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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자와 함께 하던 텃밭, 충격적인 통보를 받았습니다

아파트 개발 소식에 상실감이...

등록 2025.12.20 19:29수정 2025.12.20 1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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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부터는 주말농장을 더 이상 운영할 수 없습니다."

텃밭 주인으로부터 이 말을 들은 날은 마지막 농작물인 김장 배추를 뽑던 날이었다. 내년 봄을 계획하고 떠올리던 생각이 한꺼번에 멈췄다. 손자와 무엇을 심을지, 언제 씨앗을 뿌릴지에 대한 계획도 그 자리에서 끝났다. 이유는 간단했다. 우리가 가꾸던 그 땅에 아파트가 들어선다는 것이다.


나는 올해 봄부터 주말농장 형태로 분양된 텃밭을 가꿨다. 경기도 화성시 향남에 살고 있어서 가능했는지도 모른다. 신도시 개발로 아파트 단지가 빠르게 늘어났던 곳이긴 해도 타 지역에 비해 넉넉한 녹지공간과 농토가 남아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텃밭은 번화가에서 떨어진 한적한 곳이었고, 공원과 숲이 가까웠다. 텃밭에 들어서면 아파트에 살고 있으면서도 마치 농촌 마을에 들어온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 넓은 땅에 집 한 채(땅주인의 집)만 있고 사방이 모두 흙냄새 물씬 풍기는 밭이었다. 그 점이 무엇보다 좋았다.

봄에는 여러 채소를 심어 먹었고, 가을에는 배추를 심어 김장까지 했다. 가장 소중했던 건 손자와 함께한 시간이었다. 날마다 텃밭에 가 물을 주고 풀을 뽑았다. 흙을 만지고, 계절이 바뀌는 걸 몸으로 느끼는 시간이었다.

초록으로 숨 쉬던 땅의 마지막 계절

여름에 텃밭은 온통 초록으로 덮였다. 부지는 아파트가 들어서도 될 만큼 넓었지만 주인이 농사를 직접 지으면서, 땅의 일부를 주말농장형 텃밭으로 분양을 했다. 인근 아파트에 사는 주민들이 분양을 받았고 나도 집과는 거리가 좀 있지만 손자와 함께 흙을 만질 생각으로 그 사람들 속에 끼었다. 저마다의 열 평 남짓한 밭들이 모여 이룬 풍경은 아름다웠다. 그 풍경을 볼 때마다 나는 이 도시가 아직 숨 쉬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내년에도 당연히 계속할 수 있을 거라 믿었다.


하지만 아파트 개발 소식은 그런 기대를 단번에 무너뜨렸다. 땅주인에게는 반가운 소식이었을지 모르지만, 텃밭을 일구던 사람들에게는 갑작스러운 이별 통보였다. 순간적으로 터전을 잃은 실향민 같은 기분이 들었다.

물론 그 땅은 우리의 것이 아니다. 우리는 땅을 빌려서 사용한 것이었고, 언제든 떠나야 할 처지였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 그럼에도 상실감이 컸던 이유는, 이 도시에서 우리가 누릴 수 있는 자연의 몫이 얼마나 적었는지를 새삼 깨달았기 때문이다.


김장 배추 뽑던 날 김장을 마무리로 더 이상 이 텃밭은 사용 할 수가 없다. 로리에겐 그리움 하나 들어선다
▲김장 배추 뽑던 날 김장을 마무리로 더 이상 이 텃밭은 사용 할 수가 없다. 로리에겐 그리움 하나 들어선다 신혜솔

왜 도시는 늘 아파트만 선택할까

생각해 보면 그렇게 넓은 땅을 열 평씩 나눠 텃밭으로 내주기에는, 누군가에게는 '아까운' 부지였을지도 모른다. 더 많은 이익을 낼 수 있는 선택지가 분명했을 것이다. 그러나 아쉬운 건, 그 공간에 정을 붙였던 사람들, 특히 아이들이었다.

나는 나에게 내가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을 자꾸 하고 있다. 왜 꼭 아파트여야 했을까. 이 도시는 이미 아파트로 가득하다. 고개를 들면 비슷한 모양의 건물들이 끝없이 이어진다. 그 사이사이에 남아 있던 농지는 그래서 더 소중하게 느껴졌다. 그 땅은 누군가의 소유였지만, 동시에 이 도시가 아직 완전히 숨 막히지 않았다는 증거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냥 취미 공간이 아니었던 우리들의 텃밭을 다른 곳에서 만날 수 있을까? 텃밭에서 아이는 흙을 밟고 애벌레를 잡고, 어른은 계절의 변화를 배웠다. 씨를 뿌리고 기다리고 실패하고 다시 심는 시간을 통해 우리는 자연을 소비하는 존재가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존재임을 배웠다.

개발은 늘 불가피함이라는 말로 설명된다. 하지만 그 불가피함 속에서 누가 잃고, 누가 얻는지는 거의 묻지 않는다. 아파트 몇 동이 늘어나는 동안, 이 도시에서 아이 하나가 흙을 만질 기회를 잃는다면, 그것은 정말 사소한 손실일까.
#개발 #텃빝 #자연 #도시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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