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주교 대전교구 정의평화위원장인 김용태(마태오) 신부가 11월 28일 오후 경기도 용인 영보 피정의 집에서 <오마이뉴스>와 만나 12.3 윤석열 내란 사태 이후 지난 1년을 돌아보며 이야기를 나눴다.
유성호
"그때까지 무언가를 포기하지 않고, 적당히 있어도 되는 삶을 살았어요. 그런데 12·
3 내란 사태를 접하고 비로소 '예' 아니면 '아니오'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 왔잖아요. 그 내란의 밤에 제일 먼저 떠올랐던 건 옛날 순교자들, 군사정권에 끌려가 고문당했던 선배들, 일제강점기 독립투사들... '이 분들은 하루하루가 선택하는 삶이었겠구나, 선택을 한다는 건 또 다른 걸 포기하는 것이구나'라고 생각했어요. 내란 당시 저는 이미 피정 중이었는데, 그때는 피정 속의 피정 같은 깨달음의 순간이었어요."
내란 후 1년, 김용태 신부(마태오, 천주교 대전교구 정의평화위원장)는 1년 전을 이렇게 떠올렸다.
국회가 가까스로 계엄을 해제했지만 윤석열이 여전히 대통령이던 지난해 12월 9일, 천주교 대전교구 정의평화위원회는 대전 중구 대흥동 성당에서 1000여 명의 신자들과 시국미사를 열었다. 그날 김 신부는 윤석열이 일으킨 내란을 요한 묵시록에 빗대 설명했다.
김 신부는 하느님이 용과 싸우는 대목을 소개하면서 "악마라고도, 사탄이라고 하는 자가 땅에 떨어졌다. 그의 부하들도 함께 떨어졌다. 사악한 용이 자리 잡은 그곳을 우리는 용산이라고 부른다"고 했다. 또 "악마라고도, 사탄이라고도 하는 자가 12월 3일 밤에 지X발광하였다"며 "대명천지에 비상계엄이라니... 이는 친위쿠데타, 국민을 향한 반란이었다"고도 했다.
이날 시국미사는 빈 공간에 간이 의자까지 꺼내놓을 정도로 붐볐고, 참석 사제만 100여 명으로 열광적인 반응을 이끌어냈다. 김 신부의 시국미사 강론은 추운 한겨울 밤 돌발적인 비상계엄 선포로 두려움에 떨던 신자들을 크게 위로했다. 특히 시국미사가 열린 대흥동 성당은 1970년대부터 꾸준히 반독재 목소리를 내온 주교좌 성당으로 그 의미를 더했다.
(관련 기사 : "윤석열 탄핵하고, 검찰개혁까지 해야 한다" https://omn.kr/2bd44)
김 신부는 한국인 최초의 사제인 김대건 성인(안드레아)의 후손(4대손)으로 가족 중에 14명의 순교자가 있는 천주교 성인공파다. 그는 현재 대전교구 사회복음화국장이자 정의평화위원장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평소에도 세월호 참사 추모 미사, 대전 골령골 평화 미사 등 정의와 평화 문제에 목소리를 내는 활동을 해왔다.
김 신부는 지난 11월 28일 오후 경기 용인시 영보 피정의 집에서 <오마이뉴스>와 만나 "더 소중한 걸 지키기 위해 뭔가를 걸어야 했다"며 "적당히 무관심하고 중간쯤에 있으면 내 한 목숨은 보존하겠으나 그러자면 너무 소중한 걸 잃어버리게 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요한 묵시록의 저자가 대한민국에 와 있다면 아마 이 시대를 (지난해 시국미사에서의 제 말처럼) 표현하지 않았을까"라고 되묻기도 했다.
피정 중 마주한 계엄의 밤, 그날 걸려온 전화 한 통
▲ 내란 후 1년 특별인터뷰, 김용태 신부 "목숨보다 소중한 것 선택했던 순간" ⓒ 유성호
우연하게도 김 신부는 지난해 12월 3일 수원 피정의 집에 있었고, 1년 후 인터뷰 시점에도 용인 피정의 집에 머물고 있다. 피정은 세속을 피해 고요하게 머물며 기도하는 활동을 말한다.
지난해 12월 3일 오후 10시 33분 계엄의 밤, 김 신부는 평소 알고 지내던 후배 신부로부터 문자를 받았다. "형님, 지금 비상계엄이랍니다"라는 문자를 보고 김 신부는 농담이라고 생각했다.
"원래 그 신부가 농담도 잘 하고 술 먹으면 항상 전화하고 그래요. 또 술 먹다가 농담하는구나 싶어서 술이나 마저 먹으라고 했는데 진짜래요. 빨리 뉴스를 보라고."
김 신부는 믿기지 않았다고 했다. 처음 든 감정은 황당함이었다. '대통령이 계엄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고 저러는 게 아닐까?'라고 생각했다. 그 다음에는 속상함이 치고 올라왔다. 그는 "한국이 오랜 시간 군부 독재를 겪고 난 뒤에 세계 속에서 자랑스러운 이미지를 만드는 경지까지 올라갔는데 하루아침에 이걸 쑥대밭으로 만들었다"고 회상했다.
다음날 피정 중 마지막 미사를 앞두고 신학생인 부제품 대상자들에게 전할 말을 준비하고 있던 김 신부는 결국 그날 계엄이 해제될 때까지 꼬박 밤을 새며 뉴스를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다음날 신학생들에게 너희는 부제품을 못 받을 뻔했다고 그랬어요. 포고령에 의해 이렇게 모이는 게 금지되지 않습니까? 부제품을 못 받을 수도 있다니 (계엄의 무서움이) 더 다가오는 거예요. 다행히 잘 마무리됐다고 이야기해주었죠."
계엄이 해제되기 전 김 신부는 대전교구 정의평화위원회 직원으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기도 했다. "신부님, 시국미사 어떻게 해요?"라는 물음이었다. 사실 위원회는 계엄 3개월 전에 이미 12월 9일 시국 기도회를 잡아둔 상황이었다.
"포고령에 집회를 할 수 없다고 나와있잖아요. 시국미사를 하려면 이제는 목숨을 걸고 해야 되는 거예요. 우리에게는 순교의 역사가 있어요. 민주화운동·독립운동을 하면서 많은 분들이 희생되기도 했고요. 옛날 이야기인 줄로만 알았던 일이 실제로 다가왔어요. 결단의 순간이었지만 큰 고민은 하지 않았습니다. 신앙이, 또 우리 양심이 실제로 행동해야 할 때가 왔구나 싶었어요. 계엄이 해제되지 않았더라도 했을 텐데, 만일 그랬다면 많은 사람들이 붙잡혀 갔겠죠."
당시 또 다른 누군가가 김 신부에게 연락해 묻기도 했다. "앞으로 우리나라는 어떻게 됩니까?"라는 질문에 그는 이렇게 답했었다.
"저 하찮은 사람들이 무너뜨릴 정도로 우리나라가 그렇게 허술하지 않습니다."
위로는 했지만 잘못되면 큰일 난다는 우려는 그에게도 있었다.
"교회는 도덕성의 이정표, 부당함에 가장 민감해야"

▲ 윤석열 대통령의 계엄령 선포 이후 2024년 12월 9일 주교좌 대흥동 성당에서 열린 시국미사에서 강론에 나선 천주교대전교구 정의평화위원회 위원장 김용태(마테오) 신부.
임재근

▲ 천주교대전교구 정의평화위원회는 2024년 12월 9일 대흥동 성당에서 시국기도회를 개최했다. 시국기도회에서 시국미사 후 정의평화대행진에 나서고 있다.
임재근
- 시국미사를 열 당시, 대통령은 윤석열이었습니다. 망설이지 않았나요?
"저는 교회가 나아갈 모습은 두 가지라고 생각해요. 우리가 앞으로 나아간다는 것은 뒤로부터 멀어지는 거거든요. 의로움, 평화, 아니면 진리를 향해 나아간다는 것은 진리와 반대되는 것들로부터 멀어진다는 얘기입니다. 불의한 것에 저항한다는 거죠. 우리 교회는 이 시대 도덕성의 이정표 같은 역할을 해야 합니다. 탄광 속의 카나리아처럼 인권이 짓밟히고 인간의 존엄성이 훼손될 때, 가장 먼저 민감하게 반응해야 할 것이 교회여야 하는 거죠. 그 방법 중에 하나가 시국미사입니다. 골방에서 우리끼리 모여 미사하고 기도드리는 게 아니라, 교회는 마땅히 세상을 향해서 옳은 것은 옳다고 부당한 것은 부당하다고 얘기할 수 있어야 합니다. 불의한 것을 보고 침묵하는 것을 더 부끄럽게 여기고 못 견뎌야 합니다."
- 실제로 목숨을 걸어야겠다고 생각했는지요?
"거창하게 생각하지 않았어요. 순교는 목숨을 버리는 게 아니고 목숨보다 더 소중한 걸 선택하는 것이니까요. 적극적인 선택이에요. 지금껏 우리는 조상 대대로 목숨을 버리며 소중한 것을 지켜왔어요. 우리가 그동안 지켜온 민주주의라는 가치를 하루 아침에 잃어버리고 싶지 않았어요. 너무 아까웠어요. 내란과 지난 1년의 과정은 '우리 삶에서 정말 소중한 건 바로 이런 거고, 그걸 지키기 위해서는 모든 걸 걸어야 한다'는 점을 다시 한 번 되새기는 시간이었어요."
- 시국미사 후 반응이 컸습니다. 기억나는 게 있는지요?
"많은 분들이 길을 지나다 알아보고 악수를 청했어요. 속 시원하게 얘기해줘서 고맙다고요. 식당에서 밥을 먹을 때도 사인을 해 달라고(웃음). '이게 국민 정서구나'라고 생각했어요. 윤석열 정권은 시민들의 입을 실제로 틀어막은 '입틀막 정권'이었잖아요. 다들 정말 목 말랐다는 걸 느꼈습니다. 동화 <벌거벗은 임금님>을 보면, 아이가 '임금님이 벌거벗었다'고 외치자 그제야 함께 있던 사람들이 따라 웃어요. 많은 분들에게 그런 효과가 아니었겠나 싶어요."
한편 김 신부는 "계엄은 큰 위기이기도 했지만, 많은 것을 주는 전화위복의 시간이었다"고도 말했다. 그는 "민주주의 역사 안에서의 특별한 사건"이라며 "순전히 법적인 절차에 의해서 국민들의 힘으로 한 명의 희생도 없이 막아냈다"는 점을 강조했다.
"오랜 세월 우리 선배들이 피 흘려 만든 민주적 감수성이 우리 안에 DNA처럼 쌓였던 겁니다. 그러니 (계엄 당시 많은 군경이) 망설였던 거죠. (거리로 나온 시민들이) 내 아버지·어머니는 아니지만 누군가의 아버지·어머니인 거잖아요. '어떻게 총을 쏘지?'라고 주저했던 거죠. 이런 망설임은 그냥 생긴 게 아니고 오랜 세월 피를 흘렸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이번엔 피를 흘리지 않고 법과 제도를 통해 절차를 밟아가며 민주주의의 쾌거를 이뤄낼 수 있었죠.
앞으로 우린 무얼 해야 할까요. 법과 제도로 (체계를) 만들어야 해요.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말을 부정적으로 쓰는데, 사실 소를 잃어버렸으면 외양간을 고쳐야 다음에 또 소를 잃어버리지 않을 수 있어요. 이번에 우리가 헌법재판소의 한계를 봤어요. 국민의 투표로 대통령을 뽑았는데 끌어내리는 건 9명의 손에 달린 거예요. 나중에 윤석열이 아니라 윤석열 할아버지가 등장한다고 해도 법과 제도에 의해 불법 계엄은 꿈도 못 꾸게 만들어야 해요."
"하느님 만나려면? 해가 아닌 햇빛이 비춘 세상 봐야"

▲ 천주교 대전교구 정의평화위원장인 김용태(마태오) 신부가 11월 28일 오후 경기도 용인 영보 피정의 집에서 묵주 기도를 드리고 있다.
유성호
- 그동안 세월호 참사 추모미사나 대전 골령골 평화미사 등 많은 현장에 다니면서 목소리를 보탰습니다.
"교회는 세상 속의 교회여야 해요. 밖에서 전쟁이 한창인데 '여기 들어오면 안전해'라고 말하는 곳이 아닙니다. 우리가 선포하는 하느님 나라의 가치, 사랑, 정의, 평화는 성당 안에서 기도하며 이뤄지는 게 아니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 안에서 이뤄져요. 교회는 세상과 완전히 분리됐을 때 타락해버려요. 제가 이태원 참사 1주기 미사를 시작하며 '유가족의 슬픔을 생각하고 하느님의 크신 위로가 함께하기를 기도합시다'라고 했더니 어떤 분이 뛰쳐나가 버렸어요.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요. 우리가 돌과 나무로 된 십자가에는 절하는데 진짜 십자가는 세상에 있어요. 우리의 신앙은 세상 속에서 이뤄져야 해요. 성당은 그걸 기억하기 위해 있는 것일 뿐입니다."
김 신부는 "곧 성탄절"이라면서 "성탄절의 가장 큰 의미는 눈에 보이지 않는 하느님이 눈에 보이는 형태로 오신 것"라고 말했다.
"그걸 우리는 육화(肉化)라고 해요. 어느 식당에 갔더니 '밥은 하늘이다'라고 써있더라고요. (추상적인 기도도 필요하지만) 정말 배고픈 사람에게 '너를 위해 기도할게'라는 것도 필요해요. 당장 주머니에서 만 원짜리를 꺼내 '국밥이라도 한 그릇 사드세요'라고 해줘야 합니다. 그 사람에겐 만 원짜리가 하느님이에요. 사랑이라는 가치는 말로 되는 게 아닙니다. 배고픈 사람에겐 국밥 한 그릇으로, 외로운 사람에게는 옆에 같이 있어주는 동료로 육화돼야 해요. 하느님을 보는 방법은 햇빛을 보는 방법과 같아요. 햇빛을 보겠다고 고개를 들어 해를 직접 보면 눈이 멀죠. 햇빛이 비춘 세상, 사랑하는 부모님의 검게 그을린 얼굴과 깊게 패인 주름살을 봐야 해요. 하느님은 세상 속에 있어요."
김 신부는 오는 3일 윤석열 내란 사태 후 1년을 맞아 대전에서 열리는 시민대회 무대에 설 예정이다. 이후 2026년엔 안식년을 계획하고 있다. 그는 "누가 '안식년에 뭐 할 겁니까'라고 물으면 저는 '안 할 겁니다'라고 말합니다. 제가 사제 생활을 25년 했어요. 그걸 은경축(사제 서품을 받은 지 25주년을 기념하고 축하하는 날)이라고 하는데, 저는 제 은경 선물로 안식년을 주려고요"라면서 크게 웃었다.

▲ 김용태 신부는 "계엄은 큰 위기이기도 했지만, 많은 것을 주는 전화위복의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민주주의 역사 안에서의 특별한 사건"이라며 "순전히 법적인 절차에 의해서 국민들의 힘으로 한 명의 희생도 없이 막아냈다"는 점을 강조했다.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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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6
사람이 사람을 사람으로 대하는 일에 관심이 있습니다. 반갑습니다. 오마이뉴스 유지영입니다. alreadyblues@gmail.com
오마이뉴스 사진기자.
진심의 무게처럼 묵직한 카메라로 담는 한 컷 한 컷이
외로운 섬처럼 떠 있는 사람들 사이에 징검다리가 되길 바라며
오늘도 묵묵히 셔터를 누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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