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4년 12월 3일 '12.3내란 사태' 당시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직후 여의도 국회에 투입된 무장 군인들.
연합뉴스/로이터
2024년 12월 3일 위헌적인 비상계엄이 있었던 그날, 셋째 외삼촌의 기억이 다시 떠올랐다. 권력자의 횡포에 의해 산산조각 나 버린 한 인간의 삶과 사랑. 나에게도 당신에게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
몸에 전기가 일어났다. 비상계엄을 선포하는 윤석열의 얼굴에 전두환이 오버랩되었다. 미처 국회의사당으로 달려가지도 못했던 그 밤, 몸을 웅크린 채 공포와 분노에 떨어야 했다. '5·18과 같은 상황이 벌어지다니. 이건 전쟁이야. 막아야 해, 막아야 해...' 윤석열의 비상계엄은 그렇게 나를, 우리를 1980년대 한복판으로 다시 이동시켰다.
돌아보면 2025년 4월 4일, 윤석열 탄핵이 선고되기 전까지 모든 일상은 살얼음판을 걷는 것과 같았다. 만약 그들의 음모가 성공했다면? 노상원 수첩 속의 플랜이 실현되었다면? 한 번도 상상해 본 적 없는 디스토피아가 떠올랐고, 도무지 시를 쓸 수 없었고, 밥을 잘 넘길 수 없었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노상원의 수첩 속 '수집소'인 오음리, 현리, 화천, 양구, 인제 등은 전두환 신군부가 운영했던 삼청교육대 소재지였다. 추미애 윤석열내란진상조사단장의 말처럼 내란 세력은 국민을 반국가 세력으로 임의로 분류하고, 장기 구금할 소련의 굴라그 같은 정치범 강제 노동수용소를 기획한 거였다.
만약 그들의 내란이 성공했다면 이명박근혜 정권 블랙리스트에 오른 예술인들도 어쩌면 오음리로, 양구로 끌려가 수용되었을지 모르겠다. 나 역시 그 당시 블랙리스트 작가로 낙인찍혔으니 어쩌면 굴라그에서 하루하루를 때우는 이반 데니소비치 슈호프가 되었을지도.
2026년 1월 13일, 내란 특별검사팀은 윤석열에게 사형을 구형했다. 그러나 2월 19일, 재판부는 1심에서 윤석열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지금은 또 2심의 향방에 모두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지만 판결의 무게가 어떠하든 내 마음 한편의 의심은 쉽게 가라앉지 않는다. 역사는 언제나 법정의 문장만으로 완결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의심은 불신이 아니라 기억의 다른 이름일 것이다. 나는 누군가를 미워하기 위해 의심하는 것이 아니다. 시간(역사)이 겹쳐질 때마다 떠오르는 얼굴을 잊지 않기 위해 의심한다. 기억하지 않은 역사는 되풀이되니까. 시간의 겹침 속에서 필연적으로 어떤 얼굴은 다시 떠오른다. 나는 그 얼굴을 외면할 수 없다. 그러니 아직은 안심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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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사형 구형... 가라앉지 않는 마음 한편의 의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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