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해돋이 딸이 보내 준 새해 해돋이
딸
노인 세대인 우리 부부는 특별한 날이 오면 쓸쓸하다. 내 생각인지 모르겠다. 다른 날은 아무 생각 없이 지내다가 명절이나 가족이 모여야 하는 날 모이지 못할 때 찾아오는 공허감은 숨길 수 없다.
잠시 후 전화벨 소리가 집안의 적막을 깼다. 딸들 가족들이 차례로 새해 인사를 했다. 그것만으로도 감사할 따름이다. 사는 일은 물 흐르듯 관망하는 것이 더 편하다. 가족이란, 힘든 세상 속에서 나를 보호할 수 있는 가장 튼튼한 울타리다.
새해 첫날, 아침 떡국을 끓여 먹고 설거지를 하고 있는데 셋째 딸에게 전화가 온다. "엄마 우리 지금 집에서 출발해서 군산으로 가고 있는 중"이라고 전화가 온다. 늘 바빠 시간이 없다는 말에 군산에 오리라 생각도 못했는데 오고 있다고 한다. 그때부터 하는 일도 없으면서 마음이 바쁘다. 잠자리부터, 오면 쉴 수 있도록 집안을 살핀다.
점심은 외식 하자는 말에 아무 준비도 없이 딸네 가족을 기다렸다. 만나면 언제나 반가운 가족, 곁에 살고 있는 동생까지 불러 외식을 하려 갔다. 새해, 쉬는 날이라서 식당은 가족끼리 밥 먹으러 오는 사람들이 많았다.
남편은 막걸리 한잔 하시더니 기분이 많이 좋은가 보다. 신년 건배사도 하고 옛날 일도 회상했다. 누군가와 말할 사람이 없다가 가족을 만나고 할 말이 많으신가 보다. 나이 들면 이래 저래 외롭다. 만나야 할 사람도 없고 더욱이 대화 할 사람도 줄어든다.
점심을 먹고 큰 마트로 향했다. 마트 가는 길에 남편이 처음으로 집을 지어 우리 가족이 살았던 옛날 집이 있다. 아이들 키우며 추억이 많은 곳, 오랜만에 찾아왔다. 길 건너 우리 앞집에 사시던 분은 살아 계시는지 궁금해 대문을 기웃 거리고 있는데 그 집에 젊은 남자 분이 있어 남편이 물었다.
새해에 겪은 놀라운 일
"우리가 30년 전에 이 앞집에서 살던 사람인데..."
"아, 그럼 A씨세요?"
그 분의 그 말을 듣고 소름이 쫙 돋았다. 남편 이름을 기억하다니, 우리는 그 젊은이를 몰랐다. 남편은 내 이름이 맞다고, 그 말에 깜짝 놀란 젊은이는 앞집 아들이라고 말하며 아버님에게 말을 많이 들어 이름을 기억한다는 말에 다시 놀랐다. 세상에 이런 일도 있구나, 우리가 옛날 살던 곳을 가지 않았으면 몰랐을 일들. 동네에 살던 분들 중 누구는 돌아가시고 누구는 살아 계시고 소식을 다 들을 수 있었다.
그러면서 젊은이는 아버님 살아 계신다며 집안으로 들어가 모시고 나왔다. 이게 웬일인지 두 분은 이산가족이나 만난 듯 얼싸 안고 눈물을 훔치신다. 몇 년 전 보고 싶다 전화를 하셔 한번 들렀는데 그때 보다 더 많이 노쇠해지셨다. 지금은 97세, 몸은 마르셨지만 기억력은 또렷하다. 남편은 88세, 이제 세상과 이별할 날이 멀지 않은 두 분은 옛날을 회상하며 감회가 새롭다고 말하신다.
새해 이런 일이 있다니 그 모습을 바라보는 우리 모두도 마음이 먹먹했다. 이제 언제 살아서 만날 수 있을지, 인생이란 참 무상하다. 젊어 그리 활발하게 살았던 날들이 떠오르며 애달파 하신다.
두 분의 모습에서 인생의 연륜 같은 깊이가 느껴지기도 했다. 참으로 인생은 드라마와 같다. 살아가는 동안 사연이 많기도 하고.
헤어짐이 아쉽지만 우리는 마트로 향했다. 무거운 걸 들 수 있는 가족들이 있을 때 필요한 생필품을 사기 위해서다. 마트 안은 웬 사람들이 그리 많은지 새해 첫날 모두가 장 보러 온 날인가 보다. 멀리 여행보다는 맛있는 것 사다가 집에서 즐기는 새해 풍경이 아닌지. 우리도 먹을 것을 이것저것 많이 샀다. 긴 줄이 서 있어 계산하는 데 30분은 족히 걸린 것 같았다.
병오년 새해 첫날, 잊히지 않은 특별한 날을 보낸다. 올 한해도 말처럼 힘차게 뛸 준비를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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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세와 88세 이웃의 신년 재회, 눈물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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