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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25.11.26 14:41수정 2025.11.26 1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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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는 사람에서 뛰는 사람이 되었다. 남들에게는 평범한 일처럼 보이겠지만, 내게는 세계관의 변화에 가깝다. 나는 걷는 걸 무척 좋아한다. 매일 휴대전화 만보기로 걸음 수를 기록해 왔다. 휴일이면 등산도 즐긴다. 그런데 단 한 가지, 달리기는 하지 않았다. 몇 년 전부터 러닝 열풍이 불었지만, 귓등으로 흘려버렸다.
이유야 여러 가지가 있었다. '러닝을 하면 땀이 흐르니 옷을 갈아입어야 한다, 숨이 차서 오래 못 한다, 제대로 된 러닝화나 기능성 의류가 없다'... 속으로 그런 핑계거리를 찾으며 걷기에 집중했다. 걷기는 매우 훌륭한 운동이므로 뛰지 않아도 아무 문제는 없었다. 지난 10월 중순 북한강변을 달리기 전까지는.
"일단, 한 번만 저랑 같이 뛰어보세요. 걷기랑은 완전히 달라요."
평소 러닝을 즐기는 동료 한 분이 확신을 가지고 제안했다. 옆에서 페이스를 맞춰줄 테니, 절대로 빨리 달릴 생각하지 말고 천천히 뛰라고 했다. 나는 신용카드 회사의 프로모션을 덥석 수락하듯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 정규 달리기가 아니어도 3분만 잠깐 뛰어도 기분이 상당히 좋아진다. 면바지를 입고도 가능하다!
이준수
러닝 초보가 들었던 조언들
급하게 수락한 러닝이라 복장을 갖추고 말고 할 것도 없었다. 잘 때 입는 두꺼운 반팔 면티와 트레이닝용 기모 바지(기모라 나중에 무척 더웠다)를 입고 여섯 시에 눈을 떴다. 신발은 평소 신던 무난한 운동화였다. 동료는 고탄력 러닝화에 기능성 반바지, 무릎 보호대를 착용한 상태였다. 달리기에 앞서 몸을 풀었다. 러닝은 부상 예방을 위해 스트레칭이 필수였다.
"다리를 앞뒤로, 좌우로 흔들어 줄 거예요. 고관절을 중심으로 근육을 푼다는 느낌으로 갈게요."
"이른 아침이라 그런지 몸이 뻣뻣해요."
"충분히 스트레칭 안 하면 금방 다칩니다."
스트레칭 후 출발하려던 찰나, 신발끈을 다시 매라는 조언을 들었다. 평소 나는 운동화 끈을 느슨하게 매고 다녔다. 어차피 주로 하는 활동이 걷기이다 보니 '편안함'에 초점을 뒀다. 오히려 신발끈을 바짝 묶으면 발이 붓는 느낌이 들어서 별로였다. 반면 러닝에서 느슨한 신발끈은 부상의 원인이 될 수 있었다.
"신발끈이 느슨하면 뒤꿈치가 들리거나, 착지할 때 발 앞쪽이 앞으로 밀리거든요."
걷기와 달리기는 두 발을 이용해 앞으로 나아간다는 같은 목표를 추구하지만, 세세한 면에서 차이가 났다. 뒤꿈치가 고정되도록 단단히 묶었다. 신발끈과 동시에 내 심장도 긴장감으로 팽팽해졌다.
러닝은 '속도'와 '기록'의 세계였다
"페이스는 1km 당 7분 30초로 맞추겠습니다. 크게 부담 없으실 거예요."
우리의 목표는 5km. 중간에 반환점을 정해 돌아오는 코스였다. 동료는 스마트 시계를 조절하여 '러닝' 모드로 바꾸었다. 신기하게도 목표 속도 설정이 가능했다. 시계가 거리와 속도를 측정해서 코치 역할을 하는 모양이었다.
나는 걷는 속도에는 크게 관심이 없다. 그래서 대략 '경포 호수'를 한 바퀴 돈다던가 하는 큰 그림만 머릿속에 넣어두는 편이다. 그런데 러닝은 기록과 페이스 조절이 중요한 듯했다. 몇 년 만에 뛰어보는 입장이라 동료가 시키는 대로 따랐다.
1km 당 7분 30초 페이스. 이 속도는 빠른 걷기와 러닝의 경계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첫 2km는 정말로 할 만했다. 숨이 차긴 하는데 말은 할 수 있는 정도라 수다를 떨었다. 다리에 피로감이 살짝 느껴졌지만 '힘들다'라고 말하긴 어려웠다. 문제는 2.7km 지점에 위치한 반환점을 돌 때부터 시작되었다.
"휴대전화를 양손에 번갈아 들고 뛰는 것도 귀찮네요. 은근히 무겁고."
"그래서 러너들은 전화를 두고 다니거나 러닝벨트를 차요. 양손이 편해야 하니까요."
예전에 주머니가 달린 특이한 조끼를 입고 뛰는 사람을 보았다. 기능성 망사 재질에 휴대전화를 비롯한 여러 물건을 수납할 수 있는 구조였다. 그때는 왜 저렇게까지 하나 싶었지만 막상 뛰어보니 휴대전화를 꼭 쥐고 5km를 가는 일이 쉽지 만은 않았다.
반환점을 돌고 나서야 시작된 진짜 달리기
달리기 초반 이런저런 농담을 던지던 나는 4km 구간부터 급격히 말수가 줄어들었다. 폐가 아파왔기 때문이다. 시간으로 따지면 달리기 시작한 지 대략 30분이 지난 무렵이었다. 그때까지는 심박수도 안정적이었는데 어느 순간 심장이 열심히 뛰었다. 그것은 힘들다는 느낌으로 다가왔다. 포기하고 싶었다.
"와 이거 장난 아닌데요?"
"지금 7분 10초 페이스예요. 페이스 좀 늦출게요."
"좋아요. 좋아."
동료는 지체하지 않고 속도를 떨어뜨렸다. 초반 2~3km 구간에서 10초만 빨라도 피로가 올 수 있다고 했다. 내가 겪는 증상이 딱 그랬다. 속도가 줄었다. 아주 약간만 느려졌을 뿐인데도 호흡이 편안해졌다. 옆에서 같이 뛰는 사람이 그렇게 든든할 수 없었다. 만약 혼자 뛰었다면 멈춰버렸을 타이밍이었다.
속도를 줄이며 체력을 회복한 나는 무사히 5.6km를 뛸 수 있었다. 숨이 목 끝까지 차올랐다. 거의 십수년 만에 처음 뛰어본 장거리(내 기준)였다. 최종 기록은 1km 당 7분 26초. 목표했던 속도에 부합했다. 처음과 마찬가지로 스트레칭을 한 후 걸었다. 허벅지가 제법 얼얼했다.
왜 힘들게 달리지? 5km 구간에서 나는 분명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걷는 사이 괴로움은 빠르게 가셨다. 고통이 빠져나간 자리에는 만족감이 들어찼다. 걷기만 해도 편안함과 나른함이 기분 좋게 찾아오지만 '러닝' 후의 만족감은 차원이 달랐다. 가히 폭발적이었다.
달리기 이후 찾아온 숙면과 미묘한 변곡점

▲ '러너스 루프'라고 불리는 신발끈 묶기. 운동화 마지막 구멍을 이용해 뒤꿈치가 들리는 것을 막아준다.
이준수
'아, 오늘 뛰기를 너무 잘했다. 다음에는 조금만 더 빠르게 달리고 싶다.'
무지하게 힘들었던 것 같은데, 벌써 다음번 달리기를 기대하고 있었다. 그리고 5.6km라는 짧은 거리에도 뭔가 의미 있는 목표를 달성한 기분이 들었다. 러닝 특유의 뿌듯함은 10km를 걸어도 잘 느낄 수 없었던 감정이었다.
밤에도 엄청 잘 잤다. 꿈도 꾸지 않는 깨끗한 숙면이었다. 비록 다음날 하체가 욱신거렸지만 얼굴은 헤헤 웃게 되었다. 한 번 더 달리고 싶었지만 무리하면 탈이 날 것이 분명했다. 대신 도서관에서 '러닝' 관련 도서를 빌렸다. 내가 모르고 있었을 뿐 이미 달리기 책은 흔했다. 내가 고른 도서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와 마이클 크롤리의 <달리기 인류>.
두 책은 내게 달리는 사람의 인내와 존경과 희열 그리고 말로 모두 표현할 수 없는 미묘한 감정을 알려주었다. 걷기와 달리기는 다른 것이구나, 나의 결론은 그렇게 내려졌다. 걷기가 나쁘다는 것이 아니다. 걷기는 걷기대로의 아름다움이 있지만, 러닝만이 보여줄 수 있는 세계가 분명 존재했다. 그리고 나는 첫 러닝 이후 일주일에 두 번 꼴로 달리기를 계속했다. 기록은 1km 당 6분 후반대로 당겨졌다.
나는 당분간 걷기와 달리기를 병행하게 될 것 같다. 허벅지가 더 단단해지고 운동한 느낌이 확연히 든다. 동네 산책길에서 거의 빠른 걸음 속도로 천천히 뛰는 할아버지를 보았다. 지금까지 본 그 어떤 러너보다 느린 속도였지만 할아버지는 끈기 있게 뛰었다. 그리고 행복한 표정을 하고 계셨다. 일단 운동화만 신고 나가 보자, 선물 같은 기쁨이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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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를 구하는 가계부, 미래의창 2024>, <선생님의 보글보글, 산지니 2021> 을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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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히 폭발적, 북한강에서 초보 러너가 맛 본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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