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3일(현지시간) 미군이 기습적인 군사 작전으로 체포한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의 근황 사진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트루스소셜에 공개했다.
트루스소셜
2026년 새해 벽두, 세계는 충격적인 소식을 접했다. 미국 특수부대가 남미 베네수엘라의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을 기습 연행하여 미국으로 이송한 것이다. 주권국가의 현직 국가원수를 해당국 동의 없이 무력으로 체포한 이번 사건은 국제법 체제에 거대한 균열을 낸 상징적 사건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물론 마두로 정권의 권위주의와 부패, 그가 연루된 범죄 혐의에 대한 비판은 오래되었다. 그러나 귀책 사유가 무엇이든, 타국 정상을 일방적으로 납치하는 행위는 국제법상 주권 침해이자 유엔 헌장의 무력사용 금지 조항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조치다.
국제법을 존중하는 척했던 러시아와 국제법 자체를 경시하는 미국의 대비
문제의 본질은 미국이 이 엄청난 결정을 내리면서도 과거처럼 국제법적 정당성을 확보하려는 노력조차 거의 보이지 않았다는 점이다. 러시아처럼 노골적인 권위주의 국가조차 국제법의 언어를 완전히 버리지는 않았다. 푸틴 대통령은 2022년 우크라이나 전면 침공을 감행하면서도, 유엔 헌장 51조의 자위권과 자국민 보호, 심지어 우크라이나 내 러시아계 주민에 대한 제노사이드(Genocide)를 막기 위한 조치라는 법적 명분을 내세웠다.
물론 이러한 주장은 객관적 사실이나 국제법 해석상 설득력이 없었고 법률가들의 검증을 견디지 못하는 궤변이었다. 그럼에도 러시아 정부는 자국 행위를 국제법 용어로 포장하며 최소한 표면적인 합법성이라도 주장하려 했다. 국제법을 위반하면서도 동시에 국제법의 틀 안에서 자기 정당화를 시도하는 이러한 아이러니는, 역설적이게도 침략국조차 법률 용어로 자기 행동을 설명해야 할 필요를 느꼈음을 보여준다.
반면 자칭 자유민주 진영의 리더인 미국의 최근 행보에서는 그런 최소한의 법적 수사(rhetoric)조차 찾기 어렵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025년 복귀 이후 국제 규범을 경시하는 태도를 노골화했다. 그는 가자지구 팔레스타인 주민을 강제 이주시키는 방안을 공공연히 거론하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영토 합병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는 듯한 입장을 보였다. 심지어 그린란드와 캐나다 일부를 점령하거나 파나마 운하를 탈취하는 시나리오까지 암시함으로써, 명백한 불법 행위를 고려 가능한 옵션으로 격하시켜 국제 규범의 금기를 희석시켰다.
이러한 언행들이 세계 질서를 법의 지배(Rule of Law)에서 힘의 지배로 회귀시킬 위험이 있다는 우려가 지속적으로 제기되었고, 현실로 나타난 미국의 행동은 정확히 그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2025년 이후 카리브해와 태평양 일대에서 마약 카르텔 간부를 대상으로 한 드론 공습, 그리고 마침내 2026년 1월 3일 주권국 정상에 대한 직접적인 납치까지, 미국은 넘지 말아야 할 금단의 선을 넘어섰다.
과거 미국은 군사행동 시, 때로 억지스럽더라도 유엔 헌장상 자위권이나 인도적 개입 등 근거를 찾으려 애써왔다. 1989년 파나마 침공이나 2003년 이라크 전쟁 때도 나름의 논리를 동원했다. 그러나 이번 마두로 체포와 같은 명백한 국제법 위반 행위에 대해 미국 정부는 별다른 법적 근거를 제시하지 않고 있다.
이는 규범에 구애받을 필요조차 느끼지 않는다는 태도다. 국제법을 위반하면서도 존중하는 척했던 러시아와, 아예 국제법 자체를 경시하는 미국의 대비는 오늘날 국제 규범 지형의 역설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잘못 적용된 논리라도 내세우는 행위는 국제법의 존재를 부정하지는 않는다. 반면 이번처럼 아예 무시해버리는 태도는 자신이 남들에게 책임질 필요가 없다는 기대 자체를 내포하기에 훨씬 더 위험하다.
자유민주국가들이 규범을 저버리고 국제기구가 침묵하는 상황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3일(현지시간)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을 체포하기 위한 '확고한 결의' 작전 진행 상황을 플로리다주 팜비치에 위치한 마러라고 자택에서 존 랫클리프 미 중앙정보국(CIA) 국장 등과 함께 지켜보고 있다.
EPA 연합뉴스
국제 규범이 이처럼 흔들릴 때, 그 파장은 단순한 조약 위반 사례를 넘어선다. 특히 국제 규범을 설계하고 지지해온 자유민주국가들 스스로 규범을 경시하거나 저버릴 때 질서는 근본부터 흔들리게 된다. 이는 역사가 입증한 교훈이다.
1930년대 국제연맹(League of Nations) 체제 붕괴는 표면적으로 이탈리아, 일본, 독일 등 권위주의 국가들의 침략이 원인이었으나, 그 이면에는 영국과 프랑스 같은 민주국들의 책임 방기와 이중 잣대가 자리했다. 1935년 이탈리아의 에티오피아 침공 당시, 영국과 프랑스는 이를 제어하기는커녕 묵인함으로써 국제연맹의 권위를 스스로 실추시켰다. 규범 붕괴 조짐 앞에서 지도자들은 단호히 대처하지 못했고, 그 결과 히틀러의 독일은 오스트리아 합병, 폴란드 침공으로 폭주하며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파국을 초래했다. 당시 자유 진영 지도자들조차 식민지 이익을 위해 원칙을 선택적으로 적용했던 위선이 규범 수호 의지를 약화시킨 것이다.
오늘날 양상도 이와 섬뜩할 정도로 닮아 있다. 서방 민주국가들은 규범에 기반한 국제질서를 강조하면서도, 자국이나 우방에 불리하면 국제법을 무시하거나 편법으로 피해왔다. 미국은 국제형사재판소(ICC) 관할을 부정하고 제재를 가하거나 유엔 인권기구를 탈퇴하는 등 규범 체제를 경시해왔다. 특히 2023년 가자지구 전쟁에서 수천 명의 민간인이 희생될 때 일부 서방 지도자들이 보인 방조적 태도는 전후 국제질서의 막이 내리는 신호탄과 같았다.
더욱 통탄스러운 현실은 국제연합(UN), 그 중에서도 세계 평화와 안전의 일차적 책임을 지닌 안전보장이사회의 처참한 몰골이다. 오늘날 안보리는 사실상 뇌사 상태에 빠져 있다. 국제법 위반을 제재하는 수단이 아니라, 강대국과 그 동맹들의 불법 행위에 면죄부를 주는 정치적 방패로 전락했다. 헌장이 부여한 권한을 행사하지 못하는 유엔의 현주소는, 1930년대 국제연맹의 무능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다.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을 때, 힘을 앞세운 국가들은 더욱 대담해지게 마련이다.
자유민주국가들이 규범을 저버리고 국제기구가 침묵하는 상황은 독재국가의 일탈보다 훨씬 근본적인 위험을 초래한다. 규범을 설계하고 수호자를 자임했던 이들이 규칙을 어길 때, 규칙 자체의 정당성이 무너지고 지지 기반이 붕괴되기 때문이다. 규범 위반 자체보다 심각한 것은 규범을 지킬 의지의 소멸이다.
인류에게 국제법보다 더 나은 언어와 규칙은 아직 없다

▲ 3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에서 시위대가 마켓 스트리트를 따라 유엔 광장까지 행진하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베네수엘라에 대한 미군의 군사 행동에 반대하고 있다.
EPA 연합뉴스
그렇다면 이 혼란 속에서 국제법은 사망 선고를 받은 것인가? 혹자는 강대국이 제 마음대로 행동하는 현실 앞에서 조약 따위는 종이 호랑이에 불과하다고 자조한다. 국제법학자로서 깊은 자괴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다. 그러나 현실주의와 자유주의의 이론적 논의를 넘어서, 우리는 근원적인 질문을 던져야 한다: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사람이 이렇게 많이 죽어 나가는 사태를 법적으로 막아야 한다는, 혹은 최소한의 절차라도 갖추어야 한다는 '레드 라인은 존재해야 하지 않는가?"
그로티우스(Grotius) 시기부터 전쟁법이 국제법의 핵심으로 다루어진 이유는, 전쟁이 일반 살인과 다르지 않다면 야만과 다를 바 없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국제인도법은 전쟁을 허용하려고 태어난 법이 아니다. 전쟁이라는 최악의 상황에서도 허용될 수 없는 잔혹함의 하한선을 그어 인간성을 보존하기 위한 장치다. 인권 관점에서 국제법의 존재 이유는 이상주의적 평화의 약속이 아니다. 오히려 폭력의 비용을 올리고, 정당화의 부담을 키우며, 사후 책임 추궁의 경로를 남기는 냉혹한 현실적 필요성에 있다.
역사는 위기와 재건의 연속이었다. 국제연맹의 실패 위에서 유엔이 출범했고, 뉘른베르크의 교훈 위에서 제네바 협약과 인권 체제가 섰으며, 냉전 후 학살을 딛고 국제형사재판소(ICC)가 탄생했다. 이 모든 과정은 국제법이 죽은 법이 아니라, 비극을 통해 학습하고 진화한다는 사실을 방증한다.
지금 국제법 체제가 시험대에 올라 있다면, 독재자들의 도전 때문만이 아니라 자유 세계의 규범적 리더십 부재와 유엔 시스템의 마비 때문이다. 그러나 국제법을 포기하는 길은 해답이 될 수 없다. 국제법은 단지 규칙 집합이 아니라, 국제사회의 공통 언어이자 최소한의 윤리적 기준이다. 심지어 북한이나 하마스 같은 행위자들조차 자기 행동을 정당화하기 위해 국제법을 거론한다는 사실은, 역설적으로 국제법의 규범력이 완전히 죽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국제법은 완벽하지 않다. 강대국에겐 관대하고 약소국에겐 엄격하다는 비판도 뼈아픈 진실이다. 하지만 국제법이 없었다면, 우리는 침략을 침략이라 부를 수 없고, 전쟁범죄를 범죄라 규탄할 기준조차 갖지 못했을 것이다. 국제법 없는 세계는 오직 힘의 논리와 약육강식만이 지배하는 야만의 세계일 뿐이다.
최근의 혼란 앞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체념이 아니라, 법적 금지선과 절차적 정당성을 다시금 분명히 하는 결단이다. 특히 작동 불능에 빠진 유엔 안보리를 대신해서라도 각 국가와 시민사회는 법의 레드 라인을 재확인해야 한다. 민간인 학살 금지, 영토 강제병합 불인정, 주권 존중과 같은 기본 원칙은 흥정의 대상이 아니다. 1945년 유엔 헌장의 약속은 지금 숨이 가쁘고 상처 입었지만, 여전히 유효하다. 인류에게 국제법보다 더 나은 언어와 규칙은 아직 없다. 국제법의 생명을 지키는 일이야말로, 난폭한 힘이 난무하는 분열된 세계에서 인류의 존엄을 지키는 최후의 보루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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