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미리 꺼낸 이별사, 딸이 보내는 답신

"오래 오래 우리랑 더 놀다 헤어집시다"

등록 2026.03.16 10:29수정 2026.03.16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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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장례 문화가 바뀌고 있다는 기사를 봤다. 빈소를 차리지 않거나, 염습을 생략하는 등 기존 장례 형식을 따르지 않는 문화가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늘 가는 장례식장은 대부분 지인의 가족상이다. 부조 봉투를 챙기고 고인에 대한 예의로 절을 올리고 상주들과 인사를 나눈다. 육개장 한 그릇을 먹으며 장지가 어딘지, 가족 관계는 어떻게 되는지 의례적인 질문들을 주고 받는다. 이것이 내가 아는 흔한 장례식장의 풍경이다. 고인보다 상주와의 관계로 다녀오는 조문이 대부분이다.


내가 처음 장례를 접한 건 스물한 살 때다. 할머니가 돌아가셔서 집에서 자택 장례를 치렀다. 시골집 마당에 천막을 치고 오는 사람들에게 음식을 내주고 시신은 방 한 쪽에 모셨던 기억이 있다. 아직 세상 물정 모르던 스물한 살, 죽음은 그냥 무섭고 나와는 상관없는 남의 일로만 생각했다.

사람에게 죽음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찾아오지만, 처한 상황과 인생에 따라 받아들이는 온도는 천차만별일 것 같다. 결국 삶의 마지막 여정이 죽음이라는 것은 꽃이 피면 지는 것처럼 자연의 조화로 받아들여야 하지만, 여전히 내게 죽음은 무겁고 두렵다. 죽음이라는 인생 여정의 마침표를 정리하는 형식이 장례식이다.

언젠가는 맞을 이별의 날을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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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unth on Unsplash

나는 5남매의 맏이다. 부모님이 생존해 계시기 때문에 장례식에 대한 무거운 부담은 늘 가슴 한쪽에 묻어두고 있다. 살아 계시는 부모님을 두고 장례를 떠올리는 게 불효일 수 있다는 생각도 하지만, 언젠가 마주해야 할 현실이라는 걸 나이가 드니 알게 됐다. 건강하게 오래 자식들과 잘 계시기를 당연히 바라지만, 한번은 맞아야 할 이별 절차에 대한 무거운 책임감은 어쩔 수 없는 'K장녀'의 몫이다.

몇 해 전 내게 엄마는 '큰딸이니 너는 알고 있어라, 끝방 농 위에 있는 보자기 쌓인 상자가 엄마, 아버지가 갈 때 입을 옷이다'라고 하셨다. 가실 때 당황해 할 자식들을 위해 미리 준비하신 배려다. 그리고 보건소에 가서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등록했다고 하셨다. 나이 들면 갈 때는 가야 한다면서 절대 당신 몸에 의미 없는 생명 연장 기구들을 달지 말라고 수차례 전하며 유언이니 잊지 말라고 신신당부 하셨다. 그렇게 세월이 흐르고 나이가 들면서 죽음이 삶의 여정이라는 걸 나도 조금씩 알아 가고 있다.


장례 문화가 변화하고 있다는 기사를 보고 한동안 묻어둔 장례식에 대해 다시 깊은 생각에 잠겼다. 빈소를 차리지 않고 형식 없는 장례를 치르는 것이 늘 다녀오던 장례식에 비해 성의 없는 이별로 비칠 수 있다는 걸 모르지 않는다. 그러나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이 보여 주기 식 의례가 아니라 떠나는 이의 지난 삶을 되돌아보며 남은 이들이 충분히 애도할 수 있는 시간, 거기에 더해 따뜻한 배웅의 시간이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게 됐다.

장례 절차는 나 혼자 결정할 문제가 아니다. 각자 생각하는 이별의 방식이 다르고 무엇보다 부모님의 선택이 중요하다. 하지만 장례에 관한 이야기를 부모님과 나누기는 어렵다. 다행히 엄마는 편하게 큰딸인 내게 속마음을 건네신다.


"이 세상에 와 다섯 자식 낳고 다들 사이좋게 잘 사는 거 보고 좋았다. 고생한 거 다 잊을 만큼… 이 세상 떠날 때 내 새끼들이 배웅해 주면 된다. 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는 엄마의 전언이 나를 숙연하게 한다. 허례허식을 워낙 싫어하고 거추장스러운 것도 딱 질색인 엄마가 과연 자주 보지도, 따뜻한 밥 한 끼 나눈 적 없는 사람들의 조문을 좋아하실까?

장례라는 절차를 당신들이 선택하는 방식으로 할 수 있게 조심스럽게 여쭤볼 수 있는 용기를 내보고 싶다. 그게 언제가 될지 아니면 끝까지 용기를 내지 못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엄마가 떠날 때 배웅받고 싶은 '내 새끼들끼리 사이좋게 잘 지내라'는 진심은 꼭 지켜드리겠다. "우리 다음 생에도 만나자. 내 새끼들로 만나자"는 가장 솔직하고 따뜻한 엄마의 예고된 이별사다.

"예! 알았으니 오래 오래 우리랑 더 놀다 헤어집시다."

엄마의 이별사에 혼잣말로 답을 대신해 본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개인브런치에도 실립니다.
#삶 #죽음 #장례 #선택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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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었던 직장생활을 끝내고,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을 글로 써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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