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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당함'에서 막히는 업무상 질병 인정... 기준 재정의해야

[주장] 문법적 해석이 아니라 개연성 확인으로 결정해야

등록 2026.01.27 10:22수정 2026.01.29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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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미화 노동자의 업무상 질병 환경미화 노동자의 업무상 질병
▲환경미화 노동자의 업무상 질병 환경미화 노동자의 업무상 질병 ChatGPT 생성 이미지

현행 산업재해보상보험법(아래, 산재법)에서는 업무상 질병을 해당 질병이 업무와 상당인과관계(相當因果關係)가 있는 경우로 정의하고 있다.

'상당(相當)하다'는 대략 세 가지 뜻으로 이해된다.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일정한 액수나 수치 따위에 해당함', '어느 정도에 가깝거나 알맞다', '일정한 액수나 수치 따위에 알맞다'의 의미로 사용되어 산재법에서도 '최저임금액에 상당하는'과 같이 흔히 사용된다.

또한 '어지간히 많다. 또는 적지 아니하다' '수준이나 실력이 꽤 높다' 의미로서 '상당한 주의', '상당한 시간'과 같이 산재법과 산업안전보건법에서 흔히 사용된다.

이와 별개로 사전적 의미와는 달리 법조계에서는 관행적으로 '적합한, 합당한, 타당한'의 의미로 굉장히 자주 쓰이곤 한다.

이처럼 '상당하다'가 가진 중의성(重義性) 탓에 사용하는 사람마다 꽤 다른 의미로 사용하곤 한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일상에서는 흔히 영어로 'substantial', 'considerable', 'significant'의 의미와 유사하게 수준이 높거나 추상적으로 무언가가 '크거나 많은'의 의미로 인식할 것이다.

따라서 전문가조차도 업무와 질병간의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하는 과정에서 흡연자에게 발병한 폐질환, 고혈압 유질환자에게 발병한 뇌심혈관질환의 인과관계를 판단하는 데 있어 분진 노출이나 과로, 야간근무의 발병 기여도를 '상당하다'라고 인정하길 꺼리는 경우가 많다. 직감적으로 '상당'이라는 표현에 내포된 엄격성을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해당 질병의 발병에 업무상 요인이 일정 부분은 기여했겠지만 그 수준이 '상당'했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이기 때문에 인과관계가 부정된다는 논리로 이어지며 결과적으로 일도양단식 현재 산재 승인 결정 구조상 업무상 요인의 존재가 전면 부정되는 결과에 이르곤 한다.


하지만 대법원에서는 이미 90년대부터 여러 차례 업무상 질병 인정에 요구되는 인과관계는 의학적, 자연과학적 명백한 입증을 반드시 필요로 하지는 않으며 간접적 사실관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추단'되는 경우도 입증된 것으로 본다고 판시하고 있으며, 업무상 요인이 여러 발병 원인 중 그저 공동 원인으로 작용했을 경우를 넘어 불확실한 위험이 현실화된 것으로 추정해 볼 수 있는 수준의 사례까지도 업무상 질병으로 인정하고 있다.

하지만 소송 전 단계인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 등에서는 여전히 '상당'의 문리적 의미에 매몰되어 업무상 요인이 '유력' 혹은 '가장 유력'하게 발병에 기여한 것이 명백한 경우에 한하여 인과관계를 인정하는 결정을 내리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도 나름의 이유는 있다. 판단 기구가 공공행정기관 산하 조직으로서 업무상 질병 구성 요건을 '상당인과관계' '시간적·의학적으로 명백할 것' 등으로 명시하고 있는 산재법을 문리적 해석을 넘어 적극적으로 해석하기는 어려운 구조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2심, 3심 격인 심사, 재심사 과정에서마저도 적극적인 판단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최근 판례 성향과 거리가 먼 결정의 닻(anchor)만 더욱 깊숙이 고정하는 결정을 하곤 한다. 따라서 과거 산재보험으로 인과관계가 명확한 전통적인 직업병만을 인정했던 시기 마련된 업무상 질병 구성 요건에 관한 문구를 그 의미가 확장된 현 시대 요구에 맞게 개정하는 조치가 필요하다.

사회보험으로서 산재보험의 본래 취지를 충분히 살리기 위해서는 본질적으로 밝히기 어려운 개별 인과관계에 관해 명백한 의학적·과학적 근거를 개인에게 요구할 것이 아니라, 업무가 발병에 기여하였을 최소한의 합리적 개연성만 입증되면 족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현재 '상당인과관계' 문구를 합리적 개연성으로 변경하거나 상당인과관계의 존재가 명백히 부정되지 않는 수준을 업무상 질병 인정 기본 원칙으로 명문화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물론 인과관계 입증책임을 근로복지공단으로 전환하는 것이 더욱 근본적인 길이겠으나 그 길이 여러 현실적인 우려로 진전이 어렵다면, 그에 앞서 차선 혹은 전 단계로서 업무상 질병 인정기준을 재정의하는 것은 어떨까. 올해 출범이 예고된 업무상질병인정기준위원회에서 시급히 다루어지길 바란다.

'상당한' 시간 일하며 만들어진 상처의 의미가 더 이상 고혈압, 흡연, 나이, 개인 취미 등과 충돌하여 무색해지지 않게끔 말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김용균재단 이사이자, 직업환경의학과 의사로 활동하는 박승권 님이 쓰셨습니다.
#산업재해시민 #김용균재단 #박승권 #업무상질병 #개연성확인
댓글

2019년 10월 26일 출범한 사단법인 김용균재단입니다. 비정규직없는 세상, 노동자가 건강하게 일하는 세상을 일구기 위하여 고 김용균노동자의 투쟁을 이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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