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he MET 1층 548 갤러리] '님프와 조개 분수(Nymph and Shell Fountain)'. 아름다움 곁을 지키는 청동 뱀들의 경계는 진정한 신성함에 도달하기 위한 경외의 거리를 가르쳐줍니다.
문현호
'첫걸음'에서 머문 마음
이번 여정의 대미를 장식하며 제 마음이 가장 오래 머문 작품은 빈센트 반 고흐의 '첫걸음 (First Steps, after Millet - Gallery 825)'이었습니다. 생의 마지막 무렵, 조카의 탄생 소식을 들은 고흐가 밀레의 드로잉을 자신만의 찬란한 색채로 재구성한 작품입니다. 텃밭 한가운데서 아이를 향해 무릎 꿇고 두 팔을 벌린 아버지, 그리고 어머니의 손을 빌려 이제 막 땅을 딛고 일어서려는 아이.
고흐는 거친 붓질과 찬란한 노란색의 대비를 통해 이 평범한 농가의 일상을 성스러운 종교화의 반열로 끌어올렸습니다. 그림 속 아버지는 아이가 넘어질까 노심초사하면서도, 아이가 스스로 땅의 감각을 익힐 수 있도록 기꺼이 자신의 두 팔을 비워둡니다.
신화 속 여신의 완벽한 곡선이나 왕의 화려한 갑옷보다 저를 더 압도한 것은, 생명이 처음으로 스스로를 지탱하며 내딛는 저 서툴고도 위대한 떨림이었습니다. 부모로서 자식을 향해 벌리는 저 빈 팔이야말로, 인류가 5000년간 지켜온 가장 숭고한 경탄의 실체라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습니다.
![[The MET 2층 825 갤러리] 빈센트 반 고흐의 '첫걸음(First Steps, after Millet)'. 아이를 향해 벌린 아버지의 빈 팔이야말로 인류가 5,000년간 지켜온 가장 숭고한 경탄의 실체입니다.](https://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26/0120/IE003572770_STD.jpg)
▲ [The MET 2층 825 갤러리] 빈센트 반 고흐의 '첫걸음(First Steps, after Millet)'. 아이를 향해 벌린 아버지의 빈 팔이야말로 인류가 5,000년간 지켜온 가장 숭고한 경탄의 실체입니다.
문현호
미술관의 육중한 문을 열고 다시 세상으로 나왔을 때, 제 안의 막막함은 5000년의 시간을 관통하며 얻은 단단한 평온으로 바뀌어 있었습니다. 렘브란트는 고뇌를, 페르메이르는 일상의 기적을, 그리고 오늘 만난 거장들은 숭고한 집념을 제게 나눠주었습니다.
이제 저는 거장들이 비춰준 거울을 품고, 제가 발 딛고 선 가장 확실하고 다정한 현실로 돌아갑니다. 캐나다에서 자신만의 삶을 씩씩하게 일궈가고 있는 대견한 큰딸, 그리고 저를 늘 믿고 지켜주는 사랑하는 아내와 새로운 꿈을 향해 힘찬 첫걸음을 준비하는 막내가 있는 곳으로 말이지요. 메트에서의 3일은 끝났지만, 여기서 얻은 아름다움에 대한 경탄은 저의 일상을 버텨내게 할 가장 강력한 구원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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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
사투리는 여전하고, 마음 한켠엔 늘 바다가 있습니다.
서울 하늘 아래 걷고 있지만, 그리움은 늘 남쪽을 향합니다.
조용한 산책길과 사소한 감탄 속에서
느리게, 그러나 단단하게 살아가는 이야기를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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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카 탄생 소식 듣고 고흐가 완성한 그림, 감탄만 나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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