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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발전소 53기가 필요하다"... 극단적 시나리오 맞습니까

[기후의 시간] 인공지능 전력 수요의 진짜 해결책... 핵발전 아닌 재생에너지

등록 2025.12.04 11:54수정 2025.12.04 1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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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월 10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AI 서밋 서울 & 엑스포 2025'를 찾은 참관객들이 부스를 둘러보고 있다.
11월 10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AI 서밋 서울 & 엑스포 2025'를 찾은 참관객들이 부스를 둘러보고 있다. 연합뉴스

인공지능(AI)의 확산은 이제 누구도 부인하기 어려운 시대적 흐름이 되었다. 챗봇, 이미지 생성, 자동 번역, 추천 알고리즘 등 AI 기반 서비스가 일상 깊숙이 자리 잡으면서, 이 기술을 떠받치는 데이터센터와 그에 따른 전력·물 사용 문제 역시 함께 확대되고 있다.

특히 대규모 그래픽처리장치(GPU)가 탑재된 AI 데이터센터는 더 이상 하나의 건물이 아니라, 하나의 '전력 다소비 산업 단지'에 가까울 정도의 에너지·물 소비 구조를 가진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정부와 산업계는 "AI 시대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서는 값싼 대량 전기가 필요하며, 이를 위해 원자력이 필수적"이라는 프레임을 강화하고 있다. 그러나 이 주장은 과연 사실에 기반한 것일까. 그리고 그 길은 지속가능한 선택일까.

윤석열 정부가 발표한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은 AI와 데이터센터 전력수요 증가를 핵심 전제로 삼았다. 그 결과로 제시된 해법은 노후 핵발전소 10기의 수명 연장, 신규 대형 핵발전소 2기 건설, 그리고 상용화 일정조차 불확실한 소형모듈원자로(SMR) 1기(실제로는 여러 모듈이 결합한 단지 형태)의 도입이다.

이에 대해 시민사회, 언론, 일부 전문가는 빠르게 문제를 제기했다. AI·데이터센터 전력 수요가 "폭증할 것"이라는 전제가 지나치게 부풀려져 있으며, 이를 핵발전 확대 명분으로 이용하려는 의도가 뚜렷하다는 비판이었다. 전력 수요 예측에 사용된 수치 또한 공개적이고 검증 가능한 데이터라기보다 특정 이해관계를 가진 집단의 시나리오에 의존한 추정치라는 점이 반복해서 드러났다. 그럼에도 정부는 논란을 비껴가며 이를 '미래 전력 확보를 위한 불가피한 선택'으로 정당화했다.

정권이 바뀐 지금, 이재명 정부의 접근 역시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AI·반도체·데이터센터를 "미래 산업 성장축"으로 내세우지만, 전력 수요 관리는 부차적인 문제로 취급되고 있으며 전력 수요 증가를 기정사실화한 채 공급 확충 논리만 반복되고 있다. 노후 핵발전소 수명 연장, SMR 상용화 가능성, 신규 핵발전 도입 논의 등은 이전 정부와 거의 동일한 방향이다. 결국 AI를 앞세운 전력 수요 과장은 정권을 초월해 핵발전 확대를 정당화하는 도구로 활용되고 있는 셈이다.

검증 필요한 공포 담론

 6월 20일 이재명 대통령이 울산전시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인공지능(AI) 글로벌 협력 기업 간담회를 주재하고 있다.
6월 20일 이재명 대통령이 울산전시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인공지능(AI) 글로벌 협력 기업 간담회를 주재하고 있다.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AI 및 데이터센터 전력 수요 전망의 불확실성은 매우 크다. 업계에서는 2030년까지 반도체와 데이터센터 전력 수요가 2023년 대비 두 배 이상 증가할 것이라 주장하지만, 이는 일부 에너지 관계자와 컨설팅 기관의 시나리오에 과도하게 의존한 수치다. 예컨대 어떤 자료에서 제시된 '데이터센터 전력 연평균 11% 증가' 전망은 입지 조건, 냉각 기술, 효율 향상, 수요 관리 전략 등에 따라 크게 달라질 수 있다. 그러나 이런 불확실한 수치는 마치 확정된 미래인 것처럼 확산되며 "핵발전을 지금 확대하지 않으면 국가 경쟁력이 무너진다"는 공포 담론을 조성하고 있다.


실제로 필요한 것은 과장된 위협 시나리오가 아니라, 현재 얼마의 전력이 사용되고 있으며 앞으로 얼마가 필요한지에 대한 투명한 데이터와 검증 가능한 전망이다. 데이터센터의 규모, 입지, 장비 효율, 운영 방식, 가동률 등이 공개되지 않는 상황에서 신뢰할 수 있는 수요 전망은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현재 사용량과 실수요 분석'보다 '수십 기 원전 증설 필요'가 먼저 제기되는 것은 정책 순서가 근본적으로 뒤바뀐 것이다.

AI 데이터센터 전력 수요가 "국가 전력망을 마비시킬 수준으로 폭증한다"는 주장과 달리, 구체적인 계산은 전혀 다른 그림을 보여준다. 예를 들어 엔비디아 GPU 기준으로 H100의 소비전력은 약 700W, GB200은 약 1.4kW 수준이다. GB200 GPU 26만 개를 동시에 가동한다고 가정해도 최대 전력은 약 0.364GW, 랙과 냉각 시스템을 포함해도 약 0.506GW 수준이다.


물론 적지 않은 수치지만, 이미 한국 전력망이 감당 가능한 범주에 있다. 더구나 GPU는 24시간 최대 부하로 가동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언론과 핵산업계는 "AI 데이터센터 때문에 핵발전소 53기가 필요하다" 같은 극단적 시나리오를 확산시키며 '핵발전이 아니면 전기가 부족해지고 AI 경쟁에서 탈락한다'는 이미지를 주입하고 있다.

재생에너지가 이를 감당할 수 없다는 주장 역시 검증이 필요하다. 한국IDC 전망 기준으로 2028년 데이터센터 전력 소비량을 약 37.9TWh로 계산하면, 2025년 대비 약 10.5TWh 증가한 셈이다. 이는 단순 발전량 기준으로 태양광 약 7~8GW, 해상풍력 약 2~3GW 확충으로 대응 가능하다. 기술적으로 충분히 실현 가능한 범위이며, 특히 AI 전력 부하 특성상 '조정 가능한 수요'라는 점을 고려하면 가능성은 더욱 커진다.

이미 북미·북유럽 데이터센터는 태양광 출력이 높은 낮 시간대 또는 풍력 발전량이 많은 야간에 학습 작업을 집중시키는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으며, 에너지저장장치(ESS), 직접전력구매계약(PPA), 수요반응제도(DR) 등을 결합해 탄소중립 운영 구조를 확립하고 있다. 즉 AI 전력 수요는 단순한 공급 확장의 문제가 아니라 효율화, 스케줄링, 재생에너지 매칭을 통해 관리할 수 있는 수요다.

여기에서 중요한 지점은 AI 연산의 시간 조정 가능성이다. 가정용 전력과 달리 AI 학습은 즉시성이나 실시간성이 필수적이지 않으며, 전력 상황에 따라 속도 조절이 가능하다. 데이터센터 효율 개선, 장비 집적도 관리, 온디바이스 AI 확산 등을 통해 전력 수요를 상당 부분 상쇄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재생에너지는 간헐적이니 원전이 필수"라는 주장은 다양한 기술적 대응 가능성과 전력 관리 전략을 의도적으로 배제해 특정 결론으로 유도하는 논리다.

어떤 미래를 선택할 것인가

 미국 텍사스주 댈러스 인근에 위치한 구글 미들로디언 데이터 센터.
미국 텍사스주 댈러스 인근에 위치한 구글 미들로디언 데이터 센터. AFP 연합뉴스

더욱 심각한 문제는 AI 데이터센터와 핵발전이 초래할 환경 부담, 특히 물 사용과 생태계 파괴다. 데이터센터는 서버 냉각을 위해 막대한 물을 사용한다. 구글의 사례만 보더라도 2022년 약 52억 갤런(약 2000만 톤)의 물이 냉각 용도로 사용되었다. 2023년 발표된 연구는 초거대 AI 모델 학습 과정에서 수백만 리터의 물 사용이 발생할 수 있다고 분석하며, AI 운영에 '물 발자국' 개념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일부 언론의 "질문 한 번에 생수 한 병" 같은 표현은 다소 과장되었으나, AI 확산이 물 수요 증가를 초래한다는 구조적 사실과는 일치한다. 이미 네덜란드, 미국 애리조나 등에서는 데이터센터 물 사용을 둘러싼 규제·갈등이 발생하고 있으며, 한국도 수도권 상수도 구조와 기후위기 조건을 고려하면 같은 문제를 피하기 어렵다.

피해는 결국 데이터센터가 자리 잡은 지역 공동체가 감당하게 된다. 물 부족 지역에 데이터센터가 들어설 경우 지하수 고갈, 농업용수 부족, 수질 악화가 발생하고 이는 지역 주민의 건강과 생계 문제로 이어진다. 미국과 유럽에서 이미 주민 반발이 이어지고 있으며, 한국에서도 향후 유사한 갈등 발생 가능성이 크다. 데이터센터 정책도 "최대 가능성 기반(Maximum provision)"이 아니라 "정당한 필요 기반(Justified necessity model)" 위에 만들어져야 한다.

핵발전 역시 물 사용과 환경 피해에서 자유롭지 않다. 냉각수 배출로 인한 온배수는 해양 생태계를 교란하고, 연안 어업과 생태계에 장기적 영향을 미친다. 고준위 핵폐기물은 수만 년에 걸쳐 관리해야 하는 부담이며, 사고 위험, 송전선로 건설로 인한 경관 파괴, 지역 불평등 문제까지 고려하면 핵발전 확대는 단순한 전력 문제가 아니라 거대한 사회·환경적 비용의 문제다. AI 전력 수요를 명분 삼아 이 비용을 감추려 한다면, 그 부담은 지역 주민과 미래 세대에게 전가될 것이다.

결국 필요한 것은 AI 시대 전력 문제를 바라보는 관점의 전환이다. "AI가 전력을 많이 쓰니 발전소를 늘려야 한다"는 단순한 등식이 아니라, "우리는 어떤 에너지 체계를 선택할 것인가, 그 과정에서 누가 이익을 얻고 누가 피해를 떠안는가"라는 질문이어야 한다. 현재 정부와 산업계가 주장하는 "AI 시대의 원전 확대"는 첨단 기술의 외형을 두르고 있지만, 실상은 중앙집중형 공급 시스템과 원자력 산업의 이해를 유지하기 위한 선택에 가깝다.

AI 데이터센터 전력 수요는 관리 가능하며, 재생에너지 확대, 저장 설비, 효율 개선, 전력 스케줄링 등을 결합하면 충분히 대응할 수 있다. 반면 원전 확대는 노후 설비 수명 연장, 신규 원전 위험, 폐기물 처리 문제, 환경 파괴, 지역 불평등을 심화시킨다.

지금 필요한 것은 원전을 중심에 둔 "공급 확장"이 아니라, 재생에너지 확대, 수요 관리, 데이터센터 효율화, 물 사용 최소화, 환경영향 기반 입지 전략이 결합한 종합적 정책이다. AI 시대 전력 논쟁은 단순한 전력량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어떤 미래를 선택할 것인지에 대한 가치의 문제다. 그리고 그 미래는 핵발전이 아니라 재생에너지와 정의로운 전환 위에서만 지속 가능하다.
#AI #데이터센터 #핵발전 #재생에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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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운동연합 에너지기후팀에서 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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