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학 관련 자료들. 유혜자 선생이 사서로 근무한 시애틀의 워싱턴 대학교 다테우치 동아시아 도서관(Tateuchi East Asia Library). 한국학과 한국어에 대한 관심이 많아지고는 있지만 그걸 후원하는 기반이 많이 부족한 현실이다.
이안수
우리는 유혜자 선생의 댁이 마주 보이는 가스웍스 공원의 언덕을 내려와 버크-길먼 트레일을 걸으면서 한 여성이 84년 걸어온 길을 반추해 보았다. 누구나 지향하지만 실현이 싶지 않은 길을 경쾌하게 가고 계셨다.
유 선생은 한국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미국으로 유학 오신 때가 1969년이었으니 올해로 미국 생활 57년째이다. 서던 일리노이 대학교 로스쿨에서 30년간 사서로 근무했다. 은퇴를 하고 마침내 자유인이 되는 순간, 시애틀의 워싱턴 대학교 다테우치 동아시아 도서관으로부터 근무 제안을 받았다.
이틀하고 반나절만 4시간씩 한국 도서를 목록화하는 작업을 맡았다. 은퇴 후 놀 시간을 원했던 터라 딱 5년만 더하자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이 일이 너무나 재미있었다는 것. 이 도서관에 들어오는 모든 한국 도서는 유 선생의 손을 거쳤다. 한국을 떠난 이후 한국 문화 단절의 갈증을 해소하고 한국 역사를 다시 배우는 기분이었다.
무엇보다 도서관의 팀워크가 너무 좋았다고 했다. 자발적으로 신명 나서 일하는 사람들이었다. 함께 행사도 기획했다. 이 도서관이 교민들에게 한국의 보물이 가득한 귀중한 장소임을 알리고 UW한국학도서관친구들을 만들어 'BOOKSORI' 행사를 기획해 한국에서 작가를 초청하고 강연 프로그램도 만들었다. 봉사에 앞장서는 분들도 생겨났고 도서관에 기금을 기부하기도 했다.
5년 근무 계획이 20년에 가까워졌다. 아무리 도서관이 좋아도 더 늦기 전에 스스로 반추하는 삶을 살아야겠다는 생각에 종신 근무를 사양하고 2021년 9월, 두 번째 은퇴를 택했다. 이후 누군가를 위해 밥 살 만큼만 남기고, 50년 사서 월급으로 받은 돈을 도서관과 박물관에 기부했다. 시애틀 아시아 미술관(Seattle Asian Art Museum)의 기부자 명패(donor plaque)에서 유혜자 선생의 이름을 발견할 수 있었다.
특정 나라의 문화가 소개되기 위해서는 기부가 큰 역할을 한다. 한국학과 한국어에 대한 관심이 많아지고는 있지만 그걸 후원하는 기반은 많이 부족한 현실이다. 특히 이민자의 기부는 그 나라의 국제적 이미지까지 바꾼다는 사실을 알고 보니 기부가 한국에 대한 애국이구나, 싶었다.

▲시애틀 아시아 미술관(Seattle Asian Art Museum). 이 미술관은 시애틀 아트 뮤지엄(SAM)의 아시아 미술 전문 분관으로 한국을 비롯한 중국, 일본, 인도, 동남아시아 아시아 미술을 전문으로 소개하고 있다. 한국계 컬렉터 기증과 기부 덕분에 한국 미술 비중이 높다.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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