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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남매가 결혼할 때 엄마에게 해드린 진상품, 승자는?

금팔찌, 밍크코트, 양문형 냉장고... 꺼내 입고, 꺼내 쓰고, 꺼내 보며 행복해 하던 엄마의 시간

등록 2026.02.08 11:49수정 2026.02.09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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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값 사상 최고치 뉴스에 '집에 있는 금 생각'이 간절합니다. 없으면 아쉽고 있으면 뿌듯하고. 저마다 갖고 있는 금 이야기를 들어봅니다.[기자말]
'금이 미쳤네.'

요즘 우리 부부의 대화는 금으로 시작해서 금으로 끝난다. 금값이 1돈에 100만 원 시대를 열었다. 증권 계좌에 조금 있는 금 현물 수익률을 보며 잠들 때까지 이야기꽃을 피운다. 수익률 260%가 넘었으니 그야말로 '금실' 좋은 부부가 된 셈이다.


5년 전 생일날, 남편이 선물로 무엇을 사줄까 물었다. 마땅히 갖고 싶은 것은 없었다. 당시 나는 오십을 목전에 두고 있었기에 장자, 공자, 맹자를 외치며 내면의 삶에 충실히 하고자 애쓰던 시기였다. 그렇다고 준다는 선물까지 마다할 이유는 없었다. 그냥 현금으로 100만 원만 달라고 했다.

주식을 살까 하다, 뭐에 홀렸는지 금 현물 계좌를 만들었다. '금 99.99'라고 적힌 상품을 뭔지도 모른 채 매수했다. 추가 매수도 했으나 간이 워낙 콩알만 한지라, 몇십만 원만 벌어도 '대박'을 외치며 냉큼 팔고 나왔다. 다만 남편과의 추억은 남기고 싶어, 원금 100만 원만은 남겨두었다. 그런데 금값이 점점 더 치솟는 것이다.

문득, 5년 전의 나보다 훨씬 앞서 '금의 가치'를 꿰뚫어 보았던 한 사람이 떠올랐다. 바로 나의 엄마다. 잠시 추억의 시계를 26년 전으로 돌려보자.

'금팔찌 10돈, 휘메일 밍크코트 한 벌, 820리터 양문형 냉장고.'

우리 집 삼 남매가 결혼하기 전, 엄마에게 바친 진상품 목록이다. 짧게는 스물일곱 해, 길게는 서른일곱 해. 금이야 옥이야 키워 준 부모님에 대한, 일종의 감사 선물이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금팔찌 10돈은 큰딸인 내가 바친 진상품이다.


이정도면 거의 재테크의 귀재, 금손을 가진 거부처럼 보이겠지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으니, 오해는 마시라. 큰딸 돌반지를 1돈에 5만 원씩 팔아 빚을 갚은 재테크 부진아에 가깝다.

1호가 결혼할 땐 '금'


 당시 금 1돈이 5만 원, 10돈이면 무스탕 가격과 똑같았다.
당시 금 1돈이 5만 원, 10돈이면 무스탕 가격과 똑같았다. gabriellasofficialphotography on Unsplash

사실 나는 그 무렵 유행하던 무스탕을 사드리고 싶었다. 엄마에게는 없는 무스탕이, 내게는 있었기 때문이다. 예비 시어머니는 아직 결혼 날짜도 잡기 전이었는데, 백화점에서 50만 원짜리 무스탕을 사주셨다. 깻잎 농사와 고추 농사로 일 년을 버티던 시댁에도, 월급 120만 원 중 100만 원을 저축하던 나에게도 50만 원짜리 무스탕은 궁극의 사치품이나 다름없었다.

어쨌든 시어머니의 무스탕 환심 전략은 통했다. 결혼은 1년이나 앞당겨졌고, 나는 제 발로 시댁에 들어가 살겠다는 결정을 했다. 한 계절을 잘 입고 다녔다. 하지만 입을 때마다 엄마에게 미안했다. 엄마의 장롱에 털이라고는 보푸라기가 잔뜩 인 스웨터 뿐이었다. 그래서 시집 가기 전에 꼭 무스탕을 사드리고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엄마의 생각은 달랐다.

"딸, 무스탕 말고 금팔찌 10돈 해주면 안 될까?"
"왜? 무스탕 입고 싶어 했잖아."

"무스탕은 한 철이고, 금은 평생 기념할 수 있잖아."
"알았어, 엄마."

엄마가 받고 싶다는데 고집을 부릴 이유는 없었다. 당시 금 1돈이 5만 원, 10돈이면 무스탕 가격과 똑같았다. 다만 햇빛 한 번 못 보고 장롱 속에 틀어박혀 누렇게 늙어갈 금 10돈이 조금 안쓰러울 뿐이었다.

2호가 결혼할 땐 '밍크코트'

3년 후, 여동생이 시집갈 나이가 되었다. 엄마 말대로 무스탕의 시대는 가고, 밍크코트의 시대가 왔다. 나보다 통이 크던 동생은 엄마에게 밍크코트를 사드리겠다고 했다. 동생 말로는 당시, 엄마의 밍크코트 타령이 엄마의 애창곡 '창부타령'보다 구슬펐다고 했다(엄마는 아니라고 펄쩍 뛰심).

자, 여기서부터 엄마의 계산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큰딸에게 적용했던 냉철함이라면 240만 원짜리 밍크코트가 아니라 금 50돈을 사달라고 했을 텐데, 밍크코트만큼은 정말 갖고 싶었던 모양이다. 모 백화점의 40퍼센트 바겐세일을 노려, 400만 원짜리를 240만 원에 사고야 만다.

밍크코트는 그해 겨울, 엄마의 외출을 조금 더 위풍당당하게 만들어주었다. 삼한사온의 날씨 중 사온에 해당하는 날까지도 밍크코트를 걸치고 나가는 과잉 애정을 선보였다.

3호가 결혼할 땐 '양문형 냉장고'

이제 남은 진상품은 딱 하나, 820리터 양문형 냉장고다. 남동생이 결혼할 무렵, 금값의 가파른 상승세가 시작되었다. 금 한 돈에 18만 원 시대가 열린 것이다. 내가 시집갈 때보다 금 가격이 네 배 가까이 뛰었다. 엄마의 계산법은 다시 한번 흔들린다. 그때의 금값이 상투(최고점)라 여긴 것이다. 마침 냉장고도 맛이 가고 있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200만 원짜리 양문형 냉장고였다.

금 1돈 가격이 100만 원을 돌파했다는 뉴스가 연일 쏟아지는 2026년 요즘, 이 세 진상품의 현재 가치는 얼마나 변했을까?

당근 앱을 켰다. 친정집에 있는 냉장고라 정확한 모델명까지는 알 수 없었지만, 비슷한 모양과 연식을 찾아보니 15만 원에서 30만 원까지 거래가 다양했다. 대충 그중 중간값이라 치면 최종 중고 감정가, 23만 원.

2003년 산 밍크코트는 어떤가. 이런 물건은 아예 당근에서 찾아볼 수조차 없다. 고로 중고 가격은 측정 불가다. 수선해야 입을까 말까 한 상태이니, 무료 나눔을 해도 선뜻 나설 사람이 없을 듯하다.

 (서울=연합뉴스) 임화영 기자 = 국제 금값이 사상 처음 온스당 5천500달러를 넘어선 29일 서울 종로구 한국금거래소 종로본점에 금 상품이 전시돼있다. 블룸버그 통신에 따르면 금 현물은 한국 시간 29일 오전 11시 온스당 5천542.53달러로 전날 종가(5천417.21달러)보다 약 2.3% 오른 수준에서 거래되고 있다. 2026.1.29
(서울=연합뉴스) 임화영 기자 = 국제 금값이 사상 처음 온스당 5천500달러를 넘어선 29일 서울 종로구 한국금거래소 종로본점에 금 상품이 전시돼있다. 블룸버그 통신에 따르면 금 현물은 한국 시간 29일 오전 11시 온스당 5천542.53달러로 전날 종가(5천417.21달러)보다 약 2.3% 오른 수준에서 거래되고 있다. 2026.1.29 연합뉴스

그렇다면 금 10돈은 어떻게 되었나. 1돈당 100만 원으로만 계산해도 무려 1천만 원이다. 금값이 최고가를 경신하며 요동치던 날, 내가 건넨 금 선물이 친정엄마의 입을 통해 다시 소환되었다.

"그때 내가 너한테 금으로 사달라고 한 게 얼마나 잘한 거냐."
"그렇지, 10돈이면 지금 천만 원쯤 되나?"

50만 원 선물이 1천만 원이나 되다니! 말해놓고도 너무 놀라서 여동생에게 전화를 걸었다. 평소에도 언니의 위엄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나는, 사심 반 농담 반으로 욕먹을 소리를 내뱉었다.

"나중에 결혼하기 전에 사드린 건 각자 유산으로 가져오자. 나는 금, 너는 밍크코트, 막내는 냉장고 어때?"
"언니, 미쳤구나."

여동생과 전화를 끊고 나서 엄마도, 나도 배꼽을 잡고 웃었다.

가치 환산이 불가한 엄마만의 진품명품

밍크코트를 사드렸던 여동생의 효심을 모를 리 없었다. 당시 동생은 쥐꼬리만 한 월급에서 매달 20만 원씩, 열 달 동안 카드값을 갚아나갔으니, 속이 얼마나 쓰렸겠는가. 아마도 동생은 농담인 줄 알면서도 금값이 미치더니 우리 언니까지 미쳤구나 싶었을 것이다.

친정집에는 냉장고 두 대만 나란히 있는 작은 방이 있다. 남동생이 결혼 전 쓰던 방이다. 남동생이 없어도 아들처럼 우람한 냉장고가 부모님의 삶을 신선하게 지키고 있으니 이 또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밍크코트가 0원이 되고, 냉장고가 고철 덩어리가 된다 해도 그것들의 가치는 치솟은 금과는 비교할 수 없이 소중하다. 그동안 꺼내 입고, 꺼내 쓰고, 꺼내 보며 행복해 하던 엄마의 시간과 각자 제 살림을 꾸리면서도 늘 부모님의 행복을 염려하던 자식의 시간이 녹아 있기 때문이다.

고로' 금팔찌 10돈, 휘메일 밍크코트 한 벌, 820리터 양문형 냉장고'는 가치 환산이 불가한 엄마만의 진품명품이다. 그나저나 이 미친 금값은 대체 언제까지 오를까. 곧 막냇동생의 둘째 딸 돌이다. 금 한 돈에 100만 원인 시대, 큰고모로서 돌 반지 한 돈은 해줘야 할 텐데… 정말 큰일이다. 증권사 앱을 열어본다.

'와, 오늘(2월 4일)도 금값은 정말 미쳤구나.'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금 #금현물 #엄마 #진품명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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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직 광고 홍보인. 지금은 도서관 노동자가 되었습니다. 감동적인 글로 많은 사람들과 소통하고 싶습니다. 2025 경기히든작가 당선, 책과 사람 사이의 이야기 '삶은 도서관'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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