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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26.03.21 11:59수정 2026.03.21 1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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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둬. 여기 멀리서 봐봐. 알프스 못지않게 예쁘잖아. "
느루뜰 진입로를 가득 메운 것은 냉이꽃이다. 냉이는 대표적인 봄나물이다. 어린 새순을 캐서 냉이된장국도 끓여 먹지 못했는데, 벌써 웃자라 하얀 꽃을 소복하게 피웠다. 이걸 뽑아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하는 나를 보고 농막 이웃 언니는 "알프스보다 예쁘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씨앗이 맺히고 땅에 떨어지면 나중엔 감당할 수 없는 풀밭이 되지 않을까...'
걱정이 되긴 했지만 당분간은 그냥 두기로 했다. 뽑더라도 꽃이 한창 예쁜 지금은 아닌 것 같았다. 냉이꽃을 자세히 보면 아주 작은 꽃이 종종종 여러 개가 모여 있다. 멀리서 보면 메밀꽃처럼 하얗고 작은 점 같지만, 가까이서 보면 오롯한 꽃송이 모습을 완벽하게 갖추고 있다. 자세히 보면 언니 말처럼 '에델바이스' 못지 않게 순하고 예쁘다.

▲누루뜰 진입로를 가득 메운 냉이꽃 이정미
두 농막의 밭에서 난 채소로 차린 밥상
"배추전 해서 점심 같이 먹을까?"
토요일 아침 일찍 느루뜰에 도착하니 농막 이웃 언니는 금요일 밤 12시 정도에 왔다며 우리를 반갑게 맞았다. 겨울 내내 서로의 일정이 엇갈려 오랜만에 넷이 완전체가 되었다.
느루뜰 이웃인 언니는 올해 2월 말 명예퇴직을 했다. 음악 교사로 삼십 년 넘게 일했다. 그리고 지난 1월 말에 12년 간 모셨던 친정 어머니를 하늘나라로 보냈다. 언니 남편인 양 박사님은 3주 간의 태국 출장을 마치고 오랜만에 농막에 왔다.
남편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겨울 동안 애먹인 수돗물 사정을 미주알고주알 늘어놓았다(양 박사님은 우리보다 8년 일찍 오도이촌 생활을 시작했다 이제 1년 차인 우리는 문제가 있을 때마다 양 박사님께 조언을 구하곤 한다).
한파가 지속된 겨울 동안에는 계곡물이나 수도 파이프가 얼어서 그런가 했지만, 날씨가 포근해진 지금도 수돗물이 제대로 나오지 않으니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가장 시급했다. 남편과 양 박사님은 수돗물을 끌어오는 산 아래 계곡에 위치한 수원(水原)을 살펴보러 갔다.
나는 지난주 마을 어르신의 밭 한가운데 돌길을 보고 잔뜩 고무되어 돌로 밭 경계를 정비했다(관련 기사 :
시골 밭 한가운데 돌길... 예술 작품이 따로 없습니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며 몸을 움직인 후 오후 1시 20분 경 점심을 먹기로 했다.

▲농막에서의 점심식사 언니네 텃밭표 알배추전과 느루뜰표 시금치전이 더해진 농막에서의 점심 식사, 펠렛난로에서 구운 군고구마. 이웃과 함께 하니 더욱 맛있고 행복하다.
이정미
점심 시간에 맞추어 나는 '느루뜰표 시금치전'을 부쳤다. 재료는 아주 단순했다. 밭에서 바로 공수한 싱싱한 시금치와 부침가루. 개인적으로 재료 본연의 맛을 좋아하기에 시금치를 가득 넣고 부침가루는 최소한으로 해서 전을 부쳤다. 보이차를 준비하고 집에서 가져온 고등어 조림도 챙겼다.
"어머나 언니, 배추전 해서 간단히 먹자더니 푸짐하게 차렸네요. 정말 맛있겠어요!"
손이 넉넉한 언니다. 언니는 그새 군침이 도는 빨간 떡볶이, 따끈한 어묵탕을 준비해 두었다. 겨울을 잘 이겨낸 언니네 텃밭표 노란 알배추전은 보기만 해도 달큼했다. 나는 언니가 차린 밥상을 눈으로 즐기며 사진을 찍고 행복하다며 호들갑을 떨었다.
밥상에 둘러앉아 이런 저런 사는 이야기를 나누며 점심을 맛있게 먹었다. 소박한 밥상이지만 여럿이 먹으면 더 맛있는 법이다. 이런 '소소한 행복'이 참으로 귀하고 소중하다. 서로 돕고 나누는 이웃이 있어 얼마나 고맙고 감사한지 모르겠다. 오도이촌 생활이 더욱 즐거운 이유, 바로 같은 곳을 바라보는 '동지'가 있다는 거다.
여담이지만 우리는 모임통장으로 회비를 모으고 있다. 매월 1인당 3만 원이 모임 통장에 입금된다. 현재 93만 원이 쌓였다. 4월 어느 금요일이나 토요일 밤에 이 지역 명소로 나가 저녁을 먹고 차도 마시며 좋은 시간을 보내자고 입을 모았다.
"고구마 먹으러 오세요."
펠렛 난로 지피길 유난히 즐거워하는 양 박사님이 고구마를 구웠다며 먹으러 오란다. 이게 바로 '새참'이란 거다. 우리는 오후에 꽃밭을 정비하고 꽃씨를 뿌리고, 나뭇가지를 치고, 쑥을 캐고, 수도관을 점검하고 수리하며 각자의 노동에 몰입하는 시간을 보냈다.
해가 뉘엿 눕는 해거름에 발갛게 타오르는 난롯가에 동그랗게 둘러앉아 노랗게 익은 고구마를 호호 먹으며 나는 또 얼마나 감사하고 행복하든지. 배가 든든해져 저녁은 아무래도 건너뛰어야 할 것 같았다.
감자 심고 묵은 먼지를 닦으며
토요일 느루뜰에 오기 전에 읍내 시장에 들러 '씨감자'를 샀다. 종묘상에는 벌써 여러 가지 채소 모종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종묘상 주인이 말했다.
"감자는 씨눈을 기준으로 잘라서 하루 이틀 정도 말린 후 심어야 해요. 안 그러면 재를 뿌려도 되고요. 그대로 심으면 땅속에서 썩어서 싹이 나지 않을 수 있어요."
눈길을 떼지 못하는 나를 보며 종묘상 주인은 이 모종들은 비닐하우스용이며, '노지'에는 4월 중순은 되어야 심을 수 있다고 알려주셨다.
지난 번 <오마이뉴스>에서 본 기사를 다시 찾아 읽으며 감자의 '씨눈'을 기준으로 2~3토막으로 잘라 말렸다(관련 기사 :
초보 농부 자신감을 올려줄 감자 농사, 이렇게 하면 망합니다). 감자는 15cm 깊이로 심어야 한다기에 남편은 아침부터 밭고랑을 두둑하게 만들었다. 이 기사를 참고해 굼벵이나 땅강아지로부터 감자를 보호하기 위해 유기농 토양 살충제도 미리 흙에 뿌렸다.

▲감자심기와 봄맞이 청소 씨감자를 자르고 말려서 감자를 심었다. 겨울 동안 묵은 먼지를 닦고 창문과 창틀도 깨끗하게 청소하였다.
이정미
감자 싹이 위로 향하게 하여 하나 하나 정성껏 심었다. 싹이 나려면 15~30일은 걸린다고 한다. 느긋하게 기다리지 못하는 나에게 '기다림의 미학'이 필요한 시간일 테다. 꽃샘추위가 닥칠 수 있으니 씨감자가 누워있는 둔덕에 하얀 보온포를 덮어주었다.
봄을 맞아 쉼터 유리창도 닦고 창틀 먼지도 제거했다. 창고에 넣어 두었던 테이블과 의자도 꺼내 깨끗하게 닦았다. 겨울 동안 구석 구석에 쌓인 묵은 먼지를 닦아내니 느루뜰 쉼터도 심호흡을 하는 것 같았다. 창이 맑아지니 덩달아 내 마음도 개운했다.
봄이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새롭게 시작하고 싶은 마음이 절로 일어나니, 새삼 사계절이 감사하다.
"느루뜰 고마워. 이번 주말도 덕분에 충만했어. 다음 주까지 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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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임통장까지 있는 이웃과 차린 밥상, 군침 넘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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