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튜브에서 다 요약해 설명해 주는데, 굳이 시간 들여 읽을 필요가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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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전자책)'이요? 유튜브에서 다 요약해 설명해 주는데, 굳이 시간 들여 읽을 필요가 있을까요?"
스마트폰의 '한계'를 지적하려다 아이들에게 '되치기'를 당했다. 몇 해 전 대학에 진학한 아들에게 태블릿피시를 선물해 준 건 전자책 때문이었는데, 그마저 그들에겐 이유가 되지 못했다. 종이책 대신 PDF 파일로 내려받아 읽기 때문에 태블릿피시는 아이들에게 필수품이었다.
스마트폰으로도 내려받아 읽을 수도 있지만, 화면이 작고 메모하기가 불편해서 책을 읽고 정리하기가 여러모로 힘들다. 태블릿피시는 스마트폰과 동기화해서 동시에 여러 작업이 가능하고, 자판을 별도 구매하면 노트북처럼 활용할 수도 있다. 둘은 흡사 바늘과 실 같은 도구였다.
이젠 그마저 옛이야기가 된 거다. 요즘 아이들이 이구동성 스마트폰 하나면 충분하다고 말한 까닭은 종이책과 전자책 구분할 것 없이 활자로 된 책을 거의 읽지 않기 때문이다. 명작이든, 고전이든, 책의 내용을 핵심만 간추려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 주는 '쇼츠'가 지천이다.
믿기 힘들겠지만, AI까지 보편화한 마당에 책 읽기를 '시간 낭비'라고 말하는 아이도 있다. 가성비로 치면, 그보다 더 비효율적인 행위는 없다는 거다. 수능 국어 시험을 준비할 때, 문학작품들의 줄거리 요약본과 관련 기출 문항을 따로 뽑아 공부하는 방식에 길들여진 결과다.
문학작품도 요약본을 구해 읽더니, 이젠 영화나 드라마도 요약된 영상으로 감상한다. 요즘 아이들에게 무조건 짧은 건 '선'이고, 긴 건 '악'이다. 또래들 사이에 SNS로 오가는 문자조차 '엔터 키'를 용납하지 않는다. 두세 번 나눠서 보낼지언정 메시지는 '단문'으로 끝나야 한다.
책이든, 영화든, 그들을 타깃으로 하는 작품은 길면 필패다. 뭐든 최대한 얇고, 가볍고, 짧아야 한다. 몇 해 전 화제가 됐던 <인터스텔라>나 <아바타>와 같은 대작 영화는 그들에겐 차라리 '고문'이다. 당장 러닝타임에 주눅이 들어 애초 관람을 포기했다는 아이들이 적지 않았다.
"비문학에서도 미괄식보다는 두괄식의 글이 요즘 아이들 정서에 더 맞는 것 같아요."
국어를 가르치는 한 동료 교사의 우스갯소리 같은 푸념이다. 글의 주제가 맨 앞에 제시되어야지, 뒤로 가면 금세 지루해 한다는 거다. 정확하게는, 긴 글을 읽고 주제를 파악해 내기 어려워할뿐더러 글쓴이의 의도, 곧 결론을 알고 나면 더 이상 읽으려고 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대화나 토론을 벌일 때도, 대놓고 결론부터 말하라며 상대를 압박한다. 요즘엔 토론 수업에서도 준비한 자료를 보고 읽을 게 아니라면, 고작 1~2분의 발언 제한 시간을 다 채우는 경우가 드물다. 어휘력과 사고력은 정비례한다는데, 아이들의 말과 글이 짧아지는 건 우려할 만하다.
덩달아 아이들이 수업에 집중하는 시간도 해가 갈수록 짧아지는 느낌이다. 알다시피, 발달 단계를 고려해 수업 시간이 초등학교는 40분, 중학교는 45분, 고등학교는 50분이다. 그런데, 요즘 고등학생 중에 50분 내내 딴청 피우지 않고 공부에 집중하는 아이는 손에 꼽을 만큼 적다.
이는 수업 내용의 재미나 교사의 실력과도 실상 무관하다. 그 어떤 영상도 채 몇 분도 넘기지 못한 채 손가락으로 '스크롤' 당한다. 축구 해설가가 장래 희망인 축구광 아이도 90분의 전체 경기 대신 2~3분짜리 하이라이트만 챙겨 본다고 말한다. 축구도 '쇼츠'로 즐기는 지경이다.
읽기도 힘들어하는데, 쓸 수 없는 건 어쩌면 당연하다. 글쓰기는 요즘 아이들이 '혐오하는' 과제다. AI의 보편화로 글쓰기 과제가 빠르게 사라져가는 것도 안타깝지만, 각자의 주장을 설득력 있는 글로 작성하는 건 AI의 몫이라고 천연덕스럽게 말하는 모습은 적이 충격적이다.
백지 답안에 AI 의존이 태반... 학교가 위험하다

▲ '쇼츠'에 길들어져 글을 읽고 쓰는 데 서툰 아이들이 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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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 전까지만 해도 글쓰기가 학교 교육의 고갱이라며 강조됐다. 교육과정에 포함되는가 하면, 지금까지도 지필평가에서 서술형 문항을 일정 비율 이상 의무적으로 출제하게 되어 있다. 그러나 문항의 난이도와 상관없이 백지 답안이 태반인 현실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쇼츠'에 길들어져 글을 읽고 쓰는 데 서툰 아이들은 AI를 '비서'로 적극 활용하고 있다. 단언컨대, 어떤 용도든 AI에 글쓰기를 맡기지 않는 아이는 없다. 새삼스럽지만, 아이들에 대한 담임교사의 관찰 기록인 생활기록부마저 AI에 '위탁하는' 형국인데, 그들만 탓하기도 뭣하다.
학교 교육의 '심장'인 도서관마저 위험한 상황이다. 아이들이 이구동성 도서관에 요구하는 건, 더 많은 책이 아니라 더 속도가 빠른 와이파이 무선공유기다. 한때 서가가 있던 자리에 정보 검색용 노트북들이 놓이더니, 이젠 고속 충전기가 대롱대롱 매달린 빈 책상 차지가 됐다.
사족. '쇼츠' 보느라 정신이 팔려 데면데면해하는 아이들에게 부러 물어봤다. 하루에 얼마나 오래 보고, 어떤 내용을 주로 보는지, 그리고 '쇼츠'를 보고 난 뒤의 느낌이 궁금했다. 짧게는 30분부터 길게는 3시간에 이르고, 남학생이어선지 스포츠 관련 내용이 대다수였다.
흥미로운 답변도 있었다. 오로지 재미를 추구하다 보니 자극적인 영상이 많고 판단력이 흐려져 가짜 뉴스에 쉽게 휘둘릴 위험이 크다면서도, 한두 시간이 '훅'하고 지나갈 만큼 중독성이 강해 도저히 못 끊겠다고 했다. 머지않아 '쇼츠 중독'이라는 병명이 등장할 거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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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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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3분 요약, 전자책은 "왜 봐요?"... 요즘 교실 이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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