳐도 다시 시작하면 된다.


마음을 내려놓으니 비로소 인생의 길이 보이기 시작한다.
#인생 #길 #기자 #서울대공원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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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년퇴임 후 KOICA해외봉사활동. 현재는 봉사활동경험과 배낭여행 강연가로 활동 중입니다. 77세의 나이에도 배낭을 메고 세상으로 나가는 '백발의 보헤미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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