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포의 한 커피숍 인터뷰중
윤솔지
- 도종환 시인님에게 좋은 시란 무엇인가요?
"시는 자기 삶에서 우러나는 가장 정직한 언어에요. 가장 좋은 시는 가을 물 같이 차고 맑은 시라고 생각해. 우리 내면은 늘 끓어요, 분노로. 욕망으로 내면은 불타오르지요. 그 내면에 있는 걸 꺼내서 작품으로 쓸 때, 특히 시로 쓸 때, 좋은 시는 가을 물 같이 차고 맑은 시이어야 해요. 할 수 있다면 거칠게 내뱉지 말고 부드럽고 다정하게 표현하는 게 내 정서에 맞다고 생각하고 사람들에게 다가가는 데도 적합하다고 생각해요. 그렇게 맑게, 맑은 언어로 전달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 시인 도종환, 정치인 도종환, 무엇이 달라졌을까요?
"물을 동그란 그릇에 담아 놓으면 물이 동그랗게 보이고 네모난 그릇에 담아 놓으면 네모난 것처럼 보여도 물 자체의 본질은 변한 건 아니잖아요. 그릇이 다를 뿐, 그런 것처럼, 어떤 사회적인 이름, 사회적인 옷을 입었냐에 따라서 달라 보이기는 해도 본질이 안 변하면 사람은 안 변한 거라고 생각해요. 사람이라는 것이 변하게 마련이지만, 본래 변치 않고 지켜야 할 가치를 지키는 사람으로 사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 한동안 정치판에 계셨는데, 앞으로 정치를 더 하고 싶은 생각도 있지 않으세요?
"안 했으면 해요. 이제 새로운 사람들이 해야지. 우리의 역할은 끝났다고 생각해요. 우리에겐 우리 시대에 해야 했던 일들이 있었고, 맡아서 해야 할 일에 대한 소명 의식도 있었지만, 이제는 그만할 때도 됐어요."
- 앞으로 어떤 계획이 있나요?
"죽기 전에 정말 좋은 시 한 편을, 우리 민족과 함께 남을 만한 좋은 시 한 편을 써야 한다는 생각을 해요. 40년 시를 썼는데. 한용운의 '알 수 없어요' '님의 침묵'이나 윤동주의 '별헤는 밤'과 같은 시를 못 썼어요. 그분들은 시집을 한 권밖에 안 냈거든. 그 식민지 시대에 불행하게 일찍 돌아가셨는데 나는 이렇게 오래 살면서 그런 시 한 편을 못 쓰고 내가 시인의 역할을 다했다고 할 수 있나, 하는 생각이에요."
햇감자 얇게 썰어
된장 풀어 국 끓이며 생각해보니
하루에 그 중 한 가지만 할 수 있어도 다행이었다
과도한 소망이었다 내 바람은
가만가만 말 걸어오는 나뭇잎과
침묵으로 대화하는 오후
고전음악의 고요한 선율이
물방울처럼 가슴을 적시는 저녁
밑줄 그은 시 몇 줄 공책에 옮겨 적고는
몇 번을 다시 펼쳐보는 밤
명상의 숨결이 조금 더 깊은 곳으로
나를 데려다 놓고는
가만히 멈추어 있는 새벽
고요든
강바람이든
느린 시간이든
그중 어느 하나라도 만난 날은
며칠 만에 잠깐이라도 만난 날은
그나마 사는 것 같았다
아수라 한복판에서
- <고요로 가야겠다> 과도한 소망 中
'과도한 소망'에 도종환 시인이 찾던 고요의 조각들이 있다. 아수라 한복판에서 그나마 사는 것 같았던 시간들, 가만히 멈추어 있는 새벽, 그것은 어쩌면 소요의 세상에서 어지러운 우리에게도 필요한 순간들이 아닐까. 어느덧 와버린 연말, 시집 <고요로 가야겠다>를 벗삼아 고요속에서 자신과의 대화를 하며 맑은 내년을 그려보는 것도 괜찮겠다 싶다.
고요로 가야겠다
도종환 (지은이),
열림원,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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