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나는 우리 학교 재일조선학교는 일본으로부터는 핍박을, 한국으로부터는 소외를 받아왔다.
하나를 위한 교육
하지만 조선학교의 상징과도 같은 '치마저고리 교복'은 혐오 범죄의 표적이 되기도 했다. 90년대 후반부터, 일본 내 우익 세력의 반한 감정이 높아질 때마다 여학생들의 치마저고리를 칼로 긋는 '치마저고리 테러'가 빈번했다. 유키 씨가 고3 때는 그 정도가 심해 학교에서 아예 등하교용 교복을 따로 제작할 정도였다고 한다.
"아무 잘못도 없는 학생들이 단지 그 옷을 입었다고 공격을 받다니 분노가 치밀었죠. 초등학생 때는 길거리에서 지나가던 사람이 저한테 침을 뱉기도 했어요. 하지만 한편으로는 우리를 지켜주고 존중해 주는 일본인들도 많다는 걸 알았기에, 복수심보다는 우리가 해를 끼치는 존재가 아니라는 걸 행동으로 보여줘야겠다고 다짐하기도 했죠."
이렇게 상처로 남은 일들은 동시에 유키 씨에게 지켜야 할 뿌리에 대한 확신을 심어주기도 했다. 그녀는 남한과 북한이 서로 다른 두 개의 나라가 아니라고 말한다.
"남한도 북한도 모두 고향이라는 느낌이 있어요. 언젠가 꼭 통일이 되어 하나가 될 나라죠. 그래서 북한의 '고난의 행군' 시절에도, 우리 뿌리가 있는 나라니까 당연히 모두 나서서 성금을 보내고 지원을 했던 거죠."
그러나 그때 북한으로 보내진 그들의 마음은 의도대로 북한의 가난한 사람들에게 전해지지 않고 지도층에 의해 빼돌려졌단 사실이 알려져 크게 실망하기도 했다.
"그때도 그렇고, 납치 사건이나 핵 미사일 문제 등으로 북한에 크게 실망한 사람들도 많아요. 저도 그렇고요."
그러나 유키 씨는 북한 정부와 별개로 북한 사람들에 대한 연민이 크다.
"25년 전, 고3 때 평양으로 수학여행을 갔어요. 남한처럼 열려 있는 나라는 아니지만 오래도록 마음에 품고있던 '우리나라'라는 생각에 모두들 들떴죠. 그런데 기대와 달리 왜소하고 생기 없는 사람들을 보니 안타깝고 심지어 미안한 마음이 들더라고요. 가해국인 일본에 사는 우리 교포들의 처지도 기구하지만 자기 나라에 살면서도 굶주린 북한 사람들이 너무 불쌍해 보였어요. 그들을 위해 무언가 해야 한다고 느꼈지만 실제로 할 수 있는 일이 없어 무력했죠. 그렇게 힘든 데도 우리를 환영해주고 미소 지어주던 얼굴이 25년이 지난 지금도 너무 생생해요."
"결혼을 계기로 가족 모두 남한으로 귀화"
- 남한으로 귀화하게 된 계기는?
"더 넓은 세상을 보고 싶어 (한국인)남편을 만나기 전부터 이미 귀화를 고민하고 있었어요. 조선적으로는 여권을 만들 수가 없으니 외국에 한번 나가려면 엄청나게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하거든요. 북한은 일본 정부가 국가로 인정하지 않는 나라니까, 여권을 만들려면 일본이나 남한으로 귀화해야 했는데 그렇다면 당연히 남한이라고 생각했죠. 일본으로 귀화하겠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어요. 조선적을 포기한다니 1세들의 정신을 저버리는 것 같아 죄스러웠지만 엄마가 응원해 주셨어요. 그러다 결국 제 결혼을 계기로 가족 모두가 남한으로 귀화했죠."
유키 씨는 '신문장학생'으로 일본에 온 한국인 유학생과 당시 유행하던 믹시(한국의 싸이월드 같은 일본의 초기 SNS)를 통해 만나 연애와 결혼을 하고 일본에 살다가 한국으로 건너왔다. 한국에 조부모의 호적은 남아있었지만 일본에서 태어난 부모의 호적이 존재하지 않았다. 유키 씨가 그 조부모의 자손이라는 걸 증명하는 것보다, 부모님이 먼저 조부모의 호적을 따라 귀화를 한 후 유키 씨도 자연스레 따라오는 형식이 훨씬 간단했기 때문에 결혼을 계기로 유키 씨의 가족은 모두 대한민국 국민이 되었다.
- 한국의 첫인상은?
"아, 여기가 진짜 내 나라구나 하는 안도감이 있었어요. 하지만 동시에 문화 충격도 컸죠(웃음). 일본보다 훨씬 자유롭고 활기차 보였는데, 막상 살아보니 생각보다 보수적이고 남의 시선을 많이 신경 써야 하더라고요. 가족 간의 관계도 일본보다 훨씬 끈끈하면서 허물이 없다고 할까, 간섭이 심하다고 할까(웃음). 겨울이면 다 똑같은 검은색 롱패딩을 입고 다니는 것도 개성을 중시하는 일본이랑 다르다 싶었고요."
만 10세, 4세 아이를 키우는 유키 씨는 종종 한국 엄마들의 발빠름을 따라가지 못해 당황하기도 한다. 서툰 한국어 때문에 알림장의 내용을 놓치거나 준비물을 빠트리는 일도 잦았다. 학부모 단톡방에서 소외감을 느끼거나, 일본에서 와서 잘 모를 거라는 배려 섞인 시선이 서운하게 다가오기도 한다. 아이들로 이어진 관계를 제외하면 한국인 친구도 아직 사귀지 못했다.
조부모의 조국, 있어야 할 곳으로 돌아왔지만 어쩐지 또다시 이방인이 된 느낌이었다.
"서운한 마음도 있었어요 처음엔. '저 일본사람 아니에요, 교포예요'라고 하면 '한국계 일본인 아니야?'라고 되묻는 사람들이 정말 많거든요. 그 차이를 설명하기가 참 힘들더라고요. 우리의 아픔을 왜 몰라주나 싶어 붙잡고 가르치려고도 했지만 이제는 이해하게 됐어요. 안 배워서 모르는 거니까요. 요즘엔 그냥 편하게 '일본인이에요'하고 말하기도 해요. 하지만 한편으론 가해국인 일본에서 꿋꿋이 정체성을 지켜온 우리들에 대해 꼭 알아줬으면 하는 마음도 있죠."
유키 씨는 의외로 신앙에서 길을 찾았다. 그저 남편을 따라갔던 교회에서 무심히 목사님의 설교를 듣다가 영감을 얻었다.
"하나님이 나를 이렇게 태어나게 한 이유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교포로 태어난 게 제 사명이라는 생각이요. 고3 수학여행 때 평양에서 만났던 그 아이들, 통일이 되면 그 아이들에게 사랑을 전하기 위해 하나님이 나를 이렇게 준비시켰구나, 라는 확신이 생겼어요. 그래서 지금은 그들을 위해 기도하며 성경공부도 하고 있죠."
'유끼마미'라는 유튜브 채널도 운영 중이다.
"한국에서의 육아 일상을 브이로그로 담고 있어요. 영상을 통해 제 이야기를 꺼내 놓다 보니 저와 같은 한일 부부나 재일교포 그리고 우리 역사를 궁금해하는 한국 분들과 연결되는 느낌을 받아요."
"아이들에게 재일조선인이라는 정체성 강요하고 싶지 않아"

▲ 두 아이들, 우리 아이와 유키 씨의 둘째
아이귤
아이들의 정체성에 관해 묻자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아이들에게 재일조선인이라는 정체성을 강요하고 싶지는 않아요. 하지만 제 조부모님과 부모님 외에도 많은 분들이 일본 사회의 차별 속에서 어떻게 우리를 지켜왔는지는 꼭 전해주고 싶어요. 숨기지 않고 당당하게요. 제가 조선학교에서 비슷한 처지의 친구들과 공감하며 힘을 얻었듯, 우리 아이들도 자신의 뿌리를 정확히 알고 당당하게 세상을 살아갔으면 좋겠어요."
<디아스포라 기행>의 서문에 저자 서경식은 "디아스포라에게 '조국'은 향수 속에 있는 것이 아니다. '조국'이란 경계에 둘러싸인 영역이 아니다. '혈통'과 '문화'의 연속성이라는 관념으로 굳어버린 공동체가 아니다. 그것은 식민지배와 인종차별이 강요하는 모든 부조리가 일어나서는 안 되는 곳을 의미한다. 우리 디아스포라들은 근대 국민국가를 넘어선 저편에서 '진정한 조국'을 찾고 있는 것이다"라고 썼다.
차별과 배제의 시선을 견디며 자신의 정체성을 당당히 긍정하는 유키 씨야말로 마음속에 이미 국민국가의 개념과 물리적 국경을 넘어선 '진정한 조국'을 완성한 것이 아닐까. 책만 읽었을 때는 막연했던 생각이 유키 씨와의 대화를 통해 한층 현실적으로 다가왔다. 절반은 한국인의 유전자를 가지고 독일에서 자라날 내 아이 역시 유키 씨처럼 그 내면에 든든하고 굳건한 자신만의 '진정한 조국'을 품을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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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는 없는 나라 '조선'의 국민으로 살다가 한국으로 귀화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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