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화실련(활동가)의 지난 7월 서울고용노동청 앞에서의 거리 강의 모습.
X(옛 트위터) 갈무리
한 달 후, 항아는 "집회가 아니었으면 만나지 않았을 텐데 각자 관심있는 분야에 대해 설명할 수 있는 자리를 가지면 재밌을 것 같지 않나요?"라고 제안했다. 모두가 강의자이자 수강생이 되는 '강의 공동체'를 지속해보자는 취지였다. 화실련도 "집회 참여자들이 자유 발언을 하는 것을 보고, 각자만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공간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다"라며 호응했다. 이런 아이디어를 들은 플룻이 모임 이름을 '꿈배움터'로 정하고, 동참할 사람들을 X(엑스·구 트위터)로 모집했다.
지난 4월 8일 카카오톡 단체대화방이 개설됐고, 고등학생·대학생·직장인 등 70여 명이 모였다. 초반에는 강의 장소로 "스터디 카페" 등이 거론됐다. 하지만 5~6월 이랜드 노조와 금속노조 주얼리분회가 차례로 서울고용노동청 앞에서 농성에 돌입했다는 소식을 접한 뒤, 이들은 농성장을 강의 장소로 정했다.
플룻은 "농성장에 텐트·천막을 설치해 두는데, 그 안에 사람이 없으면 불법 건조물이라 경찰 측에서 들고 간다"라며 "그래서 항상 노조원들이 있어야 하는데, 주말에는 노조원들도 집에 들러야 하니까 우리가 대신 그 자리에 머무르자는 생각도 있었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애초에 우리가 다 길바닥에서 만났는데 이제 와서 멋들어진 데서 모임을 하는 것이 웃기다는 생각도 들었다"라며 "모임원들에게 '다들 길바닥에서 농성장 지키며 강의하시는 거 동의하시나요?'라고 물었는데, 다들 흔쾌히 '좋다'고 했다"라고 덧붙였다.
그렇게 7월 12·20·27일, 8월 2일 오후 3부터 5시까지 꿈배움터란 이름으로 거리 강의가 진행됐다. 화실련은 2016년부터 이어진 개인 깃발의 역사를, 조리학과인 항아는 궁중 음식을, 플룻은 평소 관심있던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영화를 주제로 강의했다.
화실련은 "길바닥에 앰프 하나 깔아놓고 강의자는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강의했고, 청강자들은 그늘막에 널브러져 앉아 한 마디씩 했다"라며 "다들 잘 들리지도 않는 데 열심히 이야기하며 시간을 보냈다"라고 회상했다. 그러면서 "바로 옆 대로변에서 차 움직이는 진동 소리까지 느껴졌다"라며 "(농성자들이) '이렇게 힘든 곳에서 버티고 있구나'라고 생각했다"라고 덧붙였다.
폭염이 지속되고 서울고용노동청 앞 두 농성이 7월과 11월로 일단락되며 이들은 새로운 강의 장소, "또다른 농성장"을 찾고 있다.
"광장에서 경험한 미래, 이젠 실행할 때"

▲ 지난 7월 12일부터 8월 2일까지 진행된 꿈배움터의 강의 모임 시간표.
꿈배움터
이들은 "꿈배움터로 광장의 물결을 이어나갈 수 있어 뿌듯했다"라면서도 "윤석열이 파면됐지만 광장에서 지적된 문제들은 해결되지 않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플룻은 "내란죄 재판은 질질 끌리고, 차별금지법은 제정되지 않고 있다"라며 "현 정부를 구성하는 정치세력이 사회대개혁을 정말 원했던 것인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성소수자는 아직도 정체성·지향성을 숨기고 살아가야 하고, 노동자들은 죽거나 해고 당하고 있다"라며 "지금 정치인들은 사회적 소수자를 응원봉이라는 상징에 가둬놓기만 하고, 정책이나 입법적인 측면에서 변화를 이뤄내지는 않는 것 같다"라고 비판했다.
항아는 "빛의 혁명으로 이룬 정부, 국민이 만든 정부라는 수식어를 사용하고 싶다면, 소수자도 국민으로 수용해야 한다"라며 "탄핵 집회가 열렸을 때는 어떤 요구든 들어줄 것처럼 굴어놓고, 막상 윤석열이 탄핵된 후로는 막연한 약속만 할 뿐, 해결된 게 아무것도 없다고 느낀다"라고 짚었다.
화실련도 "광장의 엄청난 열망과 바람은 직장 문턱 앞에서 딱 끊어졌다"라며 "그걸 외치는 사람들이 아직도 광장에, 거리에 남아있다"라고 말했다. 이어 "한 활동가가 '우리는 이미 광장에서 미래를 봤다. 봐버렸기 때문에 그곳으로 가면 된다'고 말했다"라며 "이 말처럼 우린 이미 광장에서 차별 없는 공간을 체험했다. 그 공간을 응축했던 구호가 사회대개혁이기 때문에, 이제 실행을 할 때라고 생각한다"라고 덧붙였다.
[내란 저지 1년, 광장의 인연]
① 광장에서 돋보이던 그 피켓, '#계엄뒤질래 방'에서 탄생했습니다 https://omn.kr/2g9ft
② 남태령 가며 다이소 털던 우리, 이제 함께 책 읽습니다 https://omn.kr/2g91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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