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명 대통령이2025년 12월 5일 충남 천안시 한국기술교육대학교에서 열린 '충남의 마음을 듣다' 타운홀미팅에서 참석자들의 발언권 요청을 받고 있다.
연합뉴스
복지가 잘된 나라는 어디에 살든 사는 곳이 사람의 운명이나 성공, 계층, 지위를 결정하지 않는 사회다. 복지국가로 대표적인 노르딕 나라들은 툰드라 등 살기에 부적절해 거주하지 않는 지역이 있으나, 어느 지역에 살든 교육, 의료, 돌봄, 주거 등 일상적 복지를 전국 어디나 동등하게 보장받는다. 북유럽은 물론이고 영국이나 캐나다 등 NHS(National Health Service)가 운영되는 나라들은 전국 어디서나 동일한 무상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하지만 한국 국민은 주요 사회서비스를 '전국 어디에서나 고르게 보장' 받지는 못한다. 비수도권, 특히 농어촌 지역은 같은 건강보험료와 장기요양보험료를 내지만 민간의료기관이 절대적으로 부족하고, 보건소마저 의사를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라 차별적 처우를 강요받는다. 민간 공급에 의한 의료서비스의 낮은 공공재적 특성(2025년 복지부 발표 한국의 공공 병상 비율은 9.7%로 OECD 최하위 수준)은 서울 및 수도권 의료시설의 집중과 농어촌 지역의 의료 사막화로 구체화되고 있다.
교육은 어떠한가? OECD 국가 최고의 사교육비 비율은 특히 부모 역량이 특정 공간으로 집중되면서 보편적 수혜의 공교육 역할이 무력화되고 있다. '4세 입시'로 회자되는 '대치동 사교육' 인프라(강남 3구 영어학원은 서울 전체 25% 이상) 집중 등은 교육의 격차를 확대하고 있다. 전국의 비수도권, 특히 중소도시, 농어촌 등 높은 인구 유출지역은 보육과 기초교육 시설의 폐원, 폐교 속출 사태에도 정부와 지자체의 대책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적어도 복지국가를 흉내 내는 나라라면 갖춰야 할 대표적 공공재인 의료와 교육 등 주요 사회보장 및 서비스에서 한국은 지역균형적 공적 관리 및 대응능력이 취약하고, 해결을 위한 공공적 담론 및 의제 역시 주로 가진 사람들에게 '인지적으로 포획'(Stiglitz가 <불평등의 대가>에서 쓴 흥미로운 개념)돼 있어서 이에 대한 정책적 해결 노력이 미흡한 수준이다. 예를 들면 특히 교육, 입시, 자녀 취업 등에서 등장하는 '부모 찬스'같은 경우 보수뿐 아니라 진보진영 정치인들에게도 여지없이 드러나는 것만 보더라도 공적 보장체계의 허술함과 사회 불평등이 이념의 문제가 아니라 심각한 계급적 현실임을 환기시킨다.
공공재 및 공적 사회보장의 공간적 차별화는 수도권과 비수도권 간 격차란 모습에 의해 예각적으로 나타나는데 이는 정의롭지 못한 공간적 집중화에 따른 결과다. 한국의 산업화는 그레고리 헨더슨(Gregory Henderson)의 주장처럼 정점을 향해 소용돌이치는 서울 중심의 중앙집권화된 권력을 활용하면서 부와 가치의 수도권 일극 집중을 강화시켰다.
이렇게 한번 형성된 독점지대에 따른 수도권 집중은 새로운 부의 창출이나 비수도권으로의 가치 이전 없이 입지적 이익을 비정상적으로 확대시키면서 하나의 국가에 살지만 사실상 두 개의 나라라는 '이중국가(dual state)'를 재생산했다. 한국의 수도권 집중은 브렛 크리스토퍼스(Brett Christophers)가 말하는 이러한 지대 자본주의(Rentier Capitalism)라는 특성으로 성장에 더 많은 비용을 수반시키고, 역량 감소, 불평등한 자원 배분, 소득 불균형 심화 등의 문제점을 발생시켰으며, 미래 기회까지 박탈하는 상황까지 몰아갔다.
한국의 5대 재벌이나 상위 10대 기업은 물론이고, 1000대 기업, 수많은 기업가들의 천문학적 부동산 자산 보유 자체가 생산보다는 불로소득, 지대추구의 비생산적 부에 이르는 통로인 것은 뻔한 사실이 되고 있다. 전국에서 몰려드는 강남 중심의 '똘똘한 한 채' 열풍은 소득 격차보다 심각한 자산 격차로 이어지게 하고 공공주택과 공적 주거보장의 정책 대응력을 허술하게 만들었다. 이제는 공간적으로 차별없이 누릴 수 있는 보편적 기본생활권이 필요하다.
'보편적 기본 서비스'의 대두
현대 복지국가 형성 및 발전에서 중요한 가치 중 하나는 '국가 최소 기준(National Minimum Standards)'으로 국가가 보장해야 할 최소한의 질과 보장의 기준이다. 근대 복지정책 발전에 중요한 기여를 한 영국의 시드니(Sidney)와 비어트리스 웹(Beatrice Webb) 부부가 <산업 민주주의>(1897년)에서 산업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해 국가가 모든 노동자에게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최소한의 임금, 건강, 교육, 레저 시간을 보장해야 한다고 '국가 최소' 개념을 처음 제시했다.
이후 베버리지 보고서와 정책 및 행정에 수용되면서 시민의 존엄과 안전을 위해 국가가 보편적으로 보장해야 할 '국가 최소 기준'으로 구체화돼 베버리지형 복지국가의 대명사로 발전한다. 토이 블레어 정부 이후부터는 이 기준이 돌봄기준법(Care Standards Act)처럼 추상적 가치가 아닌 사회서비스의 질, 안전, 권리 보호에 관한 국가의 구체적 기준으로 발전하기도 했다.
20세기 베버리지형 복지국가는 이제 낡고 망가진 상태가 되어 버렸다. 신자유주의 이후 주거·교통·교육·에너지의 시장화가 심화됐고, 필수 서비스의 가격이 급등해, 중산층마저 생활 불안이 확대되어 이제 빈곤은 더 이상 가난한 사람만의 문제가 아니다. 현금 중심의 복지모델로는 한계가 있고 다양한 사회지출의 증가에도 불평등은 감소하지 않았으며, 복지 수혜자에게 낙인을 부여하고, 소수를 걸러내는 데 엄청난 행정비용을 지출하게 됐다. 대안으로 모색된 보편적 기본소득의 주장 역시 현금이 임대료나 물가 상승으로 흡수되는 상황과 돌봄·의료·교육 문제의 대체재로 작용하는 데 한계가 있어 더 이상 설득력을 가지기 어렵게 됐다.
이제 '보편적 기본 서비스'(Universal Basic Services, UBS)가 중요하게 대두됐다. 여기서 '보편적'이란 소득 중심의 시장 접근이 아니라 모든 시민에게, 소득과 무관하게, 인간다운 삶에 필수적인 서비스들을 공공이 보장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보편적 복지는 선별적 복지의 반대이며, 모든 시민이 동일한 권리로 접근할 수 있다는 것이다. 얼마를 버는지, 일을 하고 있는지, 세금을 냈는지, 취약계층인지 소득·자산·노동 여부와 무관하며 단지 시민이라는 사실 자체가 자격이 된다.
보편적 복지는 모두가 함께 유지하는 사회적 인프라로 낙인을 제거하고 사회적 연대를 가능하게 하여 효율성을 넘어선 정치적·사회적 신뢰의 장치로 작동된다. '기본(Basic)'이란 것은 최저나 최소의 단순한 생존선이 아니라 '사회적 기능 수행 기준'이 핵심적 의미를 갖는다. '굶지 않는 수준'이 아닌 필요한 사회적 기능을 수행하기 위해 이동하고, 교육·정보에 접근하며, 최적의 건강을 유지하고, 주거도 안정돼야 한다는 뜻이다. '기본 서비스'란 가격·수익성 논리로 배분될 경우 불평등이 구조적으로 확대돼 '시장에 맡기기엔 너무 중요한 영역'이다.
의료, 교육, 주거, 교통, 돌봄, 에너지, 디지털 접근 등이 대표적인 기본 서비스 영역이다. 이들은 병원이 없으면 의료비가 있어도 소용없고, 교통망이 없으면 이동비가 있어도 접근이 불가능하다는 면에서 현금으로는 대체 불가능한 필요인데 공공 서비스 자체의 존재가 '기본'이 되는 현대 복지의 현실을 잘 반영하고 있다. 영국 진보 싱크탱크인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대학 내 글로벌 번영 연구소(Institute for Global Prosperity)의 Anna Coote, Andrew Percy 등이 대표적인 보편적 기본 서비스 이론가이기도 하다.
보편적 기본 서비스의 정책화는 비록 UBS라 표현하지 않더라도 북유럽 복지국가들의 무상 교육, 보편 의료, 공공 돌봄, 교통·주거 공공성에서 오래전 등장하였고, 프랑스의 보편적 의료보장(PUMA : Protection Universelle Maladie), 공공주택(HLM : Habitation à Loyer Modéré), 교통·에너지 보조 정책은 서비스 기반의 시민권 개념을 강화한 사례라고 봐야 할 것이다.
사회보험 중심의 복지국가인 독일도 의료·교육·교통의 강한 공공 규제, 에너지·주거 공공성을 강화하고 있고, 특히 2022년 '9유로 티켓' 시범 사업에 이어 '독일 티켓(Deutschlandticket)'은 월 49유로로 독일 전역의 모든 근거리 기반의 대중교통을 무제한 이용하도록 하는 생활권 강화 정책으로 볼 수 있다. 스페인이나 포르투갈 역시 최근 공공주거 확대, 에너지 빈곤 대응 정책, 청년·노인 중심의 교통 무상화 실험을 하고 있어서 보편적 기본 서비스 중심의 새로운 복지국가 접근은 주요 추세로 확산되고 있다.
UBS는 단순한 복지정책이 아니라 시민의 삶을 시장에서 해방시키는 최소한의 공공 영역을 재구성하는 프로젝트로 봐야 한다. 필자는 이상의 내용을 '보편적 기본 생활권(生活權)'이라 명명하고 싶다. 보편성은 국민이 누려야 할 현대적 시민권이며, 기본성은 국민이 당연히 가져야 할 사회적 기능의 수행 가능성이고, 생활권은 현금뿐 아니라 지역사회 내 주민으로 생활하면서 누려야 하는 서비스의 이용 권한이다. 서비스는 사회보장의 협의적 영역으로 국한될 수 있어 폭넓은 생활보장이자 권리의 개념으로 생활권의 개념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보편적 기본 생활권이란 모든 개인이 품위 있는 생활을 누리고, 이를 위한 사회적 기능을 수행하도록 하며, 서비스 등 중요한 생활영역에 접근 및 이용이 가능한 권리다. 이 모든 것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사회 전반에 걸쳐 시민의 삶과 직결된 보편적 기본 공공재를 확대해야 하고 생활권(生活圈) 단위별로 보편적 기본 서비스를 제공하는 새로운 복지레짐(regime)이 필요하다.
보편적 기본 생활권이 성공하려면
과거 기본소득을 주로 주장한 이재명 대통령의 정부가 '기본이 튼튼한 사회'라는 국정목표(목표 4)를 제시하고, 4차 산업혁명과 사회적 불평등 심화에 대응해 소득, 주거, 의료, 교육 등 필수적인 삶의 조건을 국가가 보장하는 보편적 복지 국가 비전을 천명하며, 주요 핵심영역의 정책을 통해 생애 주기별 소득 보장과 사회안전망을 구축하겠다는 의지도 보편적 기본 생활권의 맥락과 맞닿아 있다.
보편적 기본 생활권은 공간의 체계와 특성을 잘 활용하고 운영해야만 성공적 보장 가능성이 높다. 이른바 공간 기반 정책(Area Based Policy) 또는 장소 기반 정책(Place Based Policy)으로 문제 해결 지향과 지역의 특성을 활용하는 전략이다. 예를 들면 15분 내 도보 및 10분 내 차량 접근이 가능한 근린생활권(보육시설 및 초등학교), 도보 30분 및 차량 15분의 행정동 중심의 소생활권(초·중학교), 대중교통 10~20분의 중생활권(인구 5~10만, 중·고등학교), 시·군·구와 같은 완결된 공간단위로 대생활권(인구 20~30만, 대중교통 및 차량 30~60분), 대도시 및 주변 통근권역을 포괄하는 광역권(인구 50만 내외), 대도시권 간의 연계인 초광역권(인구 100만 이상) 등 6개로 나눌 수 있다. 필요에 따라 광역권은 17개 시도로, 초광역권은 대도시권 간의 통합권역으로 '5극 3특'에서 '5극'에 적용할 수 있는 등 권역 구분의 목표와 기준에 의해 달라질 수는 있다.
여기서 생활권(living area)은 주민들이 일상생활을 영위하는 공간적 범위로 통근·통합·쇼핑·여가 등 일상 활동이 일정 시간 및 거리 범위 내에서 이루어지는 공간적 권역이며, 소생활권 및 대생활권의 읍면동 및 시군구처럼 행정권역과 일치할 수도 있지만 불일치하기도 한다. 각 생활권역은 지향하는 목표와 핵심기능이 있다. 근린생활권의 목표는 인간다운 삶의 기본조건 충족이며, 소생활권은 생활의 안정성, 중생활권은 생활의 충분성, 대생활권은 삶의 다양한 선택 가능성, 광역생활권은 기회의 평등, 초광역권은 경제성장 및 번영, 국가경쟁력을 각각 지향한다.
생활권역별 핵심기능을 보면 근린생활권은 돌봄, 건강, 일상이동, 접근성, 사회적 관계 참여, 기초 생활 유지에 초점을 두고, 소생활권은 돌봄, 기초의료, 일상 이동, 중생활권은 교육, 지역의료, 문화·체육, 대생활권은 통근·통학, 상급 의료, 광역 문화, 광역생활권은 광역 교통, 산업·대학·의료 네트워크, 초광역생활권은 초광역 교통망, 산업·과학·기술·연구개발의 시너지, 고급인재 육성 등과 각각 연계된다.
주민의 생활권을 충족하기 위해 공간 단위를 활용하는 것은 새로운 복지국가를 적극적으로 모색하는 대부분의 나라에서 진화 발전하고 있다. 일본의 장기요양서비스는 중학교 학군 범위(30분 내 접근 가능, 인구 1~2만 명)를 중심으로 지역포괄케어 시스템 하에 운영되고 있으며 이를 관장할 지역포괄지원센터를 두고 있다. 이는 우리의 시·군·구에 해당하는 시·정·촌 단위가 중심이 되고 있다(인구가 많은 경우 1개의 시·정·촌에 복수의 지역포괄지원센터가 운영됨). 보다 전문적인 의료서비스는 약 40만명 단위의 제2차 의료권과 긴밀히 연계된다.
영국은 돌봄의 경우 기초정부, 의료는 국가의 책임이지만 국가의 총괄적 보장하에 전국 어디서나 고르게 생활권 기반의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예를 들면 1차 진료를 담당하는 동네의사(General Practitioner : GP) 중심의 국가의료체계는 전국 어디서 무상으로 운영된다. 물론 대처 수상 이후 영국 NHS는 재정 및 인력 운영 취약, 시설 노후, 돌봄 및 정신건강 대처 한계 등 여러 문제도 함께 안고 있다. 2020년 재선에 성공한 안 이달고(Anne Hidalgo) 파리시장이 내건 '15분 생활권'은 근린 중심의 생활기능을 도보 및 자전거로 접근이 가능하겠다는 정책이며 이 같은 'N분' 동네 및 도시 전략은 전 세계 주요 도시에서 빠른 속도로 확산되고 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 시기부터 미국 연방정부의 노인 및 장애인 복지국은 지역사회생활국(Administration for Community Living, ACL) 산하에 두고 있는데, 그 이유는 복지의 핵심이 동네의 삶의 질에 달려 있으며, 특히 노인과 장애인을 위한 돌봄, 의료·요양, 복지서비스가 동네의 삶의 질에 핵심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나아가 동네 단위에서 생활욕구를 충족시킬 수 없으면 보다 높은 광역단위에서 담당해야 한다.
예를 들면 북유럽은 기초지방정부 중심의 행정체계였으나, 핀란드는 2022년 보건의료, 사회복지, 응급구조의 책임을 질 광역 단위의 21개 복지서비스 자치주(hyvinvointialue)를 신설 운영하고 있다. 마치 우리의 경우 읍면동 단위의 돌봄이 충족돼야 하지만 노인, 장애인의 공공 재활병원은 중생활권 이상에서나 가능한 시설이기 때문에 공간 단위를 고려한 보편적 기본 생활기능 충족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모든 지역을 위한 보편적 기본 생활권 보장(Universal Basic Living Guarantee for All Regions)'은 지역균형발전정책의 새로운 전환을 의미한다. 그동안 물리적 투자와 개발, 성장 중심과 산업 경쟁력 등을 중심으로 지역문제에 접근했으나 주민의 일상 생활의 질(접근성·연결성)을 개선되지 못했으며 생활 격차가 오히려 확대되고 있다.
시도 행정통합에 필요한 것
이재명 정부가 표방하는 국민주권이 실제 주민의 생활 주권이란 관점에서 접근하려면 어떤 생활권(생활기능 및 욕구)을 생활권 단위나 단계별로 어떻게 보장할 것인지 비전과 전략을 구체화해야 한다. 그리고 소득, 고용, 주거, 교육, 건강, 사회안전, 생활여건(교통 등) 등 주요 영역의 지표를 반영한 소지역 단위의 복합진단지수를 마련하여 영국 등에서 실시하고 있는 것처럼 취약 정도(결핍도 상위 5%, 10%, 20%지역)에 따라 핵심 영역 중 더 취약한 분야를 중심으로 우선적인 정책적 배려를 해야 한다.
예를 들면 햇빛기본소득처럼 태양광 및 풍력이나 재생에너지 단지 조성, 탄소중립의 패시브 주거단지, 스마트 커뮤니티, 참여형 일자리사업 등을 더 취약한 지역의 결핍유형에 맞도록 패키지화하여 우선적으로 제공한다면 생활권 보장의 균형발전의 성과를 촉진할 수 있을 것이다.
보편적 기본 생활권 보장은 더불어 신(新) 복지국가 모형이다. 구(舊) 복지국가는 국민단위의 추상성, 중앙집중적 전달체계, 지역격차 방치 등으로 우리나라 같이 급속한 인구 감소 및 초고령화, 지방소멸, 메가리전시대에 잘 작동하지 않고 있다. 복지는 추상적 사람이 아닌 삶이 이루어지는 장소에서 실현된다. 새로운 복지는 국민이 아닌 시민, 추상적 시민이 아닌 생활권을 가진 주민, 형식적 권리가 아닌 공간적으로 실현되는 실제적 권리에 주목하게 된다.
새로운 모형은 근린생활권 기반의 복지국가의 3대 전환을 의미한다. 첫째는 국민권에서 생활권적 시민권이며, 주소지가 아닌 생활 접근성 기준에 의한 권리 단위의 전환이다. 둘째는 중앙-지방의 수직적 관계가 아니라 근린 중심의 수평적 네트워크이며, 보건의료·복지·주거·돌봄이 통합되는 전달체계의 전환이다. 셋째는 사업별 보조금 중심에서 생활권 단위 묶음의 재정 논리의 전환이다. 도시와 농촌, 결핍의 유형에 따른 맞춤형 사업이 전개되려면 시군구, 읍면동의 특성에 맞게 생활권을 보장하는 패키지 구성을 뒷받침하는 재정이 지원되어야 한다.
보편적 기본 생활권의 핵심 실현 단위가 근린이나 소생활권이라 하더라도 기능을 보완하거나 전문화의 역할을 하는 중·대생활권 역시 매우 중요하다. 경제와 산업, 지속가능발전의 과학기술·연구개발·고급인재양성의 광역권과 초광역권도 재분배, 격차 조정, 전략적 투자에 핵심적 역할을 하게 된다. 특히 우리나라와 같이 수도권 블랙홀이 강하게 작동하는 사회에서 5극 3특과 같은 초광역권은 다극 분산의 균형발전에 핵심적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최근에 광역시·도 간 행정통합 논의가 활발하며 이재명 대통령의 적극적 수용 및 지원 의사 천명으로 더욱 핵심적 정치 이슈로 부각됐다. 시도 간 통합을 통해 실질적 메가리전을 촉진시킬 강력한 행정 및 정책적 집행력이 가능하고, 초광역 경제권 및 생활권의 통합적이고 효율적 추진을 용이하게 할 것으로 기대가 된다. 공공 서비스의 단위비용 감소, 규모의 경제 효과, 기반시설 및 교통·토지 이용의 통합성, 재정 여건의 개선, 일관된 공간 계획의 용이성 등을 통합에 따른 강점으로 꼽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광역시와 광역도는 행정적 수요의 차이가 크며, 지역 간 이해관계의 충돌, 지역 정체성과 대표성과 관련한 정치적 갈등도 예상된다. 그래서 주민투표를 통한다면 최소 70% 이상의 지지가 있어야 다소 안정적인 추진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핵심적으로 고려해야 할 사항을 들자면 메가리전은 경제적 성장과 국가적 경쟁력이 중요 목표이나, 보편적 기본 생활권의 관점에서 보면 근린 및 소생활권은 복지와 기초적 생활욕구가 핵심이라 시도통합에 따른 메가리전 목표에서 벗어나 있는 취약지역에 대한 대응 및 지원을 소홀하게 다룰 가능성이 크다.
유럽과 미국, 일본 등 주요 국가에서 메가리전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개별적인 광역지방정부 간 통합에 의한 단일의 슈퍼 초광역정부를 만들어 대응하는 사례는 프랑스의 레지옹(Region) 체제를 국가주도로 추진한 것 외에는 흔하지 않으며, 대부분은 다양한 형태의 기능 간 연합과 협의로 대처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국내에서 초광역화 사례로 많이 드는 2010년대 이후 영국의 통합지방정부(Combined Authority) 사례도 런던을 제외하면 우리나라의 광역 정부 같은 것이 아예 없었기 때문에(대처정부 때 폐지) 복원한 것이다. 이는 현재 우리나라 광역시도보다 권한이 적어 이것이 우리의 모델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
독일의 메가리전에 해당하는 11개 대도시 지역(Metropolitan Region)도 Stuttgart 권역(Verband Region Stuttgart)을 제외하면 주로 주정부 간 기능 중심의 협의체 성격을 가지며, 시도 통합의 강요나 일률적 방식이 아닌 각 권역의 특성에 맞게 매우 다양하게 운영되고 있다. 네덜란드의 유명한 메가리전인 란스타드 권역은 어떤 분야이든 아예 초광역적 협의기구조차 없어도 암스테르담, 헤이스, 유트레히트 등 4개 대도시 경제주체 간 자율적 협력으로 유럽의 3대 글로벌 물류 거점의 위상과 역할을 갖고 있다. 따라서 도시화 및 국내외적 다면적 네트워크가 필요한 시기에 필수적인 흐름인 메가리전의 접근방식은 행정통합이 일반적인 것이 아니라 매우 특수한 접근이며, 오히려 기능적 협의 및 연합이 보편적이라 할 수 있다.
제대로 된 지역균형발전 정책을 기대하며
시도통합이 5극 3특의 강력한 기회로 작용할 수 있지만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치인들의 정치 논리 연장선 속에서 소모적으로 진행될 수도 있으며, 실제 성과는 적으나 후유증이 클 수 있는 경로가 될지 우려도 크다. 이런 행정통합은 마치 영국의 브렉시트(Brexit) 추진처럼 탈퇴하면 모든 것이 해결될 것 같았지만 오히려 문제만 쌓여 막상 시행 후 '그대로 가기도 힘들고, 그렇다고 되돌리기도 어려운 거대한 딜레마(자가당착)'에 빠지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든다.
행정통합을 해야 5년간 20조를 제공하고, 차관급 부시장 등 자치권을 확대하며, 2차 공공기관 이전의 혜택을 제공한다는데 이를 굳이 통합하지 않고 모든 시도에 부여한들 무슨 문제가 있다는 것인가? 행정통합에서 빠진 시도나 제주, 강원, 전북, 충북, 울산을 특혜에서 근본적으로 배제시키는 것이 균형발전정책에 맞고 심지어 헌법적 평등 가치에 부합하는가? 막상 시도통합이 되면 지리적으로 인접한 경남과 전남, 경북과 울산, 전북과 충북의 다권역 간 산업·경제적 기능 교류는 위축될 수도 있는데 이는 무시해도 좋은 것인가? 경제와 경쟁력 논리의 시·도 간 통합의 강력한 드라이브가 주민 가까이에서 복지 등 생활권에 대응하고 해결해야 할 자치 기능의 후퇴와 인구 및 동네소멸의 위기에 들어간 대다수 취약지역의 빠른 쇠락을 초래할 위험은 없는가? 이런 문제에 대한 적극적 대답을 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시·도간 통합이 실질적 목적에 부합하고 합리적인지에 대한 검토가 없는데도 믿고 신념으로 받아들이면 막스 베버가 말하는 주술화(Enchantment)의 위험성이 있고, 정치세력 등 집단의 힘을 동원해 프레임과 선입견으로 밀어붙이면 토드 로즈(Todd Rose)가 우려하는 집단적 착각(Collective Illusion)이 될 수도 있다. 그래서 오히려 현행 지방자치법에서 가능한 특별지방자치단체로 광역연합이 현실적이고 국제적 흐름에도 맞으며, 나아가 경직적 기준과 절차를 훨씬 완화해 더 쉽게 운영될 수 있도록 배려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초광역 균형발전 계정을 두둑이 조성하여 5극 3특은 물론이고 꼭 동일 초광역권만이 아니라 다른 인접 광역권 간의 결합이라 하더라도 인센티브를 주는 것이 국가적 이익이고 다중적 초광역 운영에 더욱 적합하다. 아울러 지금 정부는 2차 공공기관이전 등 실질적으로 5극 3특을 뒷받침하고 대전환 시대에 걸맞는 '지역균형발전 2.0'의 빅 픽처를 제시하는 것이 더 시급하다. 2차 공공기관 이전 시 공공기관뿐 아니라 이들의 투자 및 출자 기업까지 확대하여 규모를 늘리며, 이번에는 제대로 된 수도권 대응의 초광역권을 조성할 수 있도록 단순한 혁신도시가 아닌 지역 산업적 연관성을 높이는 (프랑스의 메트로폴 및 이후 경쟁력 거점 사례와 같은) K-테크노폴리스 형태의 발전이 필요하다.
이재명 대통령의 지역균형발전, 비수도권의 발전에 대한 뚜렷한 비전과 의지를 의심하지 않으며 그렇기 때문에 '명품 정책'이 아니면 안된다. 참여정부 시기 노무현 대통령은 지역 대통령으로 평가받기를 기대했고, 그의 균형발전정책은 지방분권, 행정중심복합도시와 함께 지역정책의 핵심이 됐다.
이어진 이명박 정부가 세종시로의 정부 부처 이전을 좌초시키려 할 때 박근혜 당대표조차 원안 고수와 균형발전의 지속적 추진의 강력한 의사를 피력했고, 이후 정부를 거치면서도 지역균형발전정책 프레임만큼은 지속되고 있다. 공공기관 이전과 세종시 추진으로 2011년부터 2016년간은 한국전쟁 이후 처음으로 수도권 인구 순유출이 지속될 정도로 인구이동의 공간적 지형이 바뀌기도 해 균형발전정책의 인구분산 효과도 있었다. 노무현 대통령 지역균형발전정책에 대한 국민적 공감, 여야 진영적 차이를 넘어선 동의의 힘이 그만큼 국가 발전에 올바른 위력을 발휘하는 것이다.
이재명 정부의 지역균형발전정책이 제대로 된 메가리전 정책과 모든 지역에 대한 보편적 기본 생활권 보장으로 인구 및 서비스 사막화와 지방 소멸 등 전환 시대의 위기를 극복하고 국가경쟁력 마련의 전환점을 마련하며 새로운 복지국가의 모델로 발전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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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지역을 위한 보편적 기본 생활권 보장의 복지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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