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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의 소란한 것들과 결별하라고

[시로 읽는 오늘] 백무산 '부르면 그 이름으로 온다'

등록 2026.01.22 09:00수정 2026.01.22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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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작가회의 시분과위원회에서 기획한 '시로 읽는 오늘'을 연재합니다. 시로 아침을 시작한다면, 수많은 갈등과 전쟁도 줄어들 것입니다. 독자들은 힘 있는 언어를 익혀 튼튼한 내면을 가꿀 수 있고, 다양한 시를 통해 새로운 시민의 감수성을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입니다. 세계의 첨예한 문제를 시인의 예민한 감각으로 길어 올린 한국시를 매주 두 편씩 선정하여, 추천 글과 함께 독자 여러분께 소개합니다.[기자말]
부르면 그 이름으로 온다
- 백무산

하룻밤 내린 눈에 도시가 마비되었다


한밤중에 일어나 마당에 나가본 사람들은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눈이 참 푸근하게도 내리네

아침 뉴스 화면엔 온통 아수라장이다
하늘에서 쏟아부은 재난을 원망했다

폭설이 내리면 풍년이 온다고 했는데
파릇한 보리밭에 이불을 덮어주고
겨울 나는 것들에게 깊은 잠을 토닥여준다고
봄가물에 목마른 대지를 천천히 적셔준다고

한철 겨울나무 곁방에 들어 소란한 자신과 결별하는 대신
말 없는 저 흰 것들과 결별한 뒤로

고요하고 희고 말 없고 순한 저들을 우리는
쓰레기라고 부른다 재난이라고 부른다
부르면 불리는 그 이름으로 온다


출처_시집 <누군가 나를 살아주고 있어>, 창비, 2025
시인_백무산 : 1984년 <민중시>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만국의 노동자여><동트는 미포만의 새벽을 딛고><인간의 시간><길은 광야의 것이다><초심><길 밖의 길><거대한 일상><그 모든 가장자리><폐허를 인양하다><이렇게 한심한 시절의 아침에>등이 있다.

 부르지 못한 순수함이 조용히 우리 위에 내려앉는다
부르지 못한 순수함이 조용히 우리 위에 내려앉는다 박유하 시인(디지털 포엠 아티스트)

추천글


내 안의 소란한 것들과 결별하라고 한밤중에 폭설은 내렸다. 그것은 따뜻한 이불이었고 토닥이는 손이었고 목을 축이는 물이었다. 기쁨이었고 감사였고 환희였고 사랑이었던 것. 세상을 다 덮을 만큼 온통 그것이었던 관계들이 있다. 날은 밝고 온도를 따라 우리는 녹고, 질척이고, 미워하고, 원망하다가 소원해지리라. 사랑이라 부르면 사랑으로 오고 미움이라 부르면 미움으로 오는 한때 전부였던 것들. (신준영 시인)
#백무산시인 #부르면그이름으로온다 #누군가나를살아주고있어 #한국작가회의 #시분과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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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한국작가회의는 이 땅의 대표적인 문인단체로서 표현의 자유와 사회의 민주화를 위해 헌신했던 <자유실천문인협의회>와 <민족문학작가회의>의 정신을 계승한다.


톡톡 60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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