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그로브 숲을 가로지르는 데크 산책길 휴양지가 아닌 일상의 공간처럼 느껴질 만큼 한적해서 지역 주민들도 산책길로 즐겨 찾는 곳이다.
김형순
바람이 불면 나무는 함께 흔들리고, 물이 찰랑거리면 뿌리도 그 몸짓을 따라가는 것처럼 보였다. 버티는 게 아니라, 흔들림 속에서 자기만의 리듬을 타고 있는 존재들. 문득 인생의 균형도 한 번 잡아두면 끝나는 상태가 아니라, 흔들릴 때마다 뿌리를 다시 내리고 중심을 조금씩 고쳐 잡는 과정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연이 만들어온 방패, 맹그로브 숲의 역할
해설판에는 맹그로브 숲이 태풍의 파도를 약하게 만들고, 해안 침식을 막는 자연 방파제라는 설명이 적혀 있었다. 쓰나미 당시 맹그로브 숲이 남아 있던 마을이 더 적은 피해를 입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화려한 리조트도, 튼튼한 건물도 큰 물 앞에서는 쉽게 무너질 수 있다. 하지만 울퉁불퉁한 뿌리들은, 누가 보지 않아도 제자리를 지키며 파도의 힘을 분산시키고 속도를 늦추고 해안선이 무너지는 것을 막는다.
그 풍경을 보면서 내 삶을 지키는 '보이지 않는 방패들'이 떠올랐다. 눈에 띄지 않는 자리에서 나를 지탱해 준 사람들, 관계들, 오래된 습관들. 화려하지 않아도 오래 있어서 고마운 것들. 맹그로브의 뿌리처럼, 깊은 곳에서 나를 잡아주던 존재들이 마음 한편에 겹겹이 떠올랐다.
태풍이 온다고 해서 나무가 갑자기 바위가 되지 않는다. 물이 거세다고 해서 콘크리트처럼 단단해지는 것도 아니다. 나무는 나무의 방식으로, 할 수 있는 만큼 뿌리를 조금 더 얽고, 조금 더 깊이 내리며 버틴다. 어쩌면 삶도 그런 방식으로 견뎌내는 것 아닐까. 강해지겠다고 마음먹는다고 해서 당장 다른 사람이 되는 게 아니라, 흔들릴 때마다 다시 중심을 찾아가는 일. 맹그로브는 그 단순한 진실을 말 대신 몸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맹그로브는 지구에서 가장 많은 탄소를 저장하는 숲 중 하나라고 한다. 검고 축축한 흙 속에 수백 년의 시간을 가두듯 품고, 우리가 너무 빠르게 배출해온 것들을 대신 흡수해왔다. 인간은 시간을 끊임없이 소비하며 살아가지만, 맹그로브는 그 시간을 저장해온 존재라는 점에서 둘의 역할이 극명하게 대비된다. 결국 인간이 만들어낸 결과를 자연이 묵묵히 처리해 주는 구조라는 뜻이었다. 지금 내가 이 데크길을 아무 일 없는 듯 걷고 있는 순간 역시 누군가 가 혹은 어떤 생물이 대신 버텨준 결과라는 생각이 마음을 스쳤다.
데크길을 걸으며 나무를 자세히 봤더니 맹그로브 잎사귀 세 개를 포개어 주머니처럼 만든 모양이 신기했다. 그 안에 개미가 서식하고 있었다. 뿌리 사이로는 작은 물고기들이 지나갔고, 머리 위로는 새들이 한 번씩 날아올랐다. 누구도 이 공간을 소유하려 들지 않고, 서로가 어울려 공존하고 있었다.

▲물 위로 드러난 맹그로브 뿌리 뿌리들은 사방으로 얽히며 스스로 균형을 잡는다. 이 복잡한 구조는 태풍과 해안 침식을 막아주는 자연 방파제 역할을 해왔고, 작은 물고기들의 서식지이다.
김형순
라영의 맹그로브 숲을 걸으며 자연과 인간이 서로의 미래를 공유하는 존재라는 사실을 새삼 실감하게 되었다. 자연을 지키는 일은 우리가 앞으로의 시간을 어떤 환경 속에서 살아갈지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선택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해변으로 돌아오는 길, 자연은 묵묵히 제자리를 지키고 있었지만 그 안을 걷는 '나'는 조금 달라져 있었다. 맹그로브가 해온 역할을 생각하니, 이 숲을 공동의 자산으로 바라봐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 어떤 환경에서 살아갈지 결정하는 일은 결국 우리 손에 달려 있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일깨워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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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에서 24년째 거주하며 국제학교에서 IB Korean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다양한 문화의 공존과 차이를 존중하며 살아갑니다.
언어와 문화가 만나는 지점을 탐구하며, 교육과 글쓰기를 통해 서로를 이해하고 연결하는 일을 소중히 여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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