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실내화 <요양원에서 신을 시어머니의 실내화>
박상희
마트에 들러 10여 년 전 요양원에 입소할 때 사드렸던 새하얀 실내화를 다시 샀다. 시어머니는 침상 환자로 휠체어를 탈 때만 필요한 신이기에 아직 닳거나 못 신을 정도는 아니다. 하지만 무슨 연유인지 몰라도 그 실내화가 사라졌다는 것이다. 지난번 면회 시간에 낯선 신발을 신고 와서 당황했었다.
"이건 누구 신발이에요?"
알고 보니 시어머니를 돌봐주고 있는 요양 보호사님의 신발이었다. 백 여 명의 입소자들이 생활하다 보면 그럴 수도 있겠다 싶어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다음에 사다 드리겠다고 한 게 한참이나 지났다. 신발을 빌려주신 요양 보호사님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다.
치매 환자를 돌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건 경험해 본 사람만이 안다. 2021년인가, 한 번은 시어머니께서 외과적인 문제로 병원에 입원한 적이 있다. 청결하지 못한 손으로 복부 아래를 반복적으로 긁다 보니 염증이 심해져 입원하여 수술까지 했다.
수술 후 연세가 있기도 하지만 수술 부위가 불편하다고 자꾸 건드리는 통에 쉽게 나아지지 않았다. 그러니 낮이고 밤이고 지켜봐야 했다. 손에 장갑을 끼워도 어느새 빼버리고 도저히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어쩔 수 없이 간병인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
그날부터 집으로 돌아와 잠을 자고 아침이면 병원으로 가 시어머니의 몸을 살피고 간병인 간식까지 사다 드렸다. 분명 닦아드렸다고 했지만 내가 또 해드리고 싶다는 핑계를 대며 다시 닦아드리며 시어머니의 간식을 챙겨드리고 돌아오곤 했다. 그럼에도 일주일이면 나을 거라 했는데 열흘을 넘기고 퇴원하게 되었다.
아무것도 모른 채 그동안 감사했다며 수고비를 드렸다. 그렇게 간병인을 보내고 짐을 챙겨 나오는데 옆 침대 보호자들의 원성이 자자했다. 매일 초저녁부터 코를 골며 자고 어쩌다 내가 늦는 날이면 시어머니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TV만 크게 틀어 놓고 봐서 모두가 힘들었다는 것이다.
세상에 믿을 사람이 없다 하여도 환자를 돌봐야 하는 간병인이 그럴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갈 때마다 별일 없었다면서 시어머니가 말도 잘 듣는다고 하더니 환자를 방치하여 입원 날짜가 길어진 거였다. 화가 났지만 이미 지난 일, 이런 실수는 두 번 다시 하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다.
다짐한다고 될 일이 아니었다. 코로나19가 한창이던 22년 추석 즈음 갑작스레 혈압이 떨어져 또다시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다. 교대도 안 되고 코로나 검사를 완료한 후 한 명만이 병실에 상주할 수 있어 간병인을 구할 수밖에 없었다.
병원에 거의 한 달을 계셨지만 면회도 안 되는 탓에 간병인과 매일 통화하며 필요한 물품을 사다 주면서 간식도 챙겨드리곤 했다. 간병인은 생글생글 웃으며 간식을 받아들 때마다 걱정하지 말라고 나를 안심 시켜 주곤 했다.
그때는 시어머니는 의식이 좋지 않은 상태였다. 그런 시어머니를 돌봐주니 안절부절못하는 나에게 더없이 고마운 분이었다. 치료 끝에 시어머니의 의식이 돌아오고 퇴원하게 되었다. 이번에는 정산 과정에서 문제가 생겼다. 마침, 추석이 끼어 있어 추가 요금을 요구했다. 응급실, 중환자실, 일반 병실로 전전하다 보니 병원비도 많이 나왔지만, 고마운 마음에 추가 요금에 하루 치를 더하여 송금했다.
잠시 후 간병인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세월이 흘렀음에도 그날의 그 목소리가 잊히지 않는다. 전화를 받자마자 욕을 퍼부었다. 자식이 제 부모도 직접 못 돌보는 주제에 돈을 적게 보냈다는 것이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대꾸 한 마디 못 하고 고스란히 들어야만 했다. 전화를 끊고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내가 왜 이런 수모를 당해야 하는지. 그 순간 만큼은 세상이 싫었다. 다 싫었다. 속상한 마음에 연결해준 업체에 전화를 걸어 항의했지만 죄송하다는 말만 돌아올 뿐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내가 운이 나빴을 뿐 간병인이 다 그런 것은 아니다. 친정 아버지를 잠시 돌봐주셨던 간병인은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끝까지 빈소를 지키며 우리 가족을 위로해 주기도 했다. 시어머니에게 신발을 빌려준 보호사님도 감사한 분이다. 시어머니가 요양원에 계시는 동안 손과 발이 되어 보살펴 주시고 가족처럼 마음을 나눠주는 분들이 있어 나는 오늘도 안심하고 돌아왔다.

▲시어머니 <지난 겨울에 찍은 모자가 잘 어울리는 우리 시어머니의 모습>
박상희
요양원의 규칙에 따라 한 달에 한 번밖에 면회가 안 되어 옷만 건네고 오는 길은 쓸쓸했지만, 마음 만은 차갑지 않았다. 나를 대신하여 씻겨드리고 말 벗이 되어주고 같이 웃어주시는 분들, 시어머니는 갈 때마다 자랑하신다. 우리 며느리처럼 싹싹 하니 잘해준다고.
그럴 때마다 처음 입소한 그곳에서 지금까지 터줏대감처럼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시어머니가 감사하고, 요양원의 모든 관계자분께도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부디 시어머니께서 이번 겨울도 잘 견뎌내시고 100세의 봄날을 함께 할 수 있기를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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