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BC 고 오요안나 기상캐스터가 직장 내 괴롭힘에 시달리다 목숨을 끊은 지 13개월 만인 지난 2025년 10월 15일 오전 서울 마포구 MBC 본사에서 열린 MBC와 유족 측 간의 잠정합의문 조인식에서 고인의 모친인 장연미 씨가 MBC 안형준 사장으로부터 전달받은 고 오요안나 명예사원증을 들고 있다.
이정민
2021년 5월에 MBC에 입사해 기상캐스터로 일했던 고 오요안나씨는 2024년 직장 내 괴롭힘을 호소하다가 유서를 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는 프리랜서라는 이유로 직장 내 괴롭힘으로부터 법적 보호를 받지 못했다.
방송국에 정해진 시간에 출근해서 날씨를 확인하고, 원고를 쓰고, 의상과 분장을 받은 뒤 다른 방송 정규직들과 함께 협업하면서 방송을 만드는데도 기상캐스터만 프리랜서였다. 프리랜서로 계약하는 이유는 비용을 줄이기 위해서이다. 근로자가 아니니 4대보험을 들 필요도 없고, 퇴직금을 주지 않아도 된다. 사건사고가 있어도 우리 회사 직원이 아니라며 꼬리 자르기도 쉽다.
비슷하게 방송원고를 쓰는 방송작가, 영상의 디자인 작업을 하는 디자이너 등 젊은 여성들이 주로 방송국에서 근로자로 인정받지 못하고 여러 가지 부당한 대우에 노출된다. 방송사들은 정당한 이유 없이 작가나 디자이너를 해고(계약해지)한다거나 1년 이상 근무하고 퇴사하는데도 프리랜서라는 이유로 퇴직금조차 주지 않는다. 그리고 이들은 대부분 여성들이다.
지난해 MBC는 고 오요안나 기상캐스터의 어머니 장연미씨 앞에서 기상캐스터가 '근로자'로 인정받지 못하는 현실을 개선하기로 약속했다. 그러나 그 약속의 이행 결과는 처참했다. MBC는 프리랜서로 계약되어 길게는 16년, 짧게는 5년 이상 일해온 프리랜서 기상캐스터들을 모두 해고(계약해지)했다. 이들은 모두 여성이었고, 그 빈자리를 차지한 정규직 '기상 전문가'는 남성이었다.
온라인의 반응은 갈렸다. 일부 사람들은 그동안 여성 기상캐스터들의 외모만 소비하던 관행에서 벗어나, 기상전문가가 채용되었다는 사실에 고무됐다. 하지만 그간 여성 기상캐스터들의 전문성이나 경력은 조명하지 않았으면서, 남성 기상캐스터의 이력을 강조하는 MBC의 행태를 비판적으로 보는 의견도 상당했다. 안정적인 일자리는 남성의 것이 되는 부조리한 현실에 대한 지적도 있었다.
투쟁으로 노동법의 보호범위를 넓힐수록 그 '보호'가 원래 노동을 하고 있던 여성노동자들에게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남성노동자들에게 돌아가는 현실은 오랫동안 반복되어 왔다.
1998년 현대자동차의 대규모 정리해고에서 남성노동자들의 해고를 막기 위해 여성 식당노동자 277명이 사직하거나 정리해고되어야 했다. 이후 현대자동차의 사정이 나아졌음에도 회사와 노조는 식당노동자들을 원직복직시키지 않았다. 2003년 우리나라 국회는 주5일제 근무를 법제화하면서 여성노동자의 유급 생리휴가를 무급으로 바꾸었다. 노동계는 생리휴가의 유급 유지를 주장했지만 국회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1986년 한진중공업에서 해고된 해고노동자 김진숙 민주노총 지도위원은 다른 모든 노동자들이 복직하고, 본인이 정년에 도달한 37년이 지나서야 복직할 수 있었다. 여성노동자 김진숙을 희생시키면서 나머지 해고노동자들을 복직시킨 것이다.
'비정규직 불안정 일자리'로 내몰리는 여성들

▲ 그림 : 인구학적 특성별 1년 후 정규직 전환율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현황, 이지은, 2023) 주 : 기준 연도 09통합표본 종단면 가중치 적용. 자료 : 한국노동연구원, 「한국노동패널조사」 12~25차(2009~2022년 조사) 학술대회용 자료.
한국노동연구원
실제로 한국노동연구원이 발간한 자료에 의하면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율에서 여성들은 남성보다 언제나 낮은 위치에 머무른다. 해고할 때는 가장 먼저, 복직할 때는 가장 나중에. 그것이 한국에서 여성노동자의 현실이다.
웹툰 작가, 방송 작가, 기상캐스터, 콜센터노동자, 톨게이트수납노동자, 청소노동자들의 투쟁은 모두 여성노동자들의 투쟁이다. 여성들이 많은 직종은 '쉬운 일'이라거나 '돈 안 받고도 하는 일' 또는 '아무나 할 수 있는 일'로 폄하되어, '비정규직 불안정 일자리'가 된다. 그뿐만 아니다. 2026년 현재를 살아가는 여성노동자들은 권리를 되찾기 위해 '근로자'라는 것마저 입증해야 한다.
스탠퍼드 경영대학원 경제학과 교수 마이라 스트로버는 <뒤에 올 여성들에게>에서 여성들이 저임금 불안정 일자리로 내몰리는 현상은 매력 없는 일자리에서 남성들이 빠져나가고, 매력적인 좋은 일자리를 남성끼리 독점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한국 사회는 남성이 생계부양자로서 역할을 해야 하는 시절은 지났다면서 여성에게 동등한 사회참여와 경제활동을 요구한다. 그러나 실상은 경제활동에서조차 남성의 안정적인 일자리를 떠받치는 '희생자' 역할을 강요받고 있는 것이다.
성차별은 엄마, 할머니 시대의 이야기라던 청년 남성들이 지금 MBC의 행태를 어떻게 바라볼지가 궁금하다. 남성들이 스스로의 능력이라고 강조하는 것들이 과연 여성들에게는 없는 능력인지, 그 능력을 인정받을 수 있게 만들어준 투쟁과 언어는 누가 만들어주었는지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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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여성 기상캐스터 없앤 자리에 남성 정규직이... 처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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