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산윤선도유적지에 핀 먼나무꽃. 상록 활엽 교목으로 붉은 열매가 겨울에도 달려있다.
윤현정
다방면에 걸쳐 탁월한 재능을 발휘한 인물
고산은 보약은 물론이고 버짐을 없애는 선창약, 회충약, 해수약, 우역신방에 이르기까지 처방하고 직접 약을 조제 했다. 당쟁이 격화되어 해남에 은둔할 때, 1657년(효종 8) 효종비가 병이 나 불려 갔을 때 고산의 처방이 효험이 있자, 효종이 칭찬한 적도 있다. 평생 정적 원두표, 송시열도 중병을 앓았을 때 병이 들어 어떤 약을 써도 효력이 없었는데 고산에게 처방을 받아 나았고 어의 유후성과 조징규가 자문했다고 하니 그 시대의 명의로 이름을 날렸음을 짐작할 수 있다.
고산은 향촌에서도 병이 있는 사람을 집에 묵게 하여 치료해 주었으며 집안에 약포를 설치하여 약을 구하는 사람이 가난하면 반드시 약을 지어 주었다. 지금도 고산 집안에는 대대로 내려오는 약장이 있고 집안 고문서 중에는 대략 쉰다섯 가지의 다양한 처방전을 다룬 약화제가 전해 내려오고 있다. 고산에게 의학은 단순히 약 처방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의도(醫道)였다.
복서, 음양, 천문, 풍수지리에도 높은 식견을 가지고 있었다. 풍수에 대한 그의 해박한 지식은 도선과 무학대사에 비견되는 풍수의 최고 경지인 신안(神眼)에 이른 풍수가로 평가하고 있다. 1659년(현종 즉위년) 효종의 능을 감심하는데 참여하였다.
평소 거문고를 아끼고 즐겼으며 음악에 대한 조예도 상당히 깊었다. 고산이 유배 생활에서도 음악을 그치지 않아 예송 때 그를 옹호하는 상소를 올린 적이 있었던 조경은 현가(絃歌) 즉 거문고와 노래에 빠지지 말 것을 충고하는 서신을 보내기도 하였다. 당시 시조는 음악으로 향유되는 장르였다.

▲어부사시사시비. 보길도에서 지은 어부사시사(漁父四時詞)는 고산의 나이 65세에 창작된 연작
윤현정
고산처럼 행복을 타고난 인물이 있을까
정치적 풍파 속에서도 안분지족의 삶을 누린 고산은 위로는 훌륭한 조상을 두고 막대한 유산을 받았으며 후손 또한 번창하고 유복한 생활을 이어갔다. 어초은 윤효정은 '三開獄門 積善之家'라 불리게 할 정도로 적선을 실천하며 가문을 빛내게 하였다. 흉년이 들어 백성들이 세금을 내지 못해 옥에 갇히는 경우가 많다는 소식을 들은 어초은은 관아에 찾아가 백성들의 세금을 내어주고 풀어주는 일을 세 번이나 했다.
16세기 조부인 낙천 윤의중 대부터 18세기까지 서남해안 지역에 대규모 간척 사업을 해서 해남, 진도, 장흥, 강진 등의 해안 지역에 전장을 소유하고 보길도, 노화도, 맹골도, 청산도 등 여러 섬을 경영하였다.
고산 학문의 박학적·실용적 특징은 고산 집안에 가학으로 전해졌는데 아들 윤인미와 손자 윤이석을 거쳐 증손 공재 윤두서에게서 활짝 꽃을 피웠다. 공재는 성리학은 물론 천문·지리·수학·의학·병법·음악·회화·서예·지도·공장(工匠) 등 다방면에 걸쳐 박학다식하여 증조부를 능가할 정도였다.
어린 시절 어머니의 심부름으로 밀린 빚을 받으러 갔다가 가난한 백성들의 삶을 보고 채권을 찢어버렸다는 미담이나 추운 날에도 얇은 홑옷을 입고 침실에는 병풍을 치지 않았다는 일화는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과 근검한 삶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
해남 윤씨 가문은 어초은 윤효정 이후로 해남에 뿌리를 내리고 중앙에 진출하였으며 정치·학문·예술·경제 등의 각 분야에서 조선 문화를 대표하는 가문이 되었다.

▲우리나라 최고의 명당, 녹우당 .
윤현정
우리나라 최고의 명당 녹우당
녹우당은 500여 년 전 '해남윤씨'를 일으킨 어초은파 효시 윤효정(尹孝貞·1476~1543)을 시작으로 고산, 공재 등이 살림을 이어간 '해남윤씨 어초은파 종가 고택'이다. 우리나라 최고의 명당 자리 중의 하나로 알려진 곳이다.

▲녹우당 앞 은행나무 .
윤현정
녹우당 사랑채는 효종이 사부였던 고산에게 하사한 집으로, 원래 화성에 있었으나 고산이 82세 되던 해 이 집을 해남 연동으로 옮겨 그대로 복원했다. 현재 후손이 노령으로 거동이 불편하여 특별한 경우에만 개방하고 있다.
녹우당 위쪽 고산사당, 어초은사당은 모두 불천지위(不遷之位) 사당으로 안사당에서 4대까지 모시고 묘로 가는 대신 영구히 사당에서 모시는 사당이다. 사당 뒤에는 어초은 능이 있다. 뒤쪽에 비자나무숲이 조성되어 있고 녹우당 앞쪽은 고산오우가정원이다.

▲어초은 능 .
윤현정
금쇄동의 씁쓸한 현실
고산윤선도유적지에서 15km 떨어져 금쇄동 입구가 있고 산길로 4km 더 들어가면 금쇄동 원림과 현산고성, 신도비와 고산의 능이 있다. 이웃하고 있는 문소동, 수정동 역시 고산이 즐겨 소요한 곳이다. 그런데도 주위가 사유지로 인하여 출입이 제한되고 제대로 관리되지 않는 형편이다.

▲고산오우가 정원. 금쇄동에서 지은 오우가(五友歌)는 산중신곡(山中新曲)에 들어있는 시조로 자연물인 수(水), 석(石), 송(松), 죽(竹), 월(月)을 벗 삼아 각각의 특징을 읊었다.
윤현정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인물
나는 그동안 가장 훌륭한 정치인으로 링컨을 꼽았으나 이 순간부터 고산! 가장 훌륭한 작가는 톨스토이와 고산!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남자는 고산! 우리나라가 배출한 가장 뛰어난 인물은 무인 충무공 이순신, 문인 고산 윤선도! 세상에서 가장 걸출한 인물을 옆에 두고 있다가 이제야 발견한 경이로움! 그 보상으로 한 상 가득 차려진 눈도 즐겁고 입도 즐거운 화려하고 맛있고 싱싱하고 풍성한 남도 바다 정식을 맛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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