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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26.03.13 17:16수정 2026.03.13 17:16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슬픔은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몸에 맞게 조금씩 늘어나는 것인지도 모른다. 오래 입어 고무줄이 늘어난 속옷처럼, 처음에는 어색하고 헐겁지만, 결국 그 느슨함대로 몸에 적응해 가는 과정이다.
오는 5월 7일은 아내 향촌 여사가 천국으로 소천한 지 두 번째 되는 기일이다. 날짜가 가까워질수록 마음은 자꾸만 허물어지고 눈시울이 붉어진다. 빈집에서 홀로 그 침묵의 정적을 맞이할 자신이 없어, 나는 다시 밖으로 나가려고 한다.
미완의 약속

▲'미완의 약속'을 지키기 위한 여행 bad_noel on Unsplash
내가 아내 기일마다 짐을 싸는 것은 단순히 슬픔으로부터 도망치기 위함이 아니다. 아내와 생전에 했던 '미완의 약속'을 하나씩 완수해 나가는 나만의 추모 방식이다. 지난해 1주기 때 다녀온 코카서스 3국이 그랬다.
2007년 온 가족 자동차여행 중 파리 캠핑장에서 만난 이들이 추천했던 조지아 여행. 칠순 잔치 대신 가기로 예약했지만, 아내의 병세로 포기해야 했던 그곳을 지난해 5월 혼자 걷고 왔다. 눈물과 콧물이 범벅된 고행이었지만, 그것은 아내에게 바치는 나의 첫 번째 선물이었다.
사실 아내는 이미 나를 한 번 살려낸 생명의 은인이었다. 나는 정년 퇴직 후 코이카(KOICA) 해외봉사 활동을 하러 아프리카로 떠났다. 탄자니아 봉사 활동 시절, 풍토병에 걸려 40도를 넘나드는 고열로 사경을 헤맬 때, 밤새 찬 물수건을 대주며 나를 살려낸 이가 바로 아내였다.
새벽 5시, 아프리카 교회에서 들려오는 찬송가 차임벨을 들으며
"하나님, 좋은 일 하러 왔는데 왜 이러십니까" 하고 대들던 나를 곁에서 20개월 동안 묵묵히 지켜주었던 사람. 그때 함께 셌던 아프리카의 별들이 지금도 내 마음속에 또렷이 박혀 있다.
향촌 여사가 하늘로 나들이 간 석 달 뒤, 나는 갈비뼈 다섯 대가 부러지는 사고를 당했다. 병상에서
"아내분은 왜 안 오세요?"라는 물음을 들었을 때, 나는 비로소 내가 홀로 남겨졌음을 깨달았다.
아내가 떠난 후 큰 집을 정리하고 10평 남짓한 작은 집으로 이사했다. 공간이 좁아지면 외로움도 줄어들 줄 알았건만, 혼자 끓이는 김치찌개 냄새는 오히려 적막을 더 깊게 만든다. '고무줄 없는 팬티'처럼 마음은 자꾸만 헐거워져 흘러내린다. 그런 나를 붙든 건 자식들이었다.
"아버지, 이제부터는 아버지를 위해 사세요. 가진 돈 다 쓰시면서 건강하게만 계셔주세요."
그렇게 다시 길을 떠난다

▲ 초원을 보고 싶어했던 아내.
gabiden on Unsplash
자식들이 내어준 든든한 '비빌 언덕' 덕분에 나는 다시 비행기 표를 쥐게 됐다. 방 한쪽에는 아내와 커플로 맞췄던 배낭이 있다. 정작 주인은 한 번도 메보지 못한 새 '오스프리' 배낭이다. 매일 아침 빈 배낭을 미리 메어보며 다짐한다. 당신이 못다 본 세상을 내 어깨에 짊어지고 함께 걷겠노라고.
이번 행선지는 중앙아시아다. 몽골의 초원을 보고 싶어 했던 아내의 바람과, 말 안장에 오르고 싶었던 나의 로망이 만나는 곳이다. 평생 화학을 가르치며 물질의 상태와 변화를 지켜봤지만, 상실이 남긴 이 마음의 상태와 변화는 여전히 풀기 어려운 숙제이다. 식어버린 국물도 다시 데우면 온기가 돌아오듯, 부실한 식사로 식어갔던 내 인생의 온도계도 다시 새롭게 작동시키고 싶다.
77세의 봄, 나는 아내의 숨결을 마중하러 다시 길을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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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년퇴임 후 KOICA해외봉사활동. 현재는 봉사활동경험과 배낭여행 강연가로 활동 중입니다. 77세의 나이에도 배낭을 메고 세상으로 나가는 '백발의 보헤미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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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약속을 지키려 아내의 기일마다 짐을 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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