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성전자 신입연구원이던 1995년생 고 김치엽씨가 자신의 X(옛 트위터) 계정에 남긴 생전 마지막 말들. (유족의 동의를 얻어 게재)
X계정 캡처
입사한 지 1년이 채 되지 않은 삼성전자 반도체의 신입 연구원이 성과 압박에 시달리다 지난해 3월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실이 뒤늦게 드러났다. 신입 연구원 고 김치엽씨의 유가족은 사망 후 10개월이 지났음에도 삼성전자의 조치가 개인적인 위로에 머물고 있다며 공식 답변을 요구했다.
김씨는 생전 자신의 X(옛 트위터) 계정에 "잘 해보려 하는데 하나씩 일그러지고 있다. 이제 뭐가 문제인지도 모르겠다"(2025년 1월 22일), "입사 1년도 안돼서 정신건강휴직을 할 판이군"(2025년 2월 24일)이라며 고통을 호소해온 데 이어 사내 프로젝트 발표를 마친 다음 날(2025년 3월 20일)에도 X에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싶다"는 말을 남겼다. 그로부터 엿새 뒤, 김씨는 홀로 거주하던 오피스텔에서 사망한 채 발견됐다.
김씨의 유가족과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은 27일 오전 11시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서초사옥 앞에서 김씨 죽음의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반올림은 김씨의 사이 삼성의 성과주의에서 비롯된 타살이라고 주장했다.
1995년생인 김씨는 2024년 고려대학교 대학원 신소재공학과를 석사 졸업하고, 두 달 뒤 삼성전자 반도체사업부 화성 사업장에 입사해 부품기술 3파트 소속으로 일했다. 그는 살아 생전 정신과를 방문해 "상당 수준의 증상이 지속되어 치료해야 한다"는 우울증 소견을 받고, 삼성전자 부속 의원(마음건강클리닉)에도 방문해 업무로 인한 스트레스를 털어놓기도 했다.
김씨가 사망한 2025년, 삼성전자는 연매출 332조7700억 원으로 역대 최대 실적을 기록한 바 있다. 반올림에 따르면 김씨가 2025년 2월 병가 휴직을 신청했으나 삼성전자는 '3주 이상 치료를 요한다는 명확한 소견이 필요하다'며 반려했다.
"어떻게든 살고자 애썼던 아들, 삼성전자 답해야"

▲ 반도체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이 27일 오전 11시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서초사옥 앞에서 삼성전자 반도체 신입연구원 고 김치엽씨의 사에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발언하는 고 김치엽씨의 유가족 김영구씨.
유지영
영하 8도의 추위 속에 진행된 이날 기자회견에는 고인의 아버지인 김영구씨도 참석했다. 김씨는 "대한민국이 선진국이 됐다는 착각 속에서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기업인 삼성전자에 입사한 아들과 그의 미래에 대해 기쁘게 생각해왔다"며 "그러나 아이가 만 서른살이 되기 전에 유서도 남기지 않은 채 왜 그런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지금도 질문하고 있다"는 말로 입을 뗐다.
이어 "그 과정에서 알게 된 것은 아들이 사망 직전까지도 정신과 치료를 받으며 약을 바꾸어가며 마음을 다잡으며 어떻게든 살아가고자 애썼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아들이 가장 힘들어했던 시기가 성과와 실적에 대한 압박이 조직 전반에 강하게 작용하던 때였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며 "아들이 남긴 기록과 주변의 이야기 속에는 부서장을 만족시켜야 한다는 압박과 그로 인한 고통이 반복해서 등장한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아들과 연락이 되지 않는다며 회사 관계자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곧이어 경찰로부터 아들의 사망 소식을 전해들어야 했다"며 "회사에서는 무엇을 알고 있었는지 하루 출근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아들의 거주지 문을 강제로 열었다"고 지적했다.

▲ 반도체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이 27일 오전 11시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서초사옥 앞에서 삼성전자 반도체 신입연구원 고 김치엽씨의 사에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유지영
김씨는 아들의 사망 이후 진행됐던 경찰 조사 과정에도 문제를 제기했다. 그는 "경찰 조사 과정에서 전해 들은 이야기는 아들이 경제적인 어려움이나 이성 관계의 문제를 겪고 있었던 것 아니냐는 물음이었다"며 "아들이 회사에서 겪었던 고통은 외면한 채 죽음의 이유를 철저히 개인적인 문제로만 돌리려 했던 태도는 저로서는 쉽게 이해할 수 없었다"고 밝혔다.
더해 "오늘 아버지로서 이 자리에 섰다. 아들의 죽음을 통해 이 사회에 묻고자 한다"며 "이 죽음이 정말 개인의 선택이었는지, 아니면 구조와 압박 속에서 외면되고 방치된 결과였는지, 삼성전자는 침묵이 아닌 답을 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그는 자신의 진상규명 요구를 두고 "바위로 계란을 치는 싸움이라는 걸 잘 알고 있다. 그래도 용기를 내서 내 남은 생은 우리 아들이 원하던 더 좋은 일자리와 노동의 가치, 그리고 건강한 세상이 될 수 있도록 진실을 밝히는 데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전했다.

▲ 반도체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이 27일 오전 11시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서초사옥 앞에서 삼성전자 반도체 신입연구원 고 김치엽씨의 사에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유지영
유족 대리인인 이성민 반올림 지원 노무사는 "사망 20일 전 고인은 사내 병원 마음건강클리닉을 찾아 '지난 한 달간 자신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요인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일과 직업에 관련된 일'을 지목했다"며 "또 '잠을 설치고 모든 일이 힘들게 느껴지며, 앞날이 암담해 도무지 무엇을 해나갈 엄두가 나지 않는다'고 업무로 인한 극심한 스트레스를 호소했다"고 말했다.
이 노무사는 "고인의 기록에는 '(회사에) 사과문 제출', '파트장의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는 기록이 반복된다. 마지막에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싶다'는 말을 남겼다. 이는 개인의 문제가 아닌 조직 안에서 작동한 압박 구조의 결과"라면서 "고인의 입사와 사망 시기, 'HBM 경쟁에서 뒤처진 삼성'이라는 보도가 나왔고 연구원 이탈에 대한 위기감 속에서 최고 경영진이 직접 나서 강도 높은 성과 메시지를 반복했다. 고인의 기록 곳곳에 남아 있는 만족시켜야 한다는 압박은 그의 죽음이 이러한 조직 환경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을 추정하게 한다"라고 지적했다.
권미정 김용균재단 운영위원장은 "(김씨가) 마음건강클리닉에 예약은 했지만 프로젝트 때문에 진료받으러 가지 못한" 점을 비판하며 "그의 죽음에 삼성은 모른다는, 책임이 없다는 말을 먼저 하면 안 된다"고 했다.
"삼성전자 노동자우울증 유병률 45.8%, 심각 상태"

▲ 반도체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이 27일 오전 11시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서초사옥 앞에서 삼성전자 반도체 신입연구원 고 김치엽씨의 사망에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유지영
이상수 반올림 상임활동가는 '삼성전자 계열사 노동안전보건실태조사 연구 보고서(2024년 2월)'를 인용하며 "삼성전자 노동자 우울증 유병률은 45.8%고, 수면장애 유병률은 65%(삼성전자 응답자 수 761명,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3.54%p)로 비정상적으로 높다. 죽음을 부추기는 삼성전자의 노동환경에는 인력부족으로 인한 과도한 업무량, 높은 노동 강도, 성과에 대한 압박감,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는 고과제도가 있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런 상황에서 삼성전자는 정신질환 상담, 클리닉 등을 대책이라고 시행하고 있다. 김치엽님의 죽음은 이런 대책이 얼마나 무력한지 알려준다"며 "인력부족으로 인한 과도한 업무량과 성과 압박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삼성전자 노동자들의 건강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업무상 사고와 질병으로 의심되는 경우에도 치료비를 본인이 부담하는 경우가 많다. 산재를 통해 치료비를 해결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며 "실제 아파서 병가를 사용한 후 징벌적 허위고과를 받은 경우를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노동자들이 많았다. 고과제도는 산재를 은폐하는 도구로 사용되고 있다"라고 밝혔다.
유가족은 지난해 12월 삼성전자와 일부 직원들을 경찰에 고소했다.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 예방 핫라인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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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신입연구원 사망, 유족 "성과주의로 인한 타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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